06/17/2019
데이비드 하크니의 그림과 함께 삼위일체주일을...
삼위일체주일- 성령강림절의 두번째 주일 성령강림절의 두번째 주일은 삼위일체주일입니다.오순절 성령강림절이 초기 공동체를 전혀 새로운 신앙의 단계로 이끌었다면그런 체험을 통해 삼위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깊은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음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기독교 인문학과 함깨하는 6주완성 영어캠프와 미국 아틀란타 유학생 관리 기독교 인문학을 통한 영어캠프와 미국유학 생활을 성숙한 그리스도인,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경이로움을 체험할수 있습니다.
06/17/2019
데이비드 하크니의 그림과 함께 삼위일체주일을...
삼위일체주일- 성령강림절의 두번째 주일 성령강림절의 두번째 주일은 삼위일체주일입니다.오순절 성령강림절이 초기 공동체를 전혀 새로운 신앙의 단계로 이끌었다면그런 체험을 통해 삼위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깊은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음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절은 흩어졌던 제자들이 다시 모여 연합을 이룬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부활절 담화는 각자 저마다의 후회와 회한 그리고 죄의식을 갖고 흩어진 제자들로 채워졌습니다.
그런 그들을 다시 모으고 또 연합한 그들에게 평화를 전하는 분은 바로 주님이셨습니다.
이 연합은 유다를 대신할 사도 맛디아를 세우는 것으로 완성됩니다
그것은 저 바깥세계의 위협으로부터 방해받지 않는 그들만의 해방된 공간을 확보했다는 의미도 됩니다.
오순절은 바로 이 지점에 위치합니다.
삶이 그렇듯 그들도 지금의 안전한 공간과 12사도로 완성된 연합을 유지하고 싶어했을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절은 단순히 절기가 바뀌었다는 의미를 너머 초기 공동체를 흔든 특별한 체험을 뜻합니다.
운동을 배울 때도 단계가 있듯이 신앙 역시 성사를 통해 층위를 두어 성장해 나아갑니다.
성경은 초기공동체가 부활절에서 오순절을 통해 어떤 SHIFT(전환)가 일어났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오순절 이전은 모든 것이 외부로부터 온 것입니다.
주님을 못 박은 무리의 위협과 공격이 그렇고 부활하신 주님의 임재와 인사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오순절 이후는 그것이 내부로부터 옵니다. 어떤 외부적 징후는 단지 그런 내부에 강한
힘의 발현을 뜻하는 것이지 외부로부터 제자들에게 강제된 입신의 체험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모두가 다른 모양으로 자신 안에 있는 무언가를 방언의 형식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남에게 들었던 바를 말했다면 오순절 이후부터 제자들은 자신의 언어로 말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시인들의 언어(세계)를 떠올려도 좋습니다. 시인들이야말로 인간언어의 한계와
오염을 가장 실존적이고 치열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알려주는 위대한 분들이니까요.
하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압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지성을 포기하고 언어가 없는 접신의 세계를 떠올려서도 안될 것입니다.
단지 우리는 우리의 한계 안에서 이해하려고 하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우리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복된 성령강림절기를 맞았으니까요.
성령님은 그렇게 우리 각자 안에 이미 들어와 계십니다.
우리가 가장 자유롭게 순수할 수 있고 정직할 수 있다면 성령의 급한 바람 가운데 있을 때입니다.
오순절의 신비는 그런 바람의 흔들림을 따라 모두가 순수하고 정직하게 자신을 말할 수 있게 되었고
모두는 그것을 들었고 또 방언처럼 듣기가 불편할지라도 여전히 이해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누구도 그들의 입을 막거나 그들의 말을 정죄하는 일이 없이 자연스럽게 일어났습니다.
어쩌면 왁자지껄한 소란스런움 속에서도 서로 삶을 나누고 소통이 가능했던 신비로운 사건이었습니다.
부모와 자녀가 말이 통할 수 있는 것이 서로에게 사건이 되고 세대간 대화가 불가능한 시대에
신앙의 신비란 그렇게 모두와 통할 수 있을 때에라야 비로소 통하는 세계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분명 성령강림절에 우리 모두가 통해야 할 은총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우리는 지난 종교개혁 기념주간에
인류문명의 시작을 스토리텔링의 역사적 측면에서 살펴봤다.
예술이 먼저일까? 종교가 먼저일까?란 질문을 던지면서
대개의 경우 종교가 먼저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언어 이전에 인류, 호모 사피언스에게는 종교보다 예술행위가 먼저였다.
그때 예술은 지금의 고양된 예술의 형태가 아닌 종족을 보호하고 결속을 다지기 위한 수준이었다. 음악 역시 짐승같은 소리를 다같이 질러댐으로 큰 소리로 상대편을 겁주기도 하고 같은 소리를 지르며 만들어지는 일체감 내지는 단결력으로 생존력을 키울 수 있었다.
미술의 형태 역시 원시부족사회를 유지하는 아마존 인디오나 아프리카 부족에서 볼 수 있듯이 온 몸에 진흙을 바르거나 장식을 몸에 걸치는 것으로 상대방을 주눅들게 하거나 겁을 주어 자신들의 우위를 드러냈을 것이고 동시에 오늘날 제복이 주는 일체감도 느꼈을 것이다.
그렇게 예술은 종족보존으로 시작되어 오늘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나중에 등장한 종교의 등장은 종족 보존과 적응수준의 예술을 수직적으로 상승시켜 신적레벨로 Elevation(고양)을 일으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소위 범상한 레벨에서 예술은 이제 비범한 세계로 고양되는 차원으로 레벨업된 셈이다. 종교가 사실 그렇게 역할했고 이로인해 인류는 위대한 유산들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유럽과 중동의 관광은 사실 이런 유산을 둘러 보는 것이 전부다.
어제 소개한 『마음을 쏘다. 활, -일상을 넘어 비범함에 이르는 길-』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독일 철학자가 일본에서 활쏘기를 배우며 그가 발견한 것도 처음에 단순히 생각했던 활쏘기 궁술에서 일본의 선불교가 궁사들을 고양시킨 비범한 레벨에 이르게 된다.
활을 통해 마음에 등불을 켜는 큰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이제 그에게 궁술은 육체적 훈련에 머문 무예가 아닌 "궁도"가 된다.
저자 헤리겔은 이것이 단순히 활쏘기에만 해당되지 않고 검술이 검도가 되고
대장장이가 칼에 혼을 집어넣은 깨달음의 경지를 얻고 칼의 대가는 그것을 똑같은 경지에서 느끼고 깨달아 칼을 잡기 전에 대장장이의 깨달음에 예를 표하는 것을 그는 목도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종교의 역할인 삶의 고양이다.
종교개혁가인 루터는 교회의 벽을 허물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사제임을 선포한다. 만인제사장설이다.
일본 선불교가 말했던 그런 고양이 유럽에서 먼저 일어난다. 구두를 만드는 이들에게 구두는 신국, 하나님과 자신, 그리고 그것을 신을 이웃이, 그리고 동물의 죽음과 가죽의 세계가 다 한곳에 모이는 신국이다. 이것은 맥주를 만드는 이들도, 쇠를 만드는 이들도, 쇠로 기계를 만드는 이들도 다를 바가 없다.
그 시대 만든 건물과 기계, 시계, 가구, 구두, 장신구, 음악을 떠올려 보시라..
우리 모두가 경탄을 금치 못하는 것은 그 속에 담김 신국의 경이를 우리가 몸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는 헤리겔 교수의 책 제목처럼 "일상을 넘어 비범함에 이르는 길"을 보여 주어야 하고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 종교의 참과 거짓은 그런 열매를 통해 드러난다.
천박함이 아닌 고상함, 일상성을 넘어 비범함으로 나아가는 삶을 통해.
활쏘기 배우는 독일 철학자 이야기
아침을 먹고 난 후 남학생들이 등교 준비하러 간 사이
카렌은 내가 펼친 책의 한 부분을 읽었습니다.
『마음을 쏘다. 활, -일상을 넘어 비범함에 이르는 길-』, 오이겐 헤리겔 지음, 정창호 옮김, 걷는책
카렌이 읽은 부분은 책의 중반부로 헤리겔 교수가
어떤 지침도 받지 않은 채 반복되는 연습에 지쳐 포기하려는 순간을 다루고 있습니다. 서양교육에 익숙한 헤리겔 교수는 지금 어떤 말씀도 주지 않는 스승에게 지치고 변화없이 반복되는 연습에 지쳐 있습니다. 이제 그는 활도 일본유학도 정리하려던 참입니다. 친구 교수도 무의미한 시간이라며 귀국을 제촉했습니다.
그런 자포자기 상태에서 쏜 화살이 자신은 의식하지 못했지만 스승을 그 자리에 앉아 절하게 만듭니다.
그가 "방금 '그것'이 쏘았습니다"라고 소리쳤을때 나는 영문을 몰라 그를 멀끔히 쳐다보았다. 마침내 그의 뜻을 이해했을 때, 나는 치솟는 기쁨을 억누를 수 없었다. "지금 나는 칭찬을 한 것이 아니라 단지 사실을 말한 것뿐입니다.
그러니 당신이 감격할 이유는 없지요. 내가 절을 한 것도 당신에게 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자기도 모른 채 그렇게 쏘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당신은 완전히 자신을 잊고 아무 의도도 없이 최대한 활을 당긴 상태에 머물렀습니다. 그러자 잘 익은 과일이 떨어지듯 발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나 마찬가지이니까.
연습을 계속하십시오!"
그가 그렇게 다시 어둠 속으로 떨어지고 있는 부분을 카렌이 읽고
우리는 등교길 차 안에서 카렌의 느낌을 가지고 조금 더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12/27/2017
12/22~12/25
Destin, Florida
06/04/2017
사모님과 작은딸 유나, 그리고 세현이 생일을 맞이하여 모두가 함께 축하를 하며~~
05/27/2014
자존감... 참을 수 없는 불편함
영화 Saving Mr. Banks를 보았다.
월트 디즈니가 자존감이 강한 메리 포핀스 작가를 설득해서 영화를
완성해 가는 과정을 담아낸 영화...
자존감은 소설 작가의 세계나 음악하는 이들의 세계나 미술화가의 세계에서
자신들의 작품세계를 떠 받드는 견고한 기초이자 영감의 원천, 자존감..
콧대 센 유럽의 여류작가가 단지 재정적 이유로 60년대 미국의 디즈니,
어린이 동심을 이용해 돈을 번다는 디즈니와 손을 잡고 영화를 만든다는 것..
그 시작부터가 작가의 자존심이 구겨질대로 구겨진채 영화는 시작한다.
바로 그런 시작점이 P.L. 트래버스가 매사에 부정적일 수 밖에 없는 이야기는
1960년대가 담고 있는 유럽과 미국, 진지함과 경박함의 긴장관계로
작가 트래버스의 재정적 파산상태가 만든 히스테리에 대한 얘기로 변죽을...
자존감이 견고한 사람일수록 매사에 선택이 진지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자존감이 결여된 사람일수록 자신의 것을 소중하게 지켜내려는 의지가
매우 약하다는 것은 우리 삶 속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고 일상으로 체험하는 얘기..
교육, 특히 미국과 유럽의 교육만 보더라도 자존감은 궁극의 목표이다.
어린이 그림책만 보더라도 거의 모든 주제는 자기를 찾고 자존감을
세워가는 것을 의도한 책들이 주류임을 한국의 서점에서도 볼 수 있다.
영화는 작가 트래버스의 자존감으로 인해 당혹스러워하는 월트 디즈니와
허둥대는 영화 제작자들의 이야기와 함께 작가가 목숨처럼 붙드는 기억들..
그 기억은 곧 작가 트래버스 자신이자 그녀의 자존감이기도 하다.
자존감은 바로 그런 것이다. 불편함, 거대 자본가와 제작자를 불편케 하는..
그런 불편함을 통해 디즈니와 영화 제작자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강하게 각인되는 한 사람, 그녀는 바로 메리 포핀스를 만들어낸 P.L 트래버스.
영화 엔딩 크레딧에서 나오는 실제 트래버스의 목소리는 영화의 압권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불편함을 매우 매우 불편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존감이 제거되거나 적어도 자존감이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을 어느 순간부터 좋아하게 된다. 성품이 좋다고...
특히 정치 지도자들, 목사들, 교사들, 그리고 심지어 부모들조차..
자존감을 키워내지 못하는 교육을 참된 교육이라 할 수 없고..
자존감이 드러내는 것을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사회를 선진국이라 할 수 없다.
아이의 자존감에 상처를 주는 어른을 성숙한 어른이라 할 수 없고..
국민의 자존감에 상처를 주는 지도자도 참된 지도자라 할 수 없다. 진실로...
02/23/2014
Noah's Birthday Party
특별한 날들의 사진들 입니다 :)
02/23/2014
The Halal Guys
2013~14년 워싱턴 D.C.와 뉴욕 여행중 찍은 사진들입니다 :~)
02/01/2014
Battery Park에서
2013~14년 워싱턴 D.C.와 뉴욕 여행중 찍은 사진들입니다 :~)
02/01/2014
Highline Park
2013~14년 워싱턴 D.C.와 뉴욕 여행중 찍은 사진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