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1/2016
2015년 이슈 정리 -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2015년 11월 22일
대한민국의 14대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2009년부터 뇌졸중 판정을 받아 치료를 받기 시작했는데,
2013년부터 증상이 심해져
서거 전까지 약 1년간 수차례 단기간의 입원 및 퇴원을 반복해 왔다고 한다.
2015년 11월 19일, 갑작스런 고열로 입원하고
21일엔 상태가 악화돼 중환자실로 옮겨졌지만,
2015년 11월 22일
치료를 받던 중 패혈증과 급성 심부전증을 원인으로 서거하게 되었다. 향년 88세.
김영삼 전 대통령의
업적과 평가를 확인해 보자.
1) 민주화 투쟁.
신민당을 이끌며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 맞서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다.
질산 테러, 가택연금 등 온갖 정치탄압에 무릎 꿇지 않았다.
1983년 5월 전두환 군사 독재 정권에 대항해 단식투쟁을 벌이다가 병원에 후송되기도 했다.
2) 하나회 척결
하나회(하나會)는
1963년에 전두환, 노태우 등 육군사관학교 11기생들의 주도로 비밀리에 결성한 조직이다
'군정 종식', '문민정부'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던 김영삼 정부는
하나회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작업을 진행하였다.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12.12 군사정변에 대한 책임을 물어
전두환·노태우 등 관련자들을 재판에 회부한다.
3) 역사 바로 세우기.
하나회를 해체하면서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을 구속시킨다.
당시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받지 않는다는 명분으로 불기소 처분했으나
김영삼 전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로 5.18 특별법을 제정하여, 사형을 구형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12.12 혁명'을 '12.12 군사반란'으로 반정부 쿠데타로 명명했으며,
'광주 사태'라고 불리던 '광주 민주화 운동'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피해보상을 진행했다.
전국에 있는 일재 잔재유물들을 청산하는데,
일제의 상징 조선총독부 건물을 폭파 철거시키고,
국민학교의 명칭을 초등학교로 변경한 것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4) 금융실명제 실시
금융실명제는 대한민국 경제민주화에 이바지하였다.
'검은 돈'을 밝혀내고, 세금 환수율이 상승되기도 했지만,
차명거래가 가능하도록 여지를 남겨 두는 바람에
반쪽짜리 금융실명제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5) 지방자치제 부활.
김영삼 정부에 들어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재개면서 민주정치의 틀을 확립했다.
3대 선거 중 하나인 전국 동시 지방선거도 이때부터 생겨났다.
6) 공직윤리 확립 및 부정부패 사정.
공직자 재산 공개가 처음으로 이루어 졌다.
김영삼 본인 일가의 재산을 먼저 공개함으로써 솔선수범하였다.
7) IMF 구제금융 사태.
한보그룹 부도사태 등으로 경제적 위기가 예측되었음에도,
관료들은 한국 경제는 건강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위기관리 능력의 부재를 드러냈다.
8) 유신 정권과의 야합 의혹.
1975년 5월 21일 당시 신민당 총재였던 김영삼은 청와대에 회담을 제의했고
박정희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다. 내용은 비밀에 부쳤는데,
그 이후 김영삼은 개헌투쟁을 보류하거나
김옥선 의원을 사퇴시키는 등 투쟁 노선이 약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9) 3당 합당.
1990년 1월 22일 발표,
2월에 여당인 민주정의당(노태우 총재)과
야당인 통일민주당(김영삼 총재),
신민주공화당(김종필 총재)이 합당하여 초거대여당인 민주자유당을 창당한 사건이다.
이로 인해,
평화민주당(김대중 총재)만 유일야당으로 남겨졌다.
권력 앞에 군부와 손을 잡은 정치 변절, 기회주의적 행동이자
지역감정의 원흉이 되었다는 비난을 받게 된다.
10) 지역주의 고착화.
3당 합당으로 심화된 영호남 지역주의 정치구도는
지금까지도 영향력을 보이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 정치의 대표적인 고질병이 되었다.
11) 노동운동 탄압.
학생 운동, 노동운동 등에 대해 폭력적인 진압으로 비판을 받는다.
1995년
한국통신 노조 진압을 위해 전투경찰을 조계사와 명동성당에 투입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1996년에는 노동법 개정안을 날치기 통과시켜
노동계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자 이제, 여러분의 평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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