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물결플러스

새물결플러스 교회를 살리는 힘, 새물결플러스!

새물결플러스는 신학도서전문 출판사입니다. 오늘 한국교회는 안팎으로 큰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이런 위기의 근본 원인 하나는 한국교회에 성경과 오늘의 현실을, 그리고 교회와 세상을 연결시키고 중재하는 깊이 있는 신학과 기독지성이 부족한 데 있습니다. 신학과 기독지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갈수록 교회가 무속화, 기복화, 사물화, 게토화되어가고 있으며, 이로 인해 자연히 교회는 본연의 신령한 힘을 상실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새물결플러스는 이런 현실을 타개하는 데 벽돌 하나라도 보태자는 심정으로 세워졌습니다. 따라서 새물결플러스는 교회의 전통과 오늘의 현실을 관통하고 융합하는 권위 있는 신학도서들을 지속적으로 공급하여 한국교회 강단과 설교자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을 섬기고자 합니다. 좋은 성경신학, 조직신학 도서뿐 아니

라 변증학, 공적신학, 과학신학, 영성신학 분야의 책들을 소개하여 한국교회가 더욱 성숙해지고 견고해지는 데 기꺼이 머슴 노릇을 하겠습니다. 새물결플러스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고, 기도와 물질로 후원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바울과로마황제가문의신격화현상    #노동래⠀황족의 신적 영예들은 로마 제국의 도처에 존재했지만, 버네트는 그것들이 모든 곳에서 동일하지는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의 세심한 연구는 로마의 황제 숭배에 관한 보편적인 ...
19/08/2026

#바울과로마황제가문의신격화현상 #노동래

황족의 신적 영예들은 로마 제국의 도처에 존재했지만, 버네트는 그것들이 모든 곳에서 동일하지는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의 세심한 연구는 로마의 황제 숭배에 관한 보편적인 오해들을 교정한다. 성직자들은 버네트의 광범한 통찰로부터 유익을 얻을 것이고, 학자들은 그의 백과사전적인 지식으로부터 유익을 얻을 것이다.

니제이 K. 굽타(Nijay K. Gupta) | 노던 신학교

『바울과 로마 황제 가문의 신격화 현상』
_ D. 클린트 버네트 지음, 노동래 옮김 | 596쪽 | 38,000원

📖 https://holywaveplus.com/114/?idx=500

 #신간안내  #바울과로마황제가문의신격화현상    #노동래  #새물결플러스⠀『바울과 로마 황제 가문의 신격화 현상』 출간 안내_ D. 클린트 버네트 지음, 노동래 옮김 | 596쪽 | 38,000원⠀[도서 상세 소개...
11/08/2026

#신간안내 #바울과로마황제가문의신격화현상 #노동래 #새물결플러스

『바울과 로마 황제 가문의 신격화 현상』 출간 안내
_ D. 클린트 버네트 지음, 노동래 옮김 | 596쪽 | 38,000원

[도서 상세 소개 및 바로구매 ]
📖 https://holywaveplus.com/114/?idx=500⠀

*『바울과 로마 황제 가문의 신격화 현상』은 출판사 홈페이지에서 가장 먼저 구입할 수 있으며, 온/오프라인 서점에 배본되기까지 3~4일 정도 소요됩니다.

[책소개]

“제국 차원의 획일적인 황제 숭배인가, 아니면 도시별 황족 신격화인가”

클린트 버네트의 『바울과 로마 황제 가문의 신격화 현상』은 최근 학계에서 당연하게 여겨온 전제 하나를 겨냥한다. 곧 1세기 로마 제국 전역에 걸쳐 획일적인 “황제 숭배”가 행해졌다는 통념과 최초기 그리스도인들이 황제 숭배를 결사적으로 반대했기 때문에 무자비한 박해를 받았다는 이해 말이다. 이미 메리 비어드, 존 노스, 사이먼 프라이스 같은 고전학자들이 이미 “‘바로 그 황제 숭배’ 같은 것은 없었다”라고 지적해 온 것처럼, 버네트 역시 이 통념을 깨고 바울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실제로 마주했던, 훨씬 복잡하고 생생한 역사적 풍경을 고고학으로 되살려낸다. 그가 밝혀내는 건 단일한 황제 숭배가 아니라, 황제가 베푼 은혜에 대한 감사로 도시마다 사제직과 신전, 제사, 신적 호칭 등을 통해 각기 다르게 실천된 “황족의 신적 영예”(Imperial Divine Honors)였다. 그래서 바울의 신학을 제대로 읽으려면 그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거쳐 갔던 각 도시의 구체적 맥락부터 살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버네트는 비문, 주화, 조각상, 신전 유적, 제전 달력 같은 일차 사료를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고고학적 현미경”으로 이 작업을 수행한다. 특히 마케도니아의 빌립보와 데살로니가, 아카이아의 고린도, 이 세 도시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보수적인 로마 식민지였던 빌립보는 로마의 관습을 충실히 따라 주로 이미 신격화된 죽은 황제들을 기렸고, 자유 도시 데살로니가는 살아 있는 로마의 황족에게도 신적 영예를 돌리며 그들을 그리스 전통 신들과 함께 숭배했다. 국제 항구도시 고린도는 이 둘과도 또 달라서, 로마와 그리스의 관습이 뒤섞인 독자적이고 개방적인 영예 체계를 갖고 있었다. 이 세밀한 대조를 통해 저자는 “주”(kyrios)나 “구원자”(soter) 같은 신적 칭호가 당시 이 도시들에서 반드시 로마 황제만을 가리키는 전문 용어는 아니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며, 학계의 오랜 통설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이 모든 논증의 밑바탕에는 “그리스도 대 가이사”라는 현대 바울 신학자들이 즐겨 쓰는 도식에 대한 회의가 깔려 있다. 바울에 대한 새 관점 학파를 대표하는 신약학자인 N. T. 라이트는 카이사르 숭배가 제국 대부분에서 다른 모든 신앙을 압도하는 “우세한 숭배”였고, 그래서 바울의 복음 선포가 카이사르의 복음을 공개적으로 뒤엎으려 하는 정치적 정면 대결로 받아들여졌다고 본다. 보수적인 복음주의 신약학자 브루스 윈터 역시 이와 비슷하게, 제국 전역에 단일한 황제 숭배가 있었다고 전제하며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겪은 박해를 단순히 황제 숭배 거부라는 정치적 이유 하나로 환원한다. 하지만 버네트는 이런 경쟁 구도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가 고고학 자료로 보여주는 현실은 오히려 정반대다. 사람들은 전통적인 신들이 로마 황족을 선택해 평화와 번영을 내린다고 믿었고, 그래서 황족의 신적 영예는 경쟁자가 아니라 전통 종교 체계 안으로 통합된 협력자였다는 것이다. 존 M. G. 바클레이 역시 비슷한 지점을 짚는다. 전통적인 신들이 로마 황족의 지배를 뒷받침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둘 사이에 애초 경쟁 관계가 없었으며, 바울은 이교의 다양한 숭배 활동을 세밀히 구분하지 않고 “우상숭배”로 일괄처리 했다는 것이다. 버네트가 보기에 박해의 더 근본적인 원인은 다신교적 관습이 촘촘히 짜여 있던 고대 사회의 공적 구조와 복음의 절대적 일신교 신앙이 정면으로 충돌한 데 있었다. 즉 박해는 정치적 사건이기 이전에, 문화 전체와 맞선 “대항 문화적” 충돌이었다는 것이다.

이 책이 현재 한국교회와 한국 사회에 건네는 유익은 여러 갈래다. 목회자와 설교자에게는 성경 텍스트를 역사의 현장 속에서 더 정확하게 읽어낼 정밀한 해석학적 토대를 제공한다. 빌립보서 2장, 데살로니가전서 4-5장, 고린도전서 8-10장의 배경이 입체적으로 살아나면서, 다원화된 오늘의 사회에서 복음을 어떻게 선포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실마리도 함께 얻을 수 있다. 신학생과 신학자에게는 고고학, 금석학, 화폐학이 신학과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탁월한 방법론적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 책은 고고학이 되살려낸 바울의 세계를 통해, 신앙과 문화가 충돌할 때 우리가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지를 묻는다. 『바울과 로마 황제 가문의 신격화 현상』은 기독교 신앙과 정치권력, 나아가 기독교 신앙과 문화 지형도 간의 복잡한 관계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든 이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지은이 소개]



지은이 | D. 클린트 버네트(D. Clint Burnett)

초기 기독교와 그리스-로마 유형 문화를 연구하는 독립 학자다. 보스턴 칼리지(Boston College)에서 성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전 저서로는 『비문을 통한 신약성서 연구』(Studying the New Testament Through Inscriptions), 『그리스도의 즉위와 하나님의 오른편, 그리고 그리스-로마 문화적 배경』(Christ’s Enthronement at God’s Right Hand and Its Greco-Roman Cultural Context)이 있다.



옮긴이 | 노동래

서울대학교 공법학과와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금융공학 MBA 과정을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경영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동양증권 CRO, 녹색기후기금 임시 리스크 매니저, 새물결플러스 편집인 등으로 일했고 지금은 프리랜서로 번역과 교정 교열 일을 하고 있다. 『기원 이론』, 『아담과 게놈』, 『역사적 아담을 추적하다』, 『원죄와 타락에 관한 논쟁』, 『예수의 왕권 사상과 바울신학』, 『하나님은 정말 인종청소를 명하셨는가?』, 『죄의 기원』, 『칭의 대신 정의의 시선으로 로마서 읽기』, 『성경 너머로 성경 읽기』, 『하늘의 문』, 『미국 종교적 우파의 기원과 본질』, 『하나님이 커브볼을 던지실 때』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차례]



그림 목록

표 목록

서문

머리말

감사의 글

약어 목록

비문 관행 목록



서론

1장 황족의 신적 영예

2장 황족의 신적 영예, 바울, 빌립보 교회

3장 황족의 신적 영예, 바울, 데살로니가 교회

4장 황족의 신적 영예, 바울, 고린도 교회

결론 431



부록 1 비문들

부록 2 재구성된 빌립보와 고린도에서의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달력

참고문헌

저자 색인

주제 색인

고대 인명 색인

고대 자료 색인





[추천사 중에서]



바울 신학계의 보편화된 현상은 바울 복음을 로마의 황제 숭배 정치 구호와의 대립 구도로 읽으려는 경향이다. 그러나 버네트는 이 책에서 바울 당시에 행해졌을 것이라 여겨지는 로마의 중앙통제식 단일화된 형태의 로마 황제 숭배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학계의 암묵적 전제를 흔들어 놓는다. 그는 그리스의 세 도시, 즉 마케도니아에 위치해 있으면서 에그나티아 가도가 지나가는 빌립보와 데살로니가, 그리고 아가야 지방의 고린도를 중심으로 여기에서 나온 비문, 헌정문 같은 고증 자료들을 직접 검토한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각 도시의 개별적 맥락에서 황족에게 돌린 신적 영예 관습을 실천하던 각 도시의 독특한 개별적 특성을 이해해야만 바울의 편지 그리고 그의 신학을 더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역설한다. 버네트는 이 책에서 바울이 단지 정치적 차원의 반로마제국적 복음이 아니라, 당대의 사회문화적 가치를 넘어서는 대항 문화적 복음을 전했다고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 바울의 편지와 신학을 새로운 시각으로 더 섬세하게 읽고자 하는 이들은 이 책의 가치를 금방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김경식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신약학 교수



우리네 평범한 교인들이 흔히 듣는 말이 있다. 그리스-로마 당시 바울이 “예수는 주님이시다”라고 선포했을 때, 그것은 곧바로 “가이사는 주가 아니다”라는 뜻이었다는, 이른바 ‘그리스도 대 가이사’의 도식이다. 자연스러운 결론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겪은 고난과 박해의 원인이 바로 이러한 황제 숭배 거부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클린트 버네트의 『바울과 로마 황제 가문의 신격화 현상』은 오래도록 당연하게 받아들여진 이 설명이 지나치게 단순화된 획일적 주장이라고 반박한다. 저자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고대 도시의 구체적인 증거들을 테이블 위에 올린다. 비문, 주화, 조각상과 신전, 사제직과 제전 달력을 세밀하게 조사하여, 로마 제국 전역에 획일적인 하나의 ‘황제 숭배’가 존재했던 것이 아님을 밝힌다. 대신 각 도시의 역사와 정치적 지위, 지역의 종교 관습과 후원 체제에 따라 서로 다른 황족의 신적 영예들이 시행되었음을 입증한다. 이러한 도시별 접근을 통해, 저자는 빌립보, 데살로니가, 고린도라는 당대 로마 제국 도시들의 구체적인 사회·정치·경제·문화적 배경 속에서 각각 빌립보서 2:6-11, 데살로니가전서 4:13-5:11, 고린도전서 8-10장을 새롭게 조명한다.보수적인 로마 식민지 빌립보에서는 비로마적인 복음의 대항 문화적 성격이 충돌을 불러왔고, 자유도시 데살로니가에서는 적극적인 선교 활동이 도시의 종교적 안정과 정치적 지위를 위협하는 것으로 오인되었으며, 국제적인 항구도시 고린도에서는 외부의 박해보다 신자들이 주변 문화에 지나치게 동화되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였다. 이처럼 버네트는 단순한 이분법적 도식을 넘어, 복음이 한 도시의 신들과 명예 체계, 사회적 위계와 공적 질서 전체를 어떻게 새롭게 규정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얼마 전 목회자들과 함께 빌립보, 데살로니가, 고린도를 역사 탐방 형태로 다녀왔다. 이 책을 미리 깊이 탐독하고 떠났더라면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이 책은 고대 자료를 다루는 학문적 정밀성과 교회를 향한 목회적 진심을 함께 품고 있다. 바울의 편지를 역사적 현장 속에서 더욱 정확하게 읽고자 하는 신약학자와 신학생, 설교자뿐 아니라, 신앙과 정치권력의 복잡한 관계를 성찰하려는 모든 이들에게 자신 있게 권한다.

류호준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은퇴 교수, 현 다니엘의 샘 원장



본서는 1세기 로마 제국에서 황제 숭배가 획일적으로 강제되었다는 학계의 기존 통설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저자는 비문, 주화, 유적 등 방대한 고고학적, 문헌적 사료를 면밀히 검토하여, 빌립보, 데살로니가, 고린도 등 주요 속주 도시에서 황족에게 부여되던 신적 영예의 구체적 양상을 생생하게 재구성해 낸다. 이 책의 특히 탁월한 통찰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겪은 박해의 근본 원인이 정치적 반역이 아니라 신학 그 자체에 있었음을 새롭게 규명한 데 있다. 고대 지중해 사회의 공적, 종교적 구조에 뿌리내린 다신교적 관습을 복음의 절대적 일신교 신앙이 철저히 거부할 수밖에 없었고, 그로부터 대항 문화적 성격이 파생되었다는 것이다. 이로써 저자는 박해를 ‘예수 대(對) 황제’라는 정치적 이분법이나 반제국적 수사학으로 환원해 온 기존의 이해를 넘어선다. 나아가 로마 식민지라는 지위나 자유도시의 특권 등 각 지역의 정치 문화적 맥락이 기독교 공동체의 경험과 고난에 미친 차별적 영향까지 세밀하게 추적한다. 바울과 그 청중이 실제로 마주한 세계를 되살려낸다는 점에서, 학문적 엄밀성과 목회적 통찰을 겸비한 이 연구는 바울 서신을 1세기의 역사적 현실에서 새롭게 조명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다원화된 현대사회에서 신앙과 문화의 긴장을 진지하게 성찰하고자 하는 모든 목회자와 그리스도인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윤철원 서울신학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신약학 교수



이 책은 “황제 숭배”라는 용어 자체가 실제 역사적 현상을 지나치게 단순화해 왔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저자는 방대한 비문, 주화, 조각상, 고고학 자료를 바탕으로 신적 영예가 황제 개인에게만 집중된 것이 아니라 황후와 황족, 나아가 지역 사회의 정치적 후원자들에게까지 다양한 형태로 부여되었음을 논증한다. 또한 이러한 신적 영예는 제국 전체에서 획일적으로 시행된 제도가 아니라, 도시마다 서로 다른 역사적·정치적·종교적 맥락 속에서 형성되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이러한 접근은 예수의 주되심을 황제와의 단순한 경쟁 관계로만 이해해 온 기존의 해석을 보완하며, 바울이 마주했던 세계를 단순히 “황제 숭배”라는 틀로 환원하지 않고 각 도시의 구체적인 사회문화적 환경 속에서 새롭게 이해하도록 이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은 바울과 로마 제국의 관계를 보다 역사적이고 정밀한 맥락 속에서 재구성한 중요한 학문적 성취라 할 수 있다.

이민규 한국성서대학교 신약학 교수



이 책은 기원후 1세기 로마 제국의 “황족의 신적 영예들”, 즉 기존의 “황제 숭배”에 대한 세부적인 연구서로 신약성서 중 빌립보서, 데살로니가전후서, 고린도전서 등의 이면에 자리한 초기 기독교 신앙 공동체의 배경사에 대한 심층적 이해를 제공한다. 그 방법으로 저자는 문헌 자료 외에 금석문의 명문, 주화, 조각상, 고고학적 발굴 자료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여 이 주제에 대한 학계의 기성 통념에 도전하며 수정을 요구한다. 저자의 핵심 논지는 적어도 빌립보, 데살로니가, 고린도에서 실행된 1세기 중반경 로마의 황제 숭배(저자의 좀 더 광범위한 개념대로 “황족의 신적 영예들”)의 실상은 각 도시의 세밀한 맥락에 따라 상이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그 숭앙 대상이 생존 황제인지 죽은 황제인지 대상에 따라, 또 관리 감독의 방법과 동기에 따라, 나아가 이 세 군데 이방인 교회가 처한 문화적 환경이나 대응 방식에 따라 이 세 도시의 현상이 각기 다르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는 로마 황제 숭배와 초기 교회를 상극적 대립과 저항의 관계로 단순하게 파악한 19세기 다이스만의 가설과 20세기에 이를 부분 수정, 보완한 프라이스, 톰 라이트, 브루스 윈터 등의 연구 관점을 치밀한 실증적 연구 작업으로 보정한 역작으로 평가된다. 나아가 이 연구의 결론은 오늘날 압도적으로 밀려드는 제의화한 세속의 문화적 파고와 이에 맞서기에 역부족인 기독교회가 그 혼돈 가운데 어떻게 현명한 대안의 샛길을 찾아나갈 수 있는지 긴 성찰과 우회적 암시를 제공한다.

차정식 한일장신대학교 신학과 교수



클린트 버네트의 저서는 금석문/비문, 주화, 조각상과 같은 고고학적 현미경을 통해 신약성서가 품고 있는 그리스-로마의 정치·경제·사회·종교·문화를 다시 면밀하게 재구성한다. 이런 접근은 저자의 관심 분야임과 동시에 신약학자들의 최근 연구 동향을 잘 대변해 준다. “황족의 신적 영예”는 로마 제국이라는 광범위한 공적 구조 가운데 자리 잡고 있지만, 이것이 도시마다 (빌립보, 데살로니가, 고린도에 각각 집중함으로써) 동일한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님을 저자는 밝히고 있다. 다양하고도 구체적인 고고학적 자료들을 탐구한 버네트는 중앙집권적 체제 속의 획일적 “황제 숭배” 개념보다는 각 식민지 도시들의 미묘한 상황에 따라 “황족에 대한 신적 영예”가 얼마나 다양하게 “전통적 신적 영예들”과 맞물려 있는지를 보여준다. 말하자면 바울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고백하고 직면해야 했던 “퀴리오스”와 “유앙겔리온”은 그리스-로마의 문화 코드라는 다면적 플랫폼의 맥락들 안에서 역동적으로 읽어야 할 삶의 자리였음을 도전한다(롬 13:1-7 및 벧전 2:13-17 참조).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직면했던 고난들이 황제 숭배 거부라는 단편적인 이유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 그들이 속한 도시의 촘촘한 사회문화적 이교도 구조를 거스르는 과정에서 발생한 복합적 결과였음도 도출해 낸다. 다원주의적 상황 속에서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했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치열한 현실을 다각적으로 대면하는 데 탁월한 케이스 스터디인 셈이다. 한 권의 책으로부터 신약학의 연계 학문적 동향과 더불어 엄밀성과 도발성과 공익성 모두를 만나기 원하는 독자라면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되리라 확신한다.

허주 아신대학교 신약학 교수



이 책은 D. 클린트 버네트 목사가 그리는 1세기 빌립보, 데살로니가, 고린도의 모습을 반영하는 매력 있는 미니 시리즈나 가상 현실 투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표준적인 여행자 안내서에—그리고 많은 신약성경 텍스트북에—들어 있는 광범위한 일반화를 반복하는 저자들과 달리 바울이 그 도시들에 교회를 설립했을 때 각각의 도시에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고고학적 유물들을 깊이 있게 연구했다. 그가 직접 촬영한 비문, 조각상, 주화 이미지들을 포함하는 방대한 자료는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가문의 고인이 되었거나 때로는 생존해 있는 구성원들에게 바쳐진 신적 영예들에서 나타나는 지역적 차이들을 보여준다.

핌 퍼킨스(Pheme Perkins)의 서문 중에서



D. 클린트 버네트의 이 책은 초기 기독교와 로마 황제 숭배 사이의 관계에 관한 전통적인 지혜를 깨뜨리고 판도를 바꾸는 탐구다. 비문 분야의 전문가인 버네트는 풍부한 역사적 증거를 능숙하게 다뤄서 설득력이 있고 미묘한 차이가 나는 주장을 제시한다. 이 책은 학자, 목회자, 신앙과 정치 사이의 복잡한 상호 관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공적 생활에 있어서 기독교의 역사적 위치 및 현재의 위치를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이 기회를 놓치지 말라. 당신의 신학 서재에 반드시 갖춰야 할 책이다!

크리스토프 하일리히(Christoph Heilig) 취리히 대학교



황족의 신적 영예들은 로마 제국의 도처에 존재했지만, 버네트는 그것들이 모든 곳에서 동일하지는 않았음을 보여준다. 버네트의 세심한 연구는 나처럼 지나치게 일반적인 경향이 있는 학자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그는 외과 의사의 정밀성을 지니고, 하지만 좋은 외과 의사의 아량과 친절함도 지니고 로마의 황제 숭배에 관한 보편적인 오해들을 교정한다. 성직자들은 버네트의 광범한 통찰로부터 유익을 얻을 것이고, 학자들은 그의 백과사전적인 지식으로부터 유익을 얻을 것이다.

니제이 K. 굽타(Nijay K. Gupta) 노던 신학교



클린트 버네트의 이 책은 황제 숭배에 대해 지역별·도시별 접근만이 바울 서신들에 대한 정확한 주해상의 논의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을 통해 그 주제에 관한 25년간의 학문적 논쟁을 뒤엎는 걸작이다. 문학, 금석학, 화폐학, 고고학 분야의 고대의 증거를 다룸에 있어 걸작인 이 책은 일반 독자들과 학자들 모두에게 읽힐 수 있다.

제임스 R. 해리슨(James R. Harrison) 시드니 신학대학



클린트 버네트는 박식하면서도 읽기 쉬운 이 책에서 고린도, 빌립보, 데살로니가라는 도시 등에서 시행된 황제에 대한 여러 형태의 종교적 헌신과 그것이 어떻게 초기 교회가 그 안에서 살았던 환경의 일부였는지에 관해 훌륭하게 설명한다. 비문들과 인공물들에 대한 버네트의 지식 덕분에 고대 세계가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살아난다. 독자들은 종교적으로 다원주의적이고 정치화된 상황에서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했는지를 아마도 처음으로 이해하기 시작할 것이다.

마이클 F. 버드(Michael F. Bird) 호주 멜버른 소재 리들리 대학





[본문 중에서]



이 책의 주요 목표는 두 가지다. 첫 번째 목표는 바울이 기독교 교회를 세우고 편지를 쓴 곳인 그리스 본토의 세 도시—빌립보, 데살로니가, 고린도—에서 실천된 황족의 신적 영예(imperial divine honors, 신약 성서학계에서는 “황제 숭배”[imperial cult]가 좀 더 보편적인 용어다)를 맥락에 따라 재구성하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맥락에 따른”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그런 기록을 구할 수 있는 경우) 고대의 문학 기록뿐만 아니라 빌립보, 데살로니가, 고린도에서 나온 최근의 고고학적, 금석학적, 화폐학적, 조각상의 증거도 사용하여 빌립보와 데살로니가와 고린도가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가문의 누구에게 신적 영예들을 확립했는지, 그 공동체들에서 누가 그것들을 관리했는지, 이 도시들이 그런 영예들을 언제 어떻게 제공했는지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 책의 두 번째 목표는 이런 맥락에 따른 재구성들이 해당 도시들에서의 초기 그리스도인들과—내가 판단하기에는 도시마다 달랐던—황족의 신적 영예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지니는 함의를 파악하는 것이다.

_ “머리말” 중에서



황족의 신적 영예들은 특정한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가문의 인물들에게 부여된 숭배 행위들로서 그리스와 로마의 신들에게 주어진 숭배 행위들과 비슷한 종류였지만 정도는 달랐다. 그 영예들은 사제/여사제, 기도, 제사, 찬송, 제단, 행진, 축제, 제전, 숭배용 형상, 신적 호칭, 신당, 신전 가운데 하나 또는 그것들의 조합으로 구성되었다. … 내가 선택한 용어인 “황족의 신적 영예들”은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이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가문 인물들에 대한 숭배 행위들을 묘사하기 위해 가장 자주 사용한 실제 언어를 좀 더 가깝게 반영한다. 고대 문헌 자료, 비문, 파피루스에서 그런 가문 숭배 행위들이 그리스어로 티마이(timai) 또는 라틴어로 호노레스(honores), 다시 말해 “영예들”(honors)이나 라틴어로 렐리기오네스(religiones), 다시 말해 “의식들”(rites)로 불리는 수십 개의 예가 등장하며 그것들은 거의 언제나 복수로 사용된다

_ “1장 : 황족의 신적 영예” 중에서



빌립보에서 실천된 황족의 신적 영예에 관한 우리의 논의를 마무리하기 위해 나는 우리의 발견 사항들을 종합하고 요약할 것이다. 그 식민지는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황족 다섯 명에 대해 사후의 신적 영예를 확립했는데 디부스 율리우스, 디부스 아우구스투스, 디바 아우구스타, 디부스 클라우디우스 등 네 명은 로마 원로원이 신격화한 인물들이며 티베리우스는 원로원이 신격화하지 않은 인물이다. 그러나 이 예외는 빌립보가 로마에서 실천된 황족의 신적 영예 관행을 따랐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따라서 그들은 티베리우스의 사후에 그에게 신적 영예를 부여했다.

_ “2장 : 황족의 신적 영예, 바울, 빌립보 교회” 중에서



데살로니가에 기독교가 도래한 이후(행 17:1-9), 데살로니가의 이교도들은 자기들의 도시에서 이 새로운 운동이 퍼지는 데 저항했다. 그들의 행정 장관들은 바울 같은 초기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을 그들의 도시에서 쫓아냈으며, 데살로니가 당국은 데살로니가의 다른 이교도들과 더불어 신자들을 사회적으로 괴롭혔다. 몇몇 학자는 황족의 신적 영예가 이 학대의 주요 원인이라고 결론짓지만, 맥락에 따른 우리의 재구성은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이 영예는 데살로니가 그리스도인들의 고난에 이바지했지만, 그 고난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었다. 오히려 데살로니가의 이교도들은 그곳의 그리스도인들이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황족을 포함하지만 그들로 제한되지는 않는 그 도시의 신들의 존재를 부인했고, 전통적인 신적 영예와 황족의 신적 영예에 참여하기를 거절했으며, 임박한 하나님의 왕국과 신적으로 선택된 그 왕국의 통치자 예수를 공격적으로 전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을 학대했다.

_ “3장 : 황족의 신적 영예, 바울, 데살로니가 교회” 중에서



고린도라는 로마 식민지에서 실천된 황족의 신적 영예는 로마적인 특성을 지녔고 고린도인들이 디부스 율리우스, 디부스 아우구스투스, 디바 아우구스타와 아마도 디부스 클라우디우스 및 사망했지만 신격화되지는 않은 옥타이바, 가이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의 재위 때 시작되었을 수도 있는 황제의 게니우스에게 주어진 사후의 숭배 행위들로 구성된다. 그런 영예 외에, 그 식민지는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가문 전체를 좋아했으며 그 가문을 황제의 게니우스에게 보였던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공경했던 것처럼 보인다.

_ “4장 : 황족의 신적 영예, 바울, 고린도 교회” 중에서



빌립보, 데살로니가, 고린도에서 실천된 황족의 신적 영예의 맥락 의존적 성격과 이 도시들에서의 기독교 공동체들의 독특성 때문에 기독교와 해당 영예 사이의 관계는 도시마다 달랐다.

보수적인 로마의 가치라는 분위기를 배양한 빌립보에서는 황족의 신적 영예가 거의 디비에게만 부여되었는데, 티베리우스만 예외였다. 이런 숭배 행위들은 전통적인 신적 영예를 포함하여 그 식민지의 공적 생활 안으로 내면화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비로마 신인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그분께 모든 우주가 복종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신적으로 선택하신 섭정이신 예수 메시아를 선포한 것이 황족 및 빌립보의 전통적인 신들에 대한 신적 영예와 충돌하여 몇몇 그리스도인이 투옥되는 등 그리스도인들이 학대받게 되었다(빌 1:27-30).

데살로니가에서는 살아있는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황족과 사망한 그 가문의 황족에 대해 다소 로마화된 그리스식 신적 영예가 부여되었다는 사실은 그 도시가 자기들의 평화와 번영과 “자유로운” 지위를 신적 선물이자 데살로니가의 신들이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가문을 선택해서 그들과 협력했다는 증거라고 해석했음을 의미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임박한 나라와 그분이 신적으로 선택하신 섭정이신 메시아 예수를 전하는 데살로니가 그리스도인들의 공격적인 전도 활동이 데살로니가의 “자유로운” 지위를 위험에 빠뜨렸다. 데살로니가인들은 완고한 그리스도인들을 전통적인 신적 영예와 황족의 신적 영예라는 울타리 안으로 돌이키기 위해 자기들의 도시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학대했다.

고린도에서는 주로 로마에서 실천된 황족의 신적 영예를 실행했지만, 그 로마 식민지에 대한 그리스 도시의 영향 때문에 비록 사후의 신적 영예기는 했지만 마케도니아 속주의 로마 식민지였던 빌립보와 달리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가문의 디비가 아닌 인물들(그리고 한 경우에는 아우구스투스의 친척)에 대한 신적 영예를 확립했다. 그러나 그 식민지는 빌립보와 데살로니가 못지않게 황족의 신적 영예를 고린도의 전통적인 신적 영예와 결합했으며, 황족의 신적 영예가 그 도시의 공적 생활에 스며들기까지 했다.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황족의 신적 영예가 이처럼 고린도 사회에 편만했음에도 복음이 유대교의 종말론적인 성격을 지녔으며 일부 신자들이 그리스도인답지 않게 행동함으로써 고린도의 많은 이교도가 복음의 대항 문화적인 성격을 포착하지 못했다.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과 이교도들이 빈번하게 접촉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우연히도, 복음의 참된 성격과 힘에 대한 이러한 무지가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이 그 도시의 이교도 동료들과 평화롭게 살 수 있었던 상황을 가져왔다.

_ “결론” 중에서

『로마서를 무장해제 하다』는 기득권의 관점이 아니라 노예와 가난, 상실 그리고 소외 계층의 관점에서 제국의 심장부에 보낸 로마서가 얼마나 도전적이고 혁명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고난받는 자들의 아픔은 사...
30/07/2026

『로마서를 무장해제 하다』는 기득권의 관점이 아니라 노예와 가난, 상실 그리고 소외 계층의 관점에서 제국의 심장부에 보낸 로마서가 얼마나 도전적이고 혁명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고난받는 자들의 아픔은 사회질서를 위한 어쩔 수 없는 부수적인 피해라고 여겨 외면당하고 무시되는 세상에서 이 책은 우는 자들과 함께 울고 억압받는 자들과 함께 걸으라고 요청한다. 우리 시대의 언어로 로마서를 풀어준 저자들의 타르굼은 교회가 세상과 어떻게 소통하며, 어디까지 포용할지 독자들에게 도전한다. 본서는 로마서에서 더 이상 신선한 내용을 읽어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 특히 전통적이고 정통적인 로마서 독법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의 생각이 얼마나 비좁은지를 깨닫게 할 것이다.

『로마서를 무장해제 하다』
_ 실비아 키이즈마트, 브라이언 왈쉬 지음, 이선숙 옮김 | 654쪽 | 38,000원

https://holywaveplus.com/114/?idx=431

21/07/2026

오늘날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 과학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교회 안팎에서는 “신앙을 지키려면 과학을 포기해야 한다”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여전히 강하게 작동한다. 세속 과학자들은 성경 이야기를 신화로 치부하고,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과학이 신앙을 무너뜨릴까 두려워한다. 이 책은 바로 그 오래된 대립의 벽을 허물며, 신앙과 과학이 서로 손을 잡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노아 방주에 새끼 공룡들을 태웠다고?』
_ 자네트 켈로그 레이 지음, 노동래 옮김 | 156쪽 | 18,000원

https://holywaveplus.com/114/?idx=491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몸으로 읽어낸 바울』은 노예제와 민권운동을 아우르며, 바울을 해방의 언어로 되살린 흑인 공동체의 목소리를 감동적으로 전한다. 학문적으로 탁월하면서도 서사적으로 울림이 깊은 이 책은 신학 연구자와...
14/07/2026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몸으로 읽어낸 바울』은 노예제와 민권운동을 아우르며, 바울을 해방의 언어로 되살린 흑인 공동체의 목소리를 감동적으로 전한다. 학문적으로 탁월하면서도 서사적으로 울림이 깊은 이 책은 신학 연구자와 목회자는 물론, 정의와 해방을 갈망하는 모든 독자에게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바울은 더 이상 억압의 상징이 아니라, 억압을 전복하는 해방의 증언자로 다시 태어난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몸으로 읽어낸 바울』

_ 리사 M. 보웬스 지음, 홍수연 옮김 | 606쪽 | 35,000원

👉 https://holywaveplus.com/114/?idx=488

 #신간안내  #예언서의잃어버린세계    #왕희광  #새물결플러스⠀『예언서의 잃어버린 세계』 출간 안내_ 존 H. 월튼 지음, 왕희광 옮김 | 264쪽 | 19,000원⠀[도서 상세 소개 및 바로구매 ]📖 https...
25/06/2026

#신간안내 #예언서의잃어버린세계 #왕희광 #새물결플러스

『예언서의 잃어버린 세계』 출간 안내
_ 존 H. 월튼 지음, 왕희광 옮김 | 264쪽 | 19,000원

[도서 상세 소개 및 바로구매 ]
📖 https://holywaveplus.com/114/?idx=499⠀

*『예언서의 잃어버린 세계』는 출판사 홈페이지에서 가장 먼저 구입할 수 있으며, 온/오프라인 서점에 배본되기까지 3~4일 정도 소요됩니다. (홈페이지 주문 시 29일 순차 출고)

[책소개]

“예언은 미래를 훔쳐보는 창문이 아니라, 오늘의 백성을 흔들어 깨우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존 H. 월튼의 “잃어버린 세계” 시리즈는 지금까지 “창세기 1장”, “아담과 하와”, “노아 홍수”, “성경의 권위”, “토라”, “가나안 정복” 사건을 다루어왔고, 이제 일곱 번째로 『예언서의 잃어버린 세계』에서는 “예언과 묵시”로 눈길을 돌려서 구약 예언서를 미래 예측의 자료나 종말론적 시간표로 축소해 온 오래된 독법을 근본적으로 교정하려고 시도한다. 현대의 많은 그리스도인은 구약성경 예언서를 먼 미래의 종말론적 프로그램을 예견하는 신비로운 암호문이나,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임을 증명하기 위한 변증적 도구로만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 저자는 이러한 접근이 예언자와 그 시대 청중이 공유했던 본래의 메시지를 놓치게 만든다고 비판하며, “성경은 우리를 위해 기록되었으나 우리를 대상으로 기록된 것은 아니다”라는 해석학적 원칙을 제시한다.

이 책의 핵심 내용은 예언서를 고대 근동이라는 “문화의 강” 안에서, 즉 문화적 맥락 안에서 다시 읽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예언자는 미래를 점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대변하는 사람이며, 특히 고전 시대 예언자들은 위기의 시대에 하나님의 언약을 수호한 증언자들이다. 따라서 예언자들의 주요 관심사는 현재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의 윤리적 실존에 초점을 맞춘다. 더불어 월튼은 예언의 메시지와 그 성취를 엄격히 구분할 것을 제안한다. 예언의 메시지는 예언자가 당대 청중에게 전하고자 했던 하나님의 의도이며, 성취는 하나님이 역사를 통해 그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 방식이다. 또한 저자는 예언과 묵시 문학을 구별하여, 묵시 문학의 환상을 메시지 자체가 아닌 메시지를 전달하는 상징적 배경으로 읽도록 안내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주요 논거는 고대 근동의 예언 전통과 이스라엘 예언의 비교 연구에 기초한다. 이스라엘의 예언은 주변 세계의 신탁 문화와 유사한 형식을 공유하지만, “언약”이라는 결정적인 요소를 통해 독특성을 지닌다. 구약의 예언은 단순한 미래 예측이 아니라 현재의 불충실함에 대한 고발과 심판, 그리고 회개와 회복을 촉구하는 역동적인 하나님의 음성이다. 또한 신약 저자들이 구약 예언을 사용하는 방식은 단순한 직선적 성취가 아니라, 새로운 상황에 맞게 메시지를 재포장(repackaging)하고 각색하는 과정임을 논증한다.

이러한 통찰은 21세기 한국 사회와 교회 상황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오랫동안 한국교회는 예언서를 종종 개인의 기복 욕구나 특정한 정치적, 종말론적 시나리오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오용해 왔다. 그 결과 구약성경 예언서는 파편적, 선택적, 자의적으로 소비되었다. 그러나 이 책이 강조하듯 예언서의 본질이 “지금 이곳에서의” 공의와 정의, 그리고 예배의 진실성에 있다면, 현대의 독자들은 예언서를 통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소외된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내야 한다. 또한 기후 위기나 전쟁의 위협 같은 현대의 징조들을 예언서의 암호 해독으로 풀려 하기보다,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신뢰하며 현재의 삶에서 책임 있게 응답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결국 이 책은 우리에게 미래에 대한 호기심을 넘어, 지금 여기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 준다. 예언서를 바르게 읽고 가르치며 오늘날의 삶 속에서 책임 있게 적용하고자 하는 목회자와 신학생, 그리고 진지하게 성경을 연구하는 모든 독자에게 이 책의 정독을 강력히 추천한다.


[지은이 소개]

지은이 | 존 H. 월튼(John H. Walton)

히브루유니언 칼리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무디 성경 대학에서 20여 년간 가르쳤으며, 현재는 휘튼 칼리지에서 구약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노아 홍수의 잃어버린 세계』, 『토라의 잃어버린 세계』, 『아담과 하와의 잃어버린 세계』, 『창세기 1장과 고대 근동 우주론』(이상 새물결플러스), 『창세기 1장의 잃어버린 세계』(그리심)라는 독창적인 저술을 통해 구약성서 특히 창세기와 고대 근동 문헌 간의 비교연구에 탁월한 업적을 남긴 신학자다. 『창세기 격론』(IVP), 『창조 기사 논쟁』, 『아담의 역사성 논쟁』, 『기원 이론』(이상 새물결플러스) 등의 책에도 글을 기고했다.

옮긴이 | 왕희광

연세대학교(B.A.), 합동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고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 성서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하였으며, 현재 새물결플러스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차례]

감사의 글

서론

제1부 고대 근동

명제 1 –예언은 점술의 하위 개념이다

명제 2 –고대 근동의 예언자와 예언은 이스라엘과 비교할 때 유사점과 차이점을 보인다

제2부 제도

명제 3 –예언자는 미래를 점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대언하는 자다

명제 4 –구약의 예언은 획일적이지 않고 계속 발전한다

명제 5 –고전 시대 예언자들은 위기의 시대에 활동했던 언약의 대변자들이다

명제 6 –예언은 구약 시대 이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제3부 문헌

명제 7 –예언 메시지의 범주를 고려함으로써 우리는 좀 더 명민한 독자가 될 수 있다

명제 8 –예언자들은 일반적으로 저술가가 아니었다

명제 9 –예언서가 염두에 둔 청중이 반드시 예언자의 청중은 아니다

제4부 방법론적·해석적 문제들

명제 10 –메시지와 그 성취를 구분함으로써 예언 문학을 더욱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명제 11 –예언의 성취 방식은 직선적이지 않다

명제 12 –신약에서 구약의 예언을 사용하는 방식은 메시지가 아니라 성취에 초점을 맞춘다

명제 13 –예언은 하나님과 미래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우리의 제한된 지식으로는 종말에 관한 일들을 세세하게 구상할 수 없다

제5부 묵시 문학

명제 14 –묵시 문학은 고전 시대 예언과 구별되어야 한다

명제 15 –묵시 문학에서 환상은 메시지가 아니라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배경이다

명제 16 –신약의 묵시 문학은 구약의 묵시 문학과 동일한 원리로 작동한다

결론: 읽기 전략

참고 문헌

[추천사 중에서]


『예언서의 잃어버린 세계』는 구약 예언서를 미래 예측의 자료나 종말론적 시간표로 축소해 온 오래된 독법을 차분히 교정하는 책이다. 존 H. 월튼은 예언을 고대 근동의 예언 전통이라는 넓은 배경 속에 두고, 이스라엘 예언이 주변 세계와 어떤 점에서 닮았고 또 어떤 점에서 결정적으로 달랐는지를 설명한다. 그에게 예언자는 미래를 점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변하는 사람이며, 고전 시대의 예언자들은 위기의 시대에 하나님의 언약을 수호한 증언자들이다. 따라서 예언서를 읽는 일은 미래의 암호를 해독하는 일이 아니라, 예언자들이 선포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그 본래의 문학적, 역사적, 신학적 맥락 안에서 듣는 일이다. 이 책의 중요한 공헌은 예언의 메시지와 성취를 구분하도록 돕는 데 있다. 월튼은 예언의 성취가 단순히 직선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신약이 구약 예언을 사용하는 방식도 예언자의 본래 메시지와 성취의 관계를 신중히 살필 때 더 잘 이해된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예언과 묵시 문학을 구별하고, 묵시 문학의 환상을 메시지 자체가 아니라 메시지를 전달하는 상징적 배경으로 읽도록 안내한다. 이러한 설명은 예언서를 종말의 세부 일정표로 만들려는 유혹을 경계하게 하면서도, 예언서가 오늘의 교회에 여전히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릴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월튼이 강조하듯, “성경은 우리를 위해 기록되었으나 우리를 대상으로 기록된 것은 아니다.” 이 한 문장은 이 책의 해석학적 중심을 잘 보여 준다. 월튼의 다른 “잃어버린 세계” 시리즈와 함께 읽는다면(참조. 16쪽 각주 1), 독자는 고대 세계에 뿌리를 두는 구약성경을 더 넓고 깊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예언서를 바르게 읽고, 바르게 가르치며, 오늘의 삶 속에서 책임 있게 적용하고자 하는 목회자와 신학생, 그리고 진지한 성경 독자들에게 이 책을 기꺼이 추천한다.

김정훈 | 부산장신대학교 구약학 교수


존 월튼이 『예언서의 잃어버린 세계』로 다시 돌아왔다. 월튼에 따르면 교회는 오랫동안 예언서를 주로 두 가지 방식으로 읽어 왔다. 하나는 종말론적 시간표를 짜는 자료로, 다른 하나는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증명하는 변증학적 근거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물론 이 두 접근이 전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예언자들이 처음 전하려 했던 본래의 메시지를 놓치기 쉽다. 월튼은 “성경은 우리를 위해 기록되었지만, 우리에게 직접 쓰인 것은 아니다”라는 자신의 익숙한 원리를 예언서 해석에도 적용한다. 예언서를 바르게 읽기 위해서는 먼저 예언자들과 그 시대 청중이 몸담고 있던 고대 근동이라는 “문화의 강”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그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린다. 고대 근동의 문화적 배경에서 볼 때, 예언은 신탁의 세계와 맞닿아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성경의 참 예언자는 단순한 점술가나 미래 예측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대변인으로 분명히 드러난다. 예언은 미래를 훔쳐보는 창문이 아니라 오늘의 백성을 흔들어 깨우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참 예언자는 하나님의 법정과 언약의 광장 한복판에 선 사람이다. 이 책은 예언서 읽기의 오독을 바로잡아 준다. 예언과 묵시 문학을 구별하게 해 주며, 예언서를 “미래 정보”가 아니라 언약, 정의, 회개, 소망, 하나님의 통치라는 큰 주제 안에서 다시 읽게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학문적으로도 유익하고 목회적으로도 긴요하다. 예언서를 새롭게 배우려는 교회와 목회자들에게 꼭 필요한 교과서적 안내서다.

류호준 |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은퇴 교수, 현 다니엘의 샘 원장


저자는 본서를 통해 크게 두 가지를 경계한다. 첫째, “문화의 강”(정치, 경제, 종교, 제도, 사회적 관습 등)을 간과한 채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것이 기초적 오해를 불러올 수 있음을 지적한다. 둘째, 저자는 기록의 “맥락”을 배제하는 행위, 다시 말해 예언서를 본래 문맥에서 이해하지 못하고 극히 일부 본문만을 파편적으로 인용하고 소모하는 현실을 경계한다. 이에 저자는 “고대 근동의 환경과 문자적 기록의 맥락 안에서 예언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며 예언서를 둘러싼 오랜 오해들을 교정해 나간다. 이런 점에서 본서는 예언을 구체적 맥락에서 해석하는 훈련이 부족했던 한국교회에 예언서가 지닌 본연의 풍성함을 일깨워 주는 탁월한 안내서다. 예언자의 본래 메시지를 깊이 숙고하는 일이야말로 그들을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존중하는 태도임을 본서는 드러낸다. 특별히 이 책은 각 장을 도발적인 하나의 명제로 시작한다. 이는 종종 우리가 가진 통념과 부딪히기도 하지만, 우리의 좁은 사고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충돌이다. 독자들은 각 명제를 접할 때마다 자신의 고착화된 신앙적 사고에 대해 자문하게 될 것이다. 이 명제들은 우리가 그동안 놓치고 있던 “잃어버린 것”이자, 우리가 지금 당장 “회복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예언서를 고대의 맥락에서 다시 읽음으로써 예언자의 잃어버린 목소리를 회복하는 여정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민경구 |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구약학 교수


본서는 성경을 고대 근동의 맥락에서 정직하게 읽도록 이끄는 안내서로서 예언서의 가치와 기능을 진정성 있게 조명한다. 저자는 예언자를 단순히 미래를 예측하는 존재가 아니라 위기의 시대마다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고 회개와 새 삶으로 부르는 “언약의 수호자이자 대변자”로 제시한다. 본문 고유의 메시지와 신약의 성취를 구분하면서도 두 권위를 균형 있게 수용하도록 돕는다. 난해한 묵시 문학을 자의적 암호 체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아래 전개되는 역사적 패턴으로 이해하게 함으로써 본래 의도를 드러낸다. 나아가 종말론을 개인 구원에 국한하지 않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창조세계 전체가 회복된다는 총체적 비전으로 확장한다. 풍부한 고대 세계의 배경과 엄밀한 방법론을 신앙의 구조 안에 통합한 이 책은 오독되기 쉬운 예언서의 메시지를 명확히 해명하여 현대 독자가 책임 있게 응답하도록 돕는다. 결국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의 본질에 집중하고 진리를 담대히 선포할 수 있도록 견고한 토대를 마련해 주는 필독서다.

윤철원 | 서울신학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신약학 교수


구약 예언서만큼 오늘날 독자들에 의해 외면당하거나 잘못 읽히는 책도 없을 것이다. 특별한 절기나 각 교회의 필요에 따른 이벤트성 설교를 몇 번 했다고 해서 구약 예언서를 충분히 살펴봤다고 말할 담대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오죽하면 구약 예언서가 다시 봉인되었다고 말할 정도일까?! 이런 웃지 못할 상황은 “예언”이라는 단어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문화적 관점과 시대적 배경에 관한 이해 없이 구약 예언서를 교조주의적으로 설교하거나 해석해 온 전통은 그 문제적 양상을 더욱 심화시켰다. 월튼은 예언을 “현재에 초점을 맞춘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의 표현 수단”이라고 올바르게 정의함으로써 그것을 미래와 관련된 일들을 점치거나 말하기 위해 고안된 것으로 간주하는 환원주의적 개념을 과감히 수정한다. 그에 따르면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예언자들은 야웨 하나님을 대변하는 이들로서 과거 시내산과 모압 평지에서 체결된 언약을 수호하는 차원에서 토라에 입각해 이스라엘 백성이 처한 현재(당대) 상황을 진단 및 평가하고 앞으로 성취해야 할 대안을 제시한 인물들이었다. 월튼은 구약성서에 포함된 예언 자체가 역동적이고 다양하며, 구약의 예언과 신약의 성취 사이에는 간극 내지는 미묘한 긴장이 존재하며, 그것의 성취에도 다양한 차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피력한다. 가령 그는 신약성서의 저자들이 구약(예언)을 인용하는 방법론을 영감의 차원에 포함시켜 정경 공동체의 “각색”으로 설명한다. 특히 성서의 영감은 구전 형태가 아닌 기록된 문헌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월튼의 제언은 귀담아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또 월튼의 전망 안에서 묵시 문학은 예언서와 뚜렷하게 구별된다. 구약 예언서에 대한 월튼의 이해와 접근은 구약과 신약 전체 성서를 하나로 이어주는 통전적 이해를 갖도록 우리를 안내할 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 망각해 버렸던 성서의 세계를 우리가 다시 새롭게 탐험하고 재발견하도록 도전한다. 구약 예언서 본문 자체의 의미와 가치, 신약과의 관계, 그리고 구약 예언서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깊이 연구하고자 하는 신학도들과 신실하게 설교 강단과 회중을 섬기는 목회자들에게 정독을 추천한다.

주현규 |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


유명한 “잃어버린 세계” 시리즈에 드디어 예언서가 담기게 되었다. 저자는 성경의 예언서를 주로 마지막 때의 모습과 순서에 초점을 맞추어 종말론적으로 해석하는 것과 예수가 하나님이심을 입증하기 위하여 변증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한다. 이러한 해석은 예언의 진정한 메시지를 놓친다고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 이는 예언자의 메시지가 담고 있는 본래의 정황과 의도를 무시하는 것이며, 오늘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포착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문학적, 역사적, 신학적, 문화적 배경을 분석하여, 예언과 묵시는 우리의 현재 생각이나 상황에 맞게 재구성된 성취를 확인할 필요가 없으며, “인류 역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는 점을 역설한다. 이 점은 성경의 예언과 묵시를 올바르게 해석하는 정곡을 찌르는 통찰이다. 고대 근동 전문가이기도 한 저자는 구약의 예언과 묵시를 고대 배경하에서 전문적으로 분석하고 대중적인 눈높이로 독자들에게 손짓하고 있다. 이 책은 고대 근동의 예언과 묵시, 구약의 예언과 묵시, 제2성전기 관련 문헌, 신약의 예언과 묵시 등을 총망라하여 다루고 있다. 성경의 예언과 묵시에 대한 종합적 안내서라고도 할 수 있다.

차준희 | 한세대학교 구약학 교수, 한국구약학연구소 소장, 한국구약학회 회장 역임


존 H. 월튼은 “잃어버린 세계”라는 렌즈를 예언서로 돌려 놀라운 결과를 얻어냈다. “잃어버린 세계” 시리즈의 이전 책들도 유익하지만, 오늘날 교회에서 예언서가 너무나도 오해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 책은 다른 책들보다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 그의 순차적 명제 접근 방식은 우리가 왜 종종 예언서를 종말론이나 변증론의 관점에서만 읽음으로써 그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책은 우리를 예언자들의 메시지—오늘날 독자인 우리의 삶을 형성하고 변화시키는 힘을 여전히 지닌 메시지—로 다시 인도함으로써 교회에 절실히 필요한 교정책을 제공한다.

빌 T. 아놀드 | 애즈버리 신학교 구약 해석학 폴 S. 아모스 교수


“잃어버린 세계” 시리즈의 최신작인 본서에서 존 H. 월튼은 중요하고 유익한 많은 명제를 공유한다. 이 시리즈의 독자들이 기대하듯이, 그는 예언서를 읽는 방법에 대한 대중적인 가정에 도전하는 방식으로 성경의 고대 세계를 열어 보여주며, 또한 현대 학문의 주요 흐름을 신앙고백적 틀 안으로 끌어들인다. 결국 그는 독자의 상상력을 이끌어서 예언서의 메시지를 오늘날 우리의 삶을 위해 신중하게 적용하도록 도와준다.

존 W. 힐버 | 맥매스터 신학교 구약학 교수


“잃어버린 세계” 시리즈는 교회가 성경 해석에 대한 확신을 회복하고, 사상가들의 무대에서 신앙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합리성을 갖추도록 돕는 데 기여했다. 이 최신작도 예외는 아니며, 우리를 과거로 인도하여 메시아적 성취를 훨씬 뛰어넘는 우리를 향한 예언자들의 메시지를 새롭게 들려준다. 고대 근동 세계에 대한 월튼의 풍부한 지식은 때때로 혼란스럽고 난해한 예언서들에 명료함을 더해줌으로써 오늘날의 세계에서 예언자의 말씀에 충실하게 해준다.

브리트니 N. 멜튼 | 리젠트 칼리지 구약학 부교수

존 월튼은 오늘날 교회를 위한 가장 탁월한 구약 해석가 중 한 명으로 명성을 쌓아왔다. 『예언서의 잃어버린 세계』는 구약 예언자들의 문화적 배경에 대한 진지한 성서학적 연구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이 책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실함과 신실함으로 예언서의 메시지를 읽도록 돕는 훌륭한 안내서다. 이 뛰어난 저작에 깊이 감사한다.

J. 리처드 미들턴 | 노스이스턴 신학교 성경적 세계관 및 주해 교수



[본문 중에서]

예언은 고대 세계에서 잘 알려진 제도였으며, 그 당시의 많은 예언 신탁, 특히 고바빌로니아(기원전 제2천년기 전반)와 신아시리아(기원전 제1천년기 중반) 텍스트를 통해 널리 알려져 왔다. 우리는 이스라엘인들이 주변 민족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예언을 대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되겠지만, 그럼에도 예언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고대 세계에서 통용되던 보편적인 사상들에 뿌리를 두고 있다. 말하자면 구약의 예언은 오늘날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의 생각보다는 예언자의 동시대 일반 사람들의 생각과 더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는 그들이 그들 주변의 민족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들의 하나님을 인식했으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을 통해 말씀하심으로써 문학 장르 자체에 발전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실이다. 따라서 나는 고대 세계에 존재했던 예언을 조사한 후 이스라엘 예언과의 유사점 및 차이점 모두를 논의하는 것으로 시작할 것이다. 그런 다음 우리는 예언에 대한 우리의 현대적 사고방식을 탐구하는 것으로 나아갈 것이다.

_ “서론” 중에서


결과적으로 비록 우리가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는 전제를 수용한다 해도 우리는 그들의 메시지가 종종 황홀경에 빠진 점술가의 점괘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전망처럼 들린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동시에 설령 우리가 예언자들의 역할에서 전망가의 모습을 더 많이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그렇게 함으로써 예언자들을 통찰력 있는 문화 비평가로 격하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말씀을 전한다. 그러나 그 말씀은 미래에 대한 무작위적이고 단편적인 정보가 아니며, 그것들은 언약,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적 정황과 논리적으로 연결된다

_ “명제 3 : 예언자는 미래를 점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대언하는 자다” 중에서


이전 명제들에서 다양한 유형의 예언 메시지를 언급하는 이유를 이미 설명했었는데, 이제 그런 문학적 유형들을 본격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여기서 제시하는 분류는 고전 시대에 속한 예언 문서들을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하다. 구약/히브리 성경의 정경을 구성하는 고전 시대 예언자들의 책에 담긴 거의 모든 신탁 자료는 “고발”(indictment), “심판”(judgment), “교훈”(instruction), 혹은 “결말”(aftermath)에 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_ “명제 7 : 예언 메시지의 범주를 고려함으로써 우리는 좀 더 명민한 독자가 될 수 있다” 중에서


결론적으로 우리는 우리가 확인하거나 예견할 수 있는 성취에 근거하여 예언자들의 해석을 전용하는 일에 극도로 신중해야 한다. 예언은 성취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선포하는 일에 초점을 맞춘다.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록 그것이 우리의 기대와는 매우 다른 형태를 보이더라도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계획과 목적을 수행하고 계심을 상기하게 된다. 우리는 성취가 어떤 양태로 나타날지 예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포기해야 한다. 우리가 아는 바대로 신약 저자들뿐 아니라 구약 예언자들조차도 종종 성취가 그들이 기대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서 놀라거나 실망하지 않았던가!

_ “명제 10 : 메시지와 그 성취를 구분함으로써 예언 문학을 더욱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중에서


묵시 문학의 이국적인 상징주의(symbolism)는 독자들의 주의를 그들이 살고 있는 시대로 돌리게 함으로써 전후 사정을 연결하는 창의적인 전략들을 독자들에게 제안할 수 있다. 방정식이 수학을 전개하는 수단이듯이 상징은 묵시적 환상의 소통 수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상징이 묵시 문학의 주요 자산(stock in trade)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해석자는 그 상징들에 어떻게 접근할지를 결정해야만 한다. 상징의 특징은 두 가지 관점의 의미를 갖는다는 점이다. 하나는 자체적 의미(the thing in itself)이고 다른 하나는 상징적 의미(the thing that it stands for)다. 예를 들어 다니엘서에서 “뿔”(자체적 의미)은 상징적으로 “왕”(상징적 의미)을 가리킨다. 그런 상징들은 대체로 문학과 문화에 전통적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상징을 우리가 해독해야 할 암호(ciphers)처럼 대해서는 안 된다. 묵시 텍스트에서 상징을 대할 때 우리는 그것이 무엇을 나타내는지뿐 아니라 그런 표상에 어떤 문화적 중요성이 덧붙여져 있는지도 함께 탐구해야 한다.

_ “명제 15 : 묵시 문학에서 환상은 메시지가 아니라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배경이다” 중에서

나는 “과연 우리가 마지막 날에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고찰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이러한 비교를 전개했다. 우리는 아마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그다지 만족스러운 대답은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나는 이 태도를 고수한다. 기후 변화를 연구하는 과학자이든 전쟁의 위협에 대해 논평하는 정치인이든 제도권 종교와 교회의 붕괴를 논하는 신학자이든, 우리 시대의 전문가들은 오직 현재의 징후를 평가하고 장차 일어날 수 있는 결과에 대해 경고할 수 있을 뿐이다. 고전 시대 예언자들도 마찬가지로 행동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구체적인 미래에 대한 확실한 지식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우리가 경고받았다면 우리는 그에 대한 반응으로 방향을 전환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현시대가 파괴적이고 문제투성이인 위기의 때라고 해도 그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실현되고 있음을 믿는다. 절망적인 시대에도 운명론은 답이 아니며, 세상이 파멸과 붕괴로 치닫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앞당길 것이라고 치부하는 방관적인 태도도 해결책이 아니다. 우리는 은혜가 넘치게 하려고 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미래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얻기 위해 예언과 묵시를 해독하려는 우리의 모든 시도가 결코 빠져들어서는 안 될 허망한 일임을 직시해야 한다.

_ “결론 : 읽기 전략” 중에서

 #신간안내  #하나님이커브볼을던지실때  #피터엔스  #노동래  #새물결플러스⠀『하나님이 커브볼을 던지실 때』 출간 안내_ 피터 엔스 지음, 노동래 옮김 | 320쪽 | 22,000원⠀[도서 상세 소개 및 바로구매 ...
16/06/2026

#신간안내 #하나님이커브볼을던지실때 #피터엔스 #노동래 #새물결플러스

『하나님이 커브볼을 던지실 때』 출간 안내
_ 피터 엔스 지음, 노동래 옮김 | 320쪽 | 22,000원

[도서 상세 소개 및 바로구매 ]
📖 https://holywaveplus.com/114/?idx=498⠀

*『하나님이 커브볼을 던지실 때』는 출판사 홈페이지에서 가장 먼저 구입할 수 있으며, 온/오프라인 서점에 배본되기까지 3~4일 정도 소요됩니다. (홈페이지 오전 11시 이전 주문 시 당일 출고)

[책소개]

인생에 닥쳐오는 예기치 못한 시련과 신앙의 위기는 우리를 좌절시키는 장애물이 아니라, 우리가 익숙하고 편협한 틀 안에 가두어 두었던 하나님을 넘어 더 크고 충만하신 본래의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창조적 걸림돌이다. 이 책은 인생의 전반기를 전통적인 신앙의 서사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온 한 구약학자가 삶을 뒤흔든 뜻밖의 위기들, 곧 ‘커브볼’ 같은 사건들을 통과하며 어떻게 새로운 신앙의 지평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담아낸 영적 회고록이다.

저자는 종교적 ‘두려움과 해법’에 기반한 전통적 신앙 모델이 복잡하고 불확실한 실제 현실을 해석하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기존에 우리가 믿어 온 하나님 이해가 삶의 실제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마주할 때, 많은 그리스도인은 행여라도 자신의 신앙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저자는 바로 그 흔들림이야말로 우리가 붙들고 있던 것이 살아 계신 하나님인지, 아니면 하나님에 대한 우리 자신의 익숙한 관념인지를 정직하게 분별하게 하는 복된 계기라고 말한다.

이 책은 신앙의 재조정을 망설이는 이들에게 설득력 있는 논지를 제시한다. 먼저 성경의 저자들 역시 초역사적인 진리를 객관적으로 기술한 것이 아니라, 고대 근동의 문화적 맥락 속에서 자신들의 세계를 이해하던 보편적 사유 방식, 곧 당시의 과학과 대화하며 하나님에 관한 경험을 해석하고 기록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렇듯 성경에는 시대와 상황의 변화에 따라 신앙의 언어와 이해를 새롭게 조정해 온 긴 전통이 흐르며, 요나의 사례처럼 원수를 향한 하나님의 시선조차 새롭게 성찰하도록 이끄는 대목도 포함되어 있다.

더 나아가 저자는 우주론과 양자물리학이 제시하는 현대 과학의 통찰을 통해 고정되고 정태적인 우주관에 갇힌 신학의 협소함을 드러낸다. 끝없이 팽창하는 우주의 광막함과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인 양자 세계의 신비는 하나님을 인간 이성의 통제안에 두려는 시도가 얼마나 무리한 일인지 일깨운다. 저자는 가장 미세한 아원자 세계에서도 만물이 상호 관계로 얽혀 있듯, 하나님 역시 창조세계의 모든 물질과 관계 속에 임재하시며 우리를 창조적인 미래로 이끄신다고 깊이 있는 통찰로 풀어낸다. 이를 통해 저자는 인간의 이성과 경험에 포획되고 박제된 작은 하나님이 아니라 만물을 초월하는 동시에 만물을 포용하는 크신 하나님을 신앙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이런 크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우리가 직면하는 삶의 위기들 앞에서 하나님의 역동성을 신뢰할 수 있게 도울 것이다.

오늘의 한국 교회 안에서도 많은 그리스도인은 검증된 인문 교양과 현대 과학 대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 사이의 간극 앞에서 적잖은 혼란을 겪는다. 자신의 경험과 이해만을 절대화하는 지적 폐쇄성은 정직한 탐구자들을 교회 밖으로 밀어내거나, 신앙을 방어적으로 굳어지게 만들기도 한다. 이 책은 바로 이 지점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이 필연적으로 겪어낼 수 밖에 없는 의심과 회의를 신앙의 위기가 아닌 성장의 계기로 전환하는 법을 보여 주며, 두려움에 근거한 확신을 넘어 호기심과 희망에 뿌리 둔 믿음으로 나아가도록 이끈다. 결국 신앙의 성숙이란 의심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가 아니라, 삶의 커브볼을 통과하며 더욱 깊어지고 넓어지는 과정이다. 이 책은 신앙과 학문, 성경과 현실 사이에서 성실하게 씨름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의 신비가 반드시 명쾌하거나 최종적인 방식으로만 주어지는 것은 아니며 그 본질이 결국은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에 닿아 있음을 새삼 일깨우는 탁월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지은이 및 옮긴이 소개]

지은이 | 피터 엔스(Peter Enns)

펜실베이니아주 세인트데이브즈 소재 이스턴 대학교의 에이브람 S. 클레멘스(Abram S. CLemens) 성서학 교수다. 그는 하버드 대학교, 풀러 신학교, 프린스턴 신학교 등 몇몇 다른 기관에서도 여러 과목을 가르쳤다. 엔스는 저널들과 백과사전들에 많은 글을 기고했으며, 『성경 너머로 성경 읽기』(The Bible Tells Me So, 새물결플러스 역간), 『성육신의 관점에서 본 성경 영감설』(Inspiration and Incarnation, 기독교문서선교회 역간)과 『아담의 진화』(The Evolution of Adam, 기독교문서선교회 역간)를 저술했다. 인기 있는 그의 블로그를 patheos.com/blogs/peterenns 에서 접할 수 있다.

옮긴이 | 노동래

서울대학교 공법학과와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금융공학 MBA 과정을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경영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동양증권 CRO, 녹색기후기금 임시 리스크 매니저, 새물결플러스 편집인 등으로 일했고 지금은 프리랜서로 번역과 교정 교열 일을 하고 있다. 『기원 이론』, 『아담과 게놈』, 『역사적 아담을 추적하다』, 『원죄와 타락에 관한 논쟁』, 『예수의 왕권 사상과 바울신학』, 『하나님은 정말 인종청소를 명하셨는가?』, 『죄의 기원』, 『칭의 대신 정의의 시선으로 로마서 읽기』, 『성경 너머로 성경 읽기』, 『하늘의 문』, 『미국 종교적 우파의 기원과 본질』, 『노아 방주에 새끼 공룡들을 태웠다고?』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목차]


머리말 풍성한 삶 15

1장 내 진정한 목적과 목적이 아닌 것 19

2장 나는 성경을 사랑하지만 “그” 방식으로 사랑하지는 않는다 39

3장 새로운 기준 안으로 들어온 것을 환영한다 61

4장 예수에 맞춰 조정하기 83

5장 눈 깜짝할 사이 99

6장 당신이 성경을 이해했다고 생각할 때 125

7장 다른 99퍼센트 151

8장 다른 사람들(어, 야호) 179

9장 양자의 기묘함 201

10장 양자 세계의 하나님 229

11장 얇은 장소들 253

12장 어렴풋한 것들을 포착하기 285

맺음말 이러면 어떨까? 305


감사의 글 308

참고문헌 311



[추천사 중에서]

이 책은 자신의 신앙과 현대 과학, 상식, 그리고 검증된 인문 교양 등과 괴리를 느끼는 관례적 교회 왕래자들이나, 교회의 지적 폐쇄주의 때문에 더 이상 교회에 다니지 않는 냉담한 신앙인들에게 크게 유익한 책이다.

김회권 |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구약학 교수


상실, 의심, 성경에 대한 낯선 질문, 과학과 우주의 광대함은 때로 우리의 믿음을 흔든다. 그러나 저자는 그 흔들림을 신앙의 파산으로 보지 않는다. 이 책은 신앙의 위기를 지나온 사람들에게, 더 크고 신비로우신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정직한 안내서다.

류호준 |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은퇴 교수, 다니엘의 샘 원장


신앙의 위기는 예고 없이 찾아오며 누구도 예외가 아니다. 이 책은 위기에 직면한 이들에게 진정성과 따뜻함으로 다가가며, 길을 제시하는 탁월한 길잡이다. 저자의 솔직한 고백에서 출발해 성서의 세계, 나아가 현대 과학과 우주의 신비에 이르기까지 독자의 지평을 자연스럽게 넓혀준다. 일상의 의심과 회의를 성장의 발판으로 삼는 통찰, 그리고 저자 특유의 재치와 유머가 어우러져 독서의 희열과 사유의 깊이를 동시에 선사한다.

윤철원 | 서울신학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신약학 교수

이 책은 우리가 물려받은 신앙의 틀과 실제 삶의 경험이 충돌할 때 찾아오는 질문들을 정직하게 마주하도록 돕는다. 신앙과 학문, 성경과 현실 사이에서 씨름하는 신학생과 목회자, 그리고 익숙한 확신을 넘어 더 깊고 넓은 믿음을 갈망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이 책을 권한다. 이 책은 지도와 같다. 스스로 길을 찾아 헤매어 본 이들에게만 의미가 있는 그런 지도다.

이민규 | 한국성서대학교 신약학 교수


피터 엔스는 우리를 겁먹게 하거나 놀라게 하거나 걱정하게 하는 기독교 개념들을 취해서, 그것들을 우리가 상상할 수 있었던 것보다 크시고 자유분방하시고 경이로우시고 신뢰할 수 있는 하나님과 만나는 지점으로 만드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사라 베시 |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 『기도의 리듬과 페미니스트 예수』 저자


누구도 피터 엔스보다 당신이 신앙의 위기를 더 솔직하고, 은혜롭고, 유머러스하게 헤쳐나가도록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리고 당신은 심지어 그 과정에서 성경에 관한 놀라운 사실들도 배울 것이다. 이 책은 그랜드 슬램이다.

브라이언 D. 맥라렌 | 『의심 뒤의 신앙』 저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신자가 신앙의 위기를 겪고 있는 현재, 이 책은 우리 모두 기다리던, 여정의 해체를 위한 지침이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신앙의 위기들은 뭔가 두려워 할 대상이 아니라 당신이 하나님을 좀 더 아름다우시고 자애로우시고 신비로우신 분으로 다시 포용하도록 도와줄 수 있는 영적 성장을 위한 기회임을 상기시켜 준다.

조너선 메리트 | 「디 애틀랜틱」 기고자이자 『하나님을 처음부터 말하는 법 배우기』 저자


피터 엔스의 영적 회고록은 성경적·신학적 통찰과 더불어 재치와 지혜를 결합한다. 피터가 겸손하게 제안하는 하나님에 대한 관점은 우리에게 주어진 관점과 다르다. 그리고 좀 더 매력이 있다.

토머스 제이 오어드 | 『하나님이 그러실 리 없다』 저자

이 책은 신실한 친구가 들려주는, 하나님의 신비가 확실하거나 최종적이어야만 그것이 사랑에 기초하는 것은 아니라는 친밀한 증언이다.

트립 풀러 | 「홈브루드 크리스채너티」 팟캐스트 호스트




[본문 중에서]


나는 당신이 당신에게 들어오는 커브볼들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말하기보다는 내가 내게 들어오는 커브볼들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조금 설명하려고 한다. 나는 각본에 전혀 들어 있지 않던 많은 경험을 했는데 그 경험들을 무시할 수 없었고 그것들은 나를 하나님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장소로 밀어 넣었다. 나는 당신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를 말해 줄 수 없지만, 당신에게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내부의 음성을 좀 더 많이 인식할 것과과 그런 조정에 관해 낙담하거나 그것이 신실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말 것을 권장한다. 나는 당신이 보편적인 길을 걷고 있음을 보장한다.

1장_ 내 진정한 목적과 목적이 아닌 것 중에서

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커브볼들이 들어올 때 좀 더 훌륭한 타자가 되고 좀 더 나은 기량과 지식을 갖추고 경기를 하도록 우리의 믿음을 기꺼이 조정하기를 기대하신다고 믿는다. 하나님에 대한 관점이 그렇게 새로워지면, 우리는 그 신성한 텍스트들이 우리의 세상에서 담당할 수 있는 좀 더 넓은 역할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텍스트들은 독자들에게 그들이 이 세상과 심지어 우주에서 자신의 위치를 이해하기 위한 내러티브들을 제공한다. 즉 신성한 텍스트들은 우리가 모든 것의 의미를 이해하도록 도움을 준다. 고대 세계에서 나온 그 내러티브들을 우리 자신의 세계 안으로 바꾸어 놓는 것이 이 텍스트들의 독자이자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인 우리가 할 일이다.

2장_ 나는 성경을 사랑하지만 “그” 방식으로 사랑하지는 않는다 중에서

신앙은 개종하는 것 이상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신비에 대한 더 깊은 호기심과 그 신비와의 교제로 나아가는 길이다. 적어도 이것이 내가 진실이라고 깨달은 내용이며, 오랫동안에 걸친 나 자신의 팔꿈치 부상과 다른 커브볼들이라는 경험이 나를 이러한 깨달음으로 천천히 이끌었다. 그리고 아마도 이 신앙은 우리의 마음에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내장에서, 우리의 몸 전체에서 느껴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좌뇌에서뿐만 아니라 우뇌에서도 느껴지고 우리의 신앙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세운, 지진에 안전한 구조물에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본능에서도 느껴져야 한다. 나는 하나님에 대한 나의 이해를 조정하도록 하는 자극들이 문자적으 로 나의 주변 모든 곳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바로 하늘이 그것들을 외치고 있는데, 하늘이 가장 분명하게 외치는 단어는 “신비”다.

4장_ 예수에 맞춰 조정하기 중에서

내게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내가 익숙했던 하나님을 의도적으로 넘어서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내 젊은 시절의 하나님에 관한 문을 닫고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가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조정하는 것은 정의상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종류의 조정을 할 것인가가 진정한 질문인데, 이것이 바로 씨름이 일어나는 곳의 중심이다. 그 씨름은 확실히 불편하고 지루하며 위협적이고 때로는 패배했다고 느끼게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이 모든 것의 하나님이 이해되거나 내 통제 아래로 들어올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되어 큰 위안을 느꼈다. 나는 두려움이 아니라 호기심을 갖고 내 주위의 우주를 직면할 수 있다.

5장_ 눈 깜짝할 사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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