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2026
선교적 설교
설교가 예전과 달리 통하지 않는다고 느끼신 적 있으신가요? 제대로 느끼셨습니다. 청중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신앙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 성도, 반신반의하며 따라온 가족, 교회 밖 세상의 냉소적인 시선. 이 낯선 환경에서 우리는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할까요?
좁은 우물을 넘어 하나님 나라의 광장으로
Al Tizon, Missional Preaching: Engage, Embrace, Transform (Judson Press, 2012)
가장 먼저 마주해야 할 질문은 '우리의 복음이 너무 작지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알 티존은 설교가 개인의 내면적 평안이나 개교회 성장에만 머물러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합니다. 그는 우리의 설교가 '개인의 심리 치유'를 넘어, 세상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을 선포하는 거대한 드라마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티존이 제안하는 '하나님 나라 해석학'(Kingdom Hermeneutics)은 성경을 읽는 우리의 시선을 교정해 줍니다. 본문을 읽을 때 "이 말씀이 나에게 어떤 위로를 주는가?"에 그치지 않고, "이 말씀이 가난, 정의, 화해, 생태 등 신음하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통치를 어떻게 보여주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설교는 성도들을 단순히 위로하는 시간이 아니라, 그들이 세상의 구체적인 고통에 참여하고 소외된 이웃을 포용하며 변혁의 주체로 서게 하는 거룩한 초청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고 그는 말합니다.
적대적인 청중 곁에 앉아 대화를 시작하다
Stephen Stallard, Missional Preaching: Communicating the Gospel in an Age of Unbelief (B&H Academic, 2025)
이 거대한 복음을 누구에게, 어떻게 전해야 할까요? 여기서 우리는 2026년의 냉혹한 현실과 마주합니다. 스탈라드는 우리에게 "성가대는 떠났다"는 사실을 직시하라고 조언합니다. 과거처럼 설교자에게 우호적이고 "아멘"으로 화답하던 청중은 줄어들었고, 그 빈자리는 회의론자와 기독교에 상처 입은 이들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고압적인 선포는 오히려 마음의 문을 닫게 만듭니다. 스탈라드는 설교자가 '톤'을 낮추고 청중 곁으로 내려올 것을 권합니다. 그는 골치아픈 내부의 문제(Elephant in the Room)를 인정하는 전략을 제안합니다. 이는 현대인이 느끼는 기독교의 배타성이나 성경의 난해함을 설교자가 먼저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입니다. "저도 이 말씀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라는 설교자의 진솔함이 오히려 신뢰를 형성한다는 것입니다. 논쟁으로 이기려 하기보다 기독교 신앙이 얼마나 선하고 아름다운 삶의 방식인지를 이야기로 들려줄 때, 비로소 소통의 문이 열린다고 그는 주장합니다.
경직된 강의가 아닌, 영혼을 울리는 즉흥 연주
Mark Glanville, Preaching in a New Key: Crafting Expository Sermons in Post-Christian Communities (IVP Academic, 2025)
설교를 담아내는 그릇인 '형식' 또한 새로워질 필요가 있습니다. 매주 고정된 원고를 낭독하는 방식만으로는 급변하는 성도들의 삶에 가 닿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글랜빌은 설교자를 '재즈 연주자'에 비유하며, 설교를 하나의 예술적 행위로 격상시킵니다.
재즈 연주자가 화성학이라는 전통을 완벽히 익힌 뒤 현장의 분위기에 반응하여 즉흥 연주를 하듯, 설교자 또한 성경 텍스트에 깊이 뿌리내리되 회중의 구체적인 아픔과 시대의 공기에 반응하며 매주 새로운 메시지를 빚어내야 합니다. 글랜빌은 '흐름 뒤집기'를 통해 성경에서 출발해 삶으로 내려가는 연역적 방식 대신, 청중의 찢긴 삶과 질문에서 시작해 성경으로 올라가는 귀납적 여정을 제안합니다. 이를 통해 설교는 지식을 전달하는 강의가 아니라, 파편화된 개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를 돌보는 '친족' 공동체로 묶어내는 치유의 시간이 된다고 말합니다.
주일의 아멘을 월요일의 삶으로
Sally Brown, Sunday's Sermon for Monday's World: Preaching to Shape Daring Witness (Eerdmans, 2020)
이 모든 설교의 여정이 도착해야 할 곳은 어디일까요? 브라운은 우리의 시선을 주일 예배당이 아닌, 성도들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월요일의 세상'으로 돌려놓습니다. 그녀는 설교가 주일 안에만 머물 때, 성도들은 세상 속에서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지적합니다.
브라운에게 설교는 '상상력 있는 리허설'입니다. 성도들이 직장 상사의 부당한 지시 앞이나 윤리적 갈등 상황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든 사람이라면 여기서 어떻게 다르게 반응할 것인가?"를 미리 그려보고 연습하는 시간인 것입니다. 그녀는 설교자가 성도들을 교회 봉사자가 아닌 일상의 선교사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삶의 현장에서 세상의 부조리한 흐름을 끊어내고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구속적 개입'(Redemptive Interruption)을 할 수 있도록, 설교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대본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네 권의 책을 통해 우리가 확인하는 것은 부담감이 아닌 해방감입니다. 선교적 설교는 목회자가 모든 정답을 제시하는 수퍼맨이 되어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강단의 높이를 낮추고 성도들의 질문 곁에 앉아, 성경이라는 텍스트와 세상이라는 컨텍스트 사이를 성실하게 연결하는 다리가 되라고 말합니다.
성가대가 떠난 빈자리는 실패의 자리가 아닙니다. 그곳은 우리가 세상의 아픔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고, 더 낮은 자세로, 그러나 더 깊은 울림으로 복음을 노래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새로운 무대일지도 모릅니다. 이번 주일, 화려한 언변보다는 성도들의 삶을 어루만지는 진실한 공명으로 강단에 서보시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