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학교-혁신파크

오디세이학교-혁신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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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 고교 자유학년제
서울혁신파크에서 오디세이학교 항해를 시작합니다.

14/07/2021

7월 15일 저녁, 오디세이 혁신파크 7기 친구들의 1학기 학습공유회가 열립니다. 엇박과 정박을 오가며 마침내 항구에 정박한 오디세이 혁신파크 열여섯명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주세요.

언제? 7월 15일 (목) 18:30 ~ 21:00
어디서? 유튜브 라이브 (시작 10분 전에 링크가 오픈됩니다)

Photos from 오디세이학교-혁신파크's post 30/06/2021

오디세이 혁신파크 7기 학생들의 프로젝트 전시회가 열립니다. '도시관찰자' 사진팀과 '가치를 담은' 지도팀이 일구어낸 결과물과 배움의 발자취를 고스란히 담은 전시회에 여러분을 초대하고자 합니다.

코로나 방역 지침 준수를 위해 시간대별 입장객 수를 조절하려 사전 관람 신청을 받고 있습니다. 방문을 원하시는 분은 아래 링크를 통해 관람을 신청해 주세요.

관람신청 하는 곳(구글폼) :
https://forms.gle/mfQanwkX89uYnqBg9

Photos from 오디세이학교-혁신파크's post 09/06/2021

두 팀으로 나뉘어 수산리와 볍씨학교 제주학사를 찾아간 여행 넷째날의 이야기입니다. 두팀으로 나뉘어 활동한 날이기도 하고 학생들의 기록을 충분히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워 오늘은 타이가, 소월, 레오 세 분의 일기를 함께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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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7일 목요일

[길잡이 일기]

이곳의 아침이 소리로 가득 차 있는데도 고요하다고 한 말을 취소해야겠다. 어느새 몸이 적응했는지 오늘 아침에는 요란한 새소리에 알람보다 먼저 잠이 깼다. 전날 내린 비로 땅이 젖어 있어 있는데다 아침 일정이 바쁘기도 해서 오늘은 오름 산책을 생략하기로 했다. 일곱시에 마당에 모여 간단한 스트레칭을 한 뒤에 각자 아침식사를 하고 나서 볍씨학교 팀과 수산리 팀이 각각 모였다.

볍씨학교는 경기도 광명에 있는 대안학교로 초등과 중등이 통합된 과정인데, 마지막 9학년 한 해를 가족들과 떨어져 제주 학사에서 생활한다고 한다. 볍씨학교 팀은 오늘 하루를 함께 지내며 그들의 생활과 배움을 접해보는 시간을 가질 계획이다. 수산리는 제주 제2공항 예정지이다. 수산리팀은 마을 주민이자 제2공항 성산읍 반대 대책위 사무국장인 오창현님을 만나 주민들의 목소리를 들어볼 것이다.

레오, 규진, 타이가, 루, 우주, 노벨, 민들레, 준붕 그리고 길잡이 쑥갓이 조천읍 선흘리 마을에 있는 볍씨학교 제주학사에 도착한 것은 약속시간인 오전 10시가 되기 조금 전이었다. 마을의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다 보니 교문이 아닌 나무 대문 옆에 볍씨학교 제주학사라는 작은 글씨가 보였다. 학교 건물이라기보다는 마당이 있는 ㅁ자의 시골집 같아보여 아늑했다. 마당에서 어색어색하게 첫인사를 나누고 난 후에 볍씨학교 학생들이 학교 공간을 소개해주었다.

공간 소개를 들으며 자연스레 그들의 생활이 그려졌다.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왼편에 있는 가마솥이 걸린 아궁이가 있는데, 밥지기를 맡은 학생이 아침마다 거기에 불을 때서 밥을 짓는다고 했다. 처음에는 밥 짓는 일이 서툴어서 새벽 네 시에 일어나기도 했는데 요즘에는 한 시간이면 거뜬하다고. 열여섯살 학생들이 밥물 넘치는 것을 보아가며 불을 조절해가며 한 시간만에 15인분이 넘는 밥상을 차려내다니 놀라웠다. 하지만 가장 낯선 것은 역시 화장실이었는데, 인분으로 퇴비를 만들기 위해 볼일을 보고 난 후에는 볏짚과 섞어 따로 모아둔다고 했다. 수세식 화장실에 익숙한 내게는 다소 충격적일만큼 생소한 광경이었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한 생겨날 수 밖에 없는 똥오줌을 그저 눈에 안보이는 곳으로 치워버리는 도시의 방식보다 자연의 순환을 활용하는 이곳의 방식이 한결 우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에는 다함께 큰 방에 둘러앉아 서로의 학교와 배움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침마다 왕복 2km 거리의 동백동산을 달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데, 각자의 속도로 달리되 '첫째반드시 최선을 다해야 하고, 둘째 한 걸음도 걷지 않는 것'이 규칙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각자 자신의 숨길이를 가늠해가며 저마다의 한계에 직면하되, 조금씩 그 선을 넓혀가면서 성취를 맛보는 방식이 멋져보였다. 아침운동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다루는 법'을 익히는 과정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처음에는 40분 가까이 걸렸는데 지금은 15분까지 시간을 단축했다고 말하는 학생의 표정에서 자기 자신을 이겨내본 이의 자부가 엿보였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함께 동백 동산을 산책하고(다행히 뛰지는 않았다. 아침마다 교사도 같이 뛴다는 말에 헉, 했는데..), 볍씨학교 학생들이 직접 지었다는 커뮤니티홀 건물을 둘러보았다. 방문 전에 언론 기사를 통해 소강당을 학생들이 직접 돌을 쌓아올려 지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는데, 실제로 건물을 보니 깜짝 놀랄만큼 크고 번듯한 건물이어서 혀를 내둘렀다. 프로젝트 수업을 기획할 때마다 "어떻게 하면 그저 우리끼리 한 번 해보는 데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스스로와 세상에 이로움을 주는 성취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고민하는 나로서는 돌벽보다도 그 성취가 더 단단하게 느껴졌다.

오후에는 밭일을 했다. 볍씨학교 학생들이 경작하는 땅은 3000평이나 되어서, 자신들이 먹을 것을 거둘 뿐 아니라 시장에 내다 팔아서 소득을 얻기도 한단다. 이날의 작업은 콩, 감자, 옥수수 밭에서 잡초를 뽑는 일이었는데, 특별한 힘이나 기술이 필요한 건 아니었지만 햇볕을 등지고 쪼그려앉아 일을 하려니 쉽지 않았다.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면 좋으련만, 서로에게 말을 거는 것이 아무래도 쑥스러운 듯했다. 나만 간간이 볍씨학교 친구들에 말을 붙였다. 그나마도 한 시간이 넘어가면서부터는 익숙지 않은 농사일에 체력이 바닥난 오디세이들의 입은 한층 더 무거워졌다. 길잡이로서는 힘들고 덥고 지쳤을 때 각자의 반응을 살피는 일이 흥미로웠는데, 랩을 하듯 타령을 쏟아내는 사람도 있었고, 입을 꾹 다물고 일에 달려드는 사람도 있었다. 물을 마신다는 둥 화장실을 간다는 둥 하면서 5분마다 자리를 떴다가 한참만에야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이도 있었다. 밭일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한 후에 작별인사를 나누고 숙소로 돌아왔다. 낯선 사람과 문화에 흠뻑 젖어본 하루였다. 돌아오는 길에는 모두가 말을 잃은 듯 갈때와는 달리 차 안이 고요했다.

저녁식사 후에는 각 팀의 만남을 서로에게 소개하는 공유회가 있었는데, 나는 한 달마다 하는 온라인 북클럽을 진행하느라 참여하지 못해 너무너무 아쉬웠다. 말미에 살짝 보았는데 볍씨학교 팀이 자신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신나게 자랑(?)하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수산리 팀의 이야기는 하루닫기 시간에 들을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우리보다 훨씬 안락한 시간을 보내고 온 듯하다. 오회장님(학생들이 이렇게 부르더라)이 퍽 유쾌한 분이었나보다. 우리가 이틀 전에 을 봤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 자리에서 오멸 감독님에게 전화를 거시는가 하면(무려 '지금 올 수 있냐'고 물으셨다던데, 마침 감독님이 먼 곳에 가 있으셔서 안타깝게도 만남은 무산되고 전화통화로 대신했다고), 여행 전에 소월이 읽은 의 허은실 작가님을 즉석에서 불러주시기도 했단다.

수산리 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여행 중에 우리에게 쏟아진 제주분들의 엄청난 호의에 대해 생각했다. 숙소인 유채꽃프라자의 식구들은 우리가 머무는 동안 아예 카페 영업을 접고 세심하게 우리를 살펴주셨고 평화기행 안내를 맡은 양대표님은 우리가 마지막날 4.3 기념관에 방문할 예정이라는 말을 듣고는 해설을 자처하셨다. 볍씨학교 식구들은 하루 일과를 비워 우리와의 만남을 준비해주셨고, 수산리의 오창현 사무국장님 역시 기꺼이 우리에게 시간과 기회를 내어주셨다. 4.3 평화기행 중에 만난 분이 우리에게 오히려 '고맙다'고 말씀하셨을 때는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다. 이 과분한 호의는 어디에서 온 걸까? 아마도 열일곱 청소년들이기에 받을 수 있었던 축복일 것이다. 배움에는 때가 없다지만, 이런 축복을 언제까지나 누릴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즐기러가 아니라 배우러 제주로 향한 우리의 마음이 그분들께 조금이라도 전해졌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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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일기 by 타이가]

볍씨학교 팀은 8시반에 모두 집합하여 버스 팀, 차 팀으로 나뉘어 출발하였다. 버스팀도 정거장까지는 차로 가야 했는데, 쑥갓은 운전도 깔끔하게 잘하실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스스로 잘 못한다고 하셔서 조금 놀랐다. 어쨌든 버스에서 내려 몇분 걸어 도착한 볍씨학교는.... 적어도 외관상은 학교가 아니었다. 이것도 선입견일 수 있지만, 학교보단 집, 그것도 옛날 집에 더 가까운 건물들이 서있었다. 그곳에는 라봉이라는 개가 함께 살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엄청 짖어대더니 쓰다듬어주면 좋아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오전 시간은 볍씨학교 건물들의 대한 설명을 듣고 돌집 내에서 미리 선정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일정이었다. 주로 볍씨학교에 대한 소개와 질의응답이 이루어지고 오디세이 학교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 나왔는데. 볍씨학교 학생들은 부모님의 도움보다는 알바를 나가 번 돈으로 많은 것들을 해결한다는 점이 인상깊었다. 게다가 빨래, 밥, 건축 소위 의식주를 학생들이 모두 관리한다니.... 그래서인지 앳된 얼굴임에도 벌써 성숙한 모습이 보였다. 물론 나는 자식을 키우기 싫지만, 만약 키우게 된다면 8살에 경기도 볍씨학교부터 보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하는 공부는 흔한 학교 공부가 아니었다. 살기 위해 익혀야 할 것들을 배우는, 공부의 대상이 시험이 아니라 삶 그 자체가 되는 진짜 공부였다. 목요일 하루닫기 때는 ‘나는 가기 싫지만 자식은 보내고 싶다’ 라는 농담 반 진담 반 섞인 소리를 했지만, 사실 진심으로 내가 볍씨학교의 존재를 안 상태로 중2나 그 이전으로 돌아간다면, 힘듦을 무릅쓰고, 아니 오히려 힘듦을 경험하러 진학하고 싶을 정도로 좋은 학교였다.

볍씨학교 학생들이 주신 소중한 밥을 먹고, 오후 농사 시간이 왔다. 밭으로 오고 가는 동안 트럭에 탔는데, 내가 예전부터 타보고 싶었던 자리여서 타는 동안 기분이 좋았다. 우리가 밭에서 한 일은 한마디로 잡초 뽑기였다. 드넓은 밭에 자리를 옮겨다니며 잡초를 열심히 뽑았다. 힘들어서 갈수록 집중력이 떨어졌지만 나중에 감자, 옥수수, 콩 등의 작물만 남아있는 밭을 보니 뿌듯했다. 우리는 오늘 한 번 도와주고 가는 것이기에, 적어도 해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기뻤다. 중간 쉬는시간에 먹었던 인절미와 주스가 그렇게 맛날 수 없었다.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쑥갓의 차를 기다리는 동안 규진이와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었는데, 그것도 개꿀맛이었다.

저녁을 먹고 제2공항 건설 예정지를 다녀온 팀과의 공유회를 가졌는데, 그 이전 준비하는 시간의 분위기가 살벌했다. 친구들이 여행동안 쌓인 피로로 조금 예민한 상태에서 어떻게 준비할지에 대한 논의가 꼬이다 보니 종종 언성이 높아졌다. 친구들이 그렇게 민감보스인 적은 처음이어서 조금 쫄았다. 그래도 베델이 중간에서 잘 중재해주셔서 원활히 진행되었고, 그때 분위기 전환용으로 구슬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내 기억으론 그것을 평생 처음 먹어보는 것이어서 그 사실에 스스로 놀랐다. 그렇게 시작된 공유회는 준비 시간이 부족했다 보니 모두 발표가 조금 부실하다는 느낌을 개인적으로 받았다. 나도 발표할 때 몇마디 잘 나가다가 중간에 머리가 하얘져 말문이 막혀서 너무 아쉬웠다.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말이다.

하루닫기 시간에는 산이와 우주가 약속된 시간이 지난 후에 방문 밖으로 나왔던 사건에 대해 다뤘는데, 나도 자정 넘어 10초간 방에서 나가 있었던, 엄밀히 규칙을 어긴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수를 하였다. 많은 친구들이 산이와 우주의 행동에 걱정이 되었고 화가 나기도 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리고 나같으면 이상한 의리(?) 때문에 괜히 말 못할 것 같은데, 이 이야기를 용기있게 처음 한 난이가 새삼 멋져보였다. 일반 학교 같은 경우는 괜히 일을 크게 벌리면 안되기 때문에 혼내더라도 개인적으로 혼내거나 눈감아주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이런 것을 모두가 함께 자유롭게, 진지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고 느꼈고 은근히 오디세이 뽕(?)이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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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일기 by 소월]

원래 우리 조가 가려고 했던 강정마을 옆마을에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고 그래서 우리 조는 반으로 갈라져서 볍씨학교, 수산리로 나뉘게 되었다. 또 다시 버스를 타야한다는 생각이 너무 싫었지만 깼다 잤다 하면서 수산리 1동으로 도착하였다.

처음 입구에서 부터 제2공항 반대라는 깃발이 꽂혀있었고 그때 부터 아 여기는 진심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는 수산리 학교를 갔었고 우리는 청년회장님 보다 어떤 떠돌이 강아지가 먼저 우리를 환영해줬었다. 사실 환영해줬다는 생각에 베델과 난이는 공감하지 못한듯 싶다. 두분다 돌담 위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고 우리는 아랑곳 하지않고 황구와 놀았다. 그렇게 이장님이 오시고 마을 한바퀴를 돌려고 먼저 마을 회관으로 가고 있었다(황구는 가지 않았다). 마을 회관 옆에는 최융양이라는 사람의 공덕비가 있었고 그 사람이 누구냐면 4.3 사건때 이곳에 주둔했던 장교였는데 마을 주민들은 그 사람에게 제발 해치지 말아달라고 하면서 고기나 떡을 가져다 주기도 하고 그러다가 공덕비까지 세우게 된 어떻게 보면 이런 4.3이 결국 폭도들이 일으킨 것이 아닌것은 그 군인들도 알고 있었다는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싶다. 그 이야기를 듣고 (황구는 자기 갈길 갔다.) 부부석을 들렀는데 무슨 엄청난 폭우(?)가 있었어서 아내 돌이 멀리 떠내려 갔는데 그 뒤로 마을에서는 안좋은 일만 생기다가 지나가던 스님이 저 돌은 아내가 있어야 한다고 해서 결국에는 같이 붙여놓았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그 뒤에는 현대식 빌라가 있었는데 이명박 정부때 시골의 분교들을 통합하려는 움직임이 보여서 학생 수를 모으고자 수산리 학교에 추억이 있던 마을 사람들이 돈을 모아 무려 7억이라는 돈으로 빌라(기숙사?)를 짓게 되었다고 하셨다. 하지만 이렇게 지켜냈던 학교가 공항으로 부터 겨우 800m 정도의 거리만 있어서 소음과 커다란 비행기들이 지나가며 학생수가 줄고 결국에서 사라질 거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 학교가 사라지면 안되는 이유를 하나 더 들어주셨는데 옛날에는 현무암으로 성곽을 만든게 있었는데(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그게 거의 다 사라졌지만 유일하게 이곳에 남아있었고 그 이유가 해방 후 즉시 (수산리)학교가 생기고 그 학교의 담장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을 수 있었다고 설명 해주셨다.

다시금 느끼는 거지만 정말 말을 못하셨다. 어쩌면 어제 말씀을 들었던 할머님보다 정리가 어려웠구나 싶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그런 투박한 말투가 정겹게 느껴졌고 우리를 이상하게 유혹하려고 하는게 아닌 그 말투속에서는 자신의 소중한 추억과 마을 사람들의 삶의 원동력이 담긴 마을을 공항으로 부터 지키고자하는 순수한 의도가 느껴졌기에 더욱 와닿았던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카페에 도착해서 제2공항의 음모(?)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1. 안개일수가 조작이 되었다(다른곳의 기준은 10년 성산은 7년). 2. 새들이 나는 높이는 100m 밖에 되지않아 버드 스트라이크 위협이 없다? (사실은 1km 이상 올라가는 새들도 있고 100m는 택도 없음) 솔직히 이것으로만으로도 짜증이 나는데 천연기념물 1급인 매의 서식지가 항로에 바로 들어가 있고 심지어 그 서식지를 한라산으로 옮겨주겠다는(?)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나 하고 있는 국토부가 미웠다. 왜 하필 성산일까? 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지만 일반인은 알길이 전혀 없었다.

카페에서 정말 맛있는 한라봉라떼를 먹고 국숫집으로 들어가 진짜 감격의 흑돼지 비빔면을 먹었다. 그렇게 제일 편안한 일정을 보내고 숙소로 도착해서 다른 볍씨마을로 간 친구들을 기다리며 놀고 있었고 그 친구들이 정말 죽을것 같은 몰골을 하고 돌아왔어서 뭔가 미안했지만 나도 처음에는 볍씨 학교 가려고 했던것을 생각 해보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그날은 편안하게 발표준비를 하고 그 다음날 집갈것을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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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일기 by 레오]

넷째 날에는 팀을 나누어 볍씨 학교와 수산리 마을에 갔다. 원래는 강정마을도 선택지에 있었지만 갑자기 그 옆마을에 코로나 확진자 나오며 취소 되었다. 나는 렌터카를 타고 볍씨학교로 갔는데, 쑥갓이 운전을 하며 자꾸 우리에게 “오는 데에는 순서 있지만 가는 데에는 순서 없다”, “우리가 한날 한시에 죽을 수는 있다”는 경고의 말들을 하셔서 너무 웃겼다. 볍씨 학교는 생각보다 허름하고 생각보다 친근한 집같은 곳이었다. 딱 차에서 내리자마자 풍긴 흙냄새와 곳곳에 만연한 벌레들은 낯설고 조금은 싫었지만 그래도 그들의 삶의 방식을 잘 이해할 수 있게했다. 학교 소개를 받고 우리 모두는 볍씨학교 학생들이 직접 지은 돌집에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볍씨학교에 대해서도 알게 됐고, 전날 저녁부터 준비한 오디세이학교에 대한 소개도 했다. 누군가에게 우리를 소개한다는 것은 늘 새롭고, 어색한 일인 것 같다. 볍씨학교의 시스템은 여러모로 충격적이었는데, 그 중 화장실이 제일이었다…

그 후에는 볍씨학교 친구들이 직접 만든 점심을 먹었다. 남기면 안 된다는 말에 평소에 먹는 것에 한 3배는 먹은 것 같다. 식사 중간에 나물에 파리가 앉았는데, 개의치 않고 그냥 먹는 모습에 내가 너무 예민떠는 건가, 나의 위생관념이 너무 유난스러운가 하는 생각이 들어 약간 그렇긴 했지만 맛있었다. 밥을 먹고 동네를 한 바퀴 돌며 볍씨학교의 다른 공간들과 밭에 대한 소개를 듣고, 트럭 뒷자리에 타고 밭일을 하러 나갔다. 볍씨학교 친구들은 모두 중무장을 한 상태였는데 우리는 그냥 옷을 입고 가서 약간 걱정이 됐고, 그 걱정은 현실이 됐다. 일이 끝날 즈음에는 모두 화끈거리는 팔과 탄 피부를 얻을 수 있었다. 우리가 할 일은 밭에있는 잡초를 뽑는 일이었다. 사실 나는 그 다리를 하고 밭일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너무 자연스럽게 호미(골괭이)를 인원수대로 주길래 그냥 받아서 했다. 뭘 뽑아야 하는 지 몰라서 그냥 막 뽑았다. 지금 와서 솔직히 말하자면 뽑지 말아야 할 것을 좀 뽑은 것 같다. 밭을 갈아엎는 동안 벌레도 많이 봤다. 벌레, 지렁이, 달팽이… 처음에는 약간 놀라기라도 했는데 나중에는 익숙해져서 그냥 걔네를 다시 묻어줬다. 규진이는 애완 달팽이도 발견했다. 볕도 강했고, 밭이 너무 넓어(높은 확률로 우리에게만) 일을 하며 친구들이 많이 힘들어 했다.

그 힘든 상태에서 친구들이 나눈 대화가 나에게 좀 충격적이었다. 뭐 너무 힘들다, 하기 싫다는 말도 있었고, 수산리에 간 팀이 숙소에 도착했다는 카톡을 봤을 때는 불만의 말도 많이 들렸다. 그 와중에 한 친구가 나는 농사와 맞지 않는 것 같으니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말을 했을때는 진짜로 헉 했다. 그 앞에는 매일같이 이 일을 하는 친구들이 있었고, 그 말 속에 숨은 의미는 단순히 나와 농사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었기에 더 민망했다. 우리 친구들은 나쁜 의도가 없었겠지만 그냥 우리의 말이 어떻게 들렸을지 상상하니 너무 쪽팔렸다. 그래서 말없이 좀 더 열심히 했던 것도 있는 것 같다. 밭일을 한 3시간 하고 나니 깁스 안으로 흙이 다 스며들어 시커먼 색이 됐고, 나는 너덜너덜한 만신창이가 됐다. 거의 기절한 상태에서 숙소로 와 씻고 밥을 먹고 공유회 준비를 했다. 다 예민한 상태여서 거의 싸움이 날 뻔 했지만 구슬아이스크림의 힘으로 어떻게 잘 끝났다. 수산리 팀의 공유도 듣고, 우리도 설명을 한 다음 질문을 받았는데, 친구들이 볍씨학교에 대해 궁금한게 굉장히 많았어서 놀라웠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우리가 그곳에서 느꼈던 좀 그랬던 것들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나만 그런 감정을 느낀게 아니었다는 안도감이 들면서 동시에 내가 서울촌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하루닫기에서는 불편함에 대한 대화가 오갔다. 볍씨학교 친구들은 어떤 가치를 위해 그 어마어마한 불편함들을 감수하며 사는 걸까 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또 우리가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견뎌내야만 할 일이 뭐가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규칙에 대한 얘기도 나왔다. 우주와 산이가 통금시간 후에 복도에 나왔던 일로 시작된 대화였는데, 어쩌다보니 전반적인 우리의 태도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나도 그 전부터 품었던 불만이 있었기에 한마디 덧붙였다. 계속 그런 행동을 한다면 다른 친구들은 몰라도 나의 실망은 확실히 얻게 될 것이라는 투의 말이었는데, 이미 그 행동을 하는 친구에게는 레오의 실망이 의미없을 거라는 베델의 말이 충격적이었다. 또 어떤 규칙을 어기고 합의를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그 신뢰를 바탕으로 한 많은 일들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는 쑥갓의 말이 인상깊었다. 무거운 분위기에서 제주도에서의 마지막 밤이 지나갔다. 우주가 같이 하자고 가져온 슈렉 팩은 붙이고 누워 있다가는 7시에 피부가 초록색인 채로 눈을 뜨게 될 것 같아서 끝내 하지 못했다. 그건 좀 아쉽긴 하다.

Photos from 오디세이학교-혁신파크's post 08/06/2021

섯알오름부터 월령리 마을까지, 4.3 사건의 흔적을 따라 걸으며 대화를 나누었던 셋째날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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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6일 수요일

[길잡이 일기]

여행 셋째 날. 민들레의 생일이기도 하다. 어제도 12시를 넘겨 일과가 이어졌기에 자정이 되는 순간 하루닫기를 잠깐 멈추고 들레에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촛불 대신 이쑤시개로 화려하게 장식된 몽쉘도 증정하고. 일곱시에 마당에 모여 컨디션을 점검한 후 숙소 뒤편의 큰사슴이오름을 오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발목을 다친 레오가 숙소에 남아 아침식사 세팅을 해주었다. 고맙기는 하지만 누구보다 오름에 오르고 싶었을 레오가 안쓰럽다.

오늘의 일정은 '4.3 평화기행'. 유일하게 온종일 전세버스로 움직이는 날이다. 아홉시에 숙소에서 출발, 한 시간 거리의 알뜨르비행장과 섯알오름, 송악산 동굴진지를 둘러본 후에 4.3 사건으로 잃어버린 마을인 무등이왓에 가서 4.3 사건의 생존자 홍춘호 할머니를 만난다. 이후 영화 이야기의 배경이 된 동굴인 큰넓궤를 들렀다가 '무명천 할머니'로 알려진 고 진아영 할머니의 삶터를 방문하는 일정이다. 버스가 출발하자 오늘 안내를 맡아주신 제주다크투어의 양성주 대표님이 일정 소개를 해주셨다. 대표님은 4.3희생자 유족회의 사무처장으로도 활동하신 분이다. 할아버지께서 불법 군사재판을 받고 형무소에 계시다가 행방불명되셨다고 한다. 버스 안에서 4.3 사건 당시 우리가 묵고 있는 가시리와 표선에서 벌어진 일들을 짤막하게 들려주셨다.

섯알오름은 예전에 친구와 함께 올레길을 걸으며 지나친 적이 있는 곳이다. 무심히 표지판을 읽다가 너무나도 엄청난 집단학살 사건을 접하고 다시 길을 나섰더니, 이번에는 감자밭 여기저기에 무수한 격납고가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보고 충격에 휩싸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황당할 정도로 멀쩡하게 남아 있는 격납고들이 거기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의 패색이 짙어지자 제주도를 요새화하여 옥쇄(!)하려했던 일본군이 제주도민들을 동원하여 만든 군사시설의 일부라고 한다. 이러한 시설들이 해안가 절벽, 중산간 등 곳곳에 남아있다는 이야기를 대표님이 들려주셨다. 섯알오름에서는 규진이 대표로 향을 피우고 잠시 묵념을 했다. 끌려가던 이들이 죽음을 직감하고 가족들이 찾을 수 있도록 트럭 뒷칸에서 고무신을 벗어 던져가며 흔적을 남겼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아렸다. 송악산 동굴진지 근처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단체로 식당에 들어가는 것이 조심스러워 야외에 흩어져서 먹을 수 있는 김밥을 준비했다. 톳김밥과 일반 김밥이 절반씩인데, 톳김밥 쪽은 별로 인기가 없다.

식사를 마치고 무등이왓 마을로 향했다. 가는 길에 마을회관에 들러 홍춘호 할머니를 버스로 모셨다. 4.3 사건 당시에는 큰넓궤에 50여일을 숨어 지내셨다고 한다. 여든이 넘으신 나이에도 무척 정정하셔서, 우리 일행을 데리고 직접 걸어서 무등이왓 마을을 안내해 주실 때는 따라다니기가 살짝 버거울 정도였다. 생존자 할머니를 뵙는다는 말에 무척 연로한 분을 모시고 둘러 앉아 실내에서 조근조근 이야기를 듣는 장면을 생각했는데 뜻밖이다. '여기는 마을에서 이발사 노릇을 하던 아무개 집이 있던 자리고, 저 나무가 어릴 때 동네 아이들과 올라가서 바다를 보던 놀이터였고, 저기가 당시 이 마을에서 최초로 학살이 벌어진 장소인데...' 담담하게, 그리고 놀랄만큼 또렷한 목소리로 지금은 자취를 감춘 수십 년 전 마을의 풍경과 사건을 생생하게 그려내시던 할머니의 목소리에서 문득 떨림을 느낀 것은 어린시절의 집터에 이르렀을 때다. 여전히 또렷한 목소리였지만 마스크 위로 살짝 보이는 할머니의 눈가가 촉촉했다. 밭으로 변해버린 할머니의 집터 한 켠에는 주춧돌이 그대로 남아 있다. 지금은 동생과 자식들이 돈 많이 벌고 잘 산다는 할머니의 이야기에 왠지 모르게 위로 받는 기분이 들었다.

할머니를 마을 회관에 다시 모셔다 드리고 큰넓궤로 향했다. 할머니는 회관 입구에서 몇 번이나 손을 흔들어주셨다. 큰넓궤까지는 버스에서 내려 이십분쯤 흙길을 걸어야 해서 안타깝게도 레오는 함께 가지 못했다. 인적이 드문 곳인듯 도착하는 순간 노루 한마리가 휙 하고 놀라 달아났다. 입구도 표지판을 보고도 알아채기 힘들만큼 비좁았다. 지슬을 보면서 그리고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상상한 모습과는 퍽 달랐다.

마지막 방문지는 '무명천 할머니'로 알려진 고 진아영 할머니의 삶터. 4.3 사건 당시 총상으로 턱을 잃은 까닭에 평생을 얼굴을 흰 무명천으로 감싸고 사셨다고 한다. 돌담 틈새로 숨은 밭에서 백년초가 자라는 조용한 마을, 비가 흩뿌리는 바다의 빛깔이 캔디바 같았다. 할머니의 집은 한 일자 형태로 아주 자그마했는데, 안에는 생전에 할머니가 사용하시던 세간살이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방은 모두가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좁았다. 반쯤은 앉아서, 반쯤은 밖에 서서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몇몇 친구들이 방명록에 메시지를 남기는 것으로 기행을 마무리했다.

저녁 식사 후에는 내일 일정을 준비했다. 내일의 주제는 '제주의 오늘'. 제주에 살고 있는 이들을 만나 제주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이슈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날이다. 원래는 제2공항 예정지인 수산리, 강정마을, 볍씨학교 세 팀으로 나뉠 예정이었는데 이웃마을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다수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강정마을 방문을 취소하여 두 팀이 되었다. 수산리 팀은 잔잔 베델과 함께, 볍씨학교 팀은 쑥갓과 함께 준비작업을 했다. 볍씨학교 팀은 제2공항 문제에 대한 소책자를 읽고 나서 이야기를 나눈 후에 다시 두 팀으로 나뉘었다. 한 팀은 볍씨학교에 대한 조사를, 다른 한 팀은 오디세이학교 소개를 맡았다.

하루닫기 시간에는 우리가 보인 태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4.3 사건의 유가족, 생존자 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하루를 보내면서 다른 친구들이 보인 무례한 태도가 불편했던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무등이왓 마을에서 내내 홍춘호 할머니께 바짝 붙어 눈을 맞추던 루는 휴대폰을 보거나 몸을 돌리고 앉은 친구들의 모습이 할머니 눈에 띌까 내내 마음을 졸였다고 했다. 레오는 버스 안에서 양대표님 설명에 귀를 기울이는 이들이 너무 적어 보여서 민망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는 모습을 보이려 애를 썼단다. 소월도 친구들이 무례한 모습을 보이면 너무 화가 날 것 같아 시작 전부터 줄곧 걱정했다는 말을 했다. 정작 길잡이인 나는 그 분들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귀를 귀울이느라 오디세이 친구들의 태도를 살피지 못했다. 자리를 의식하고 상대를 배려하려는 마음들이 반갑다. 다만 노벨만은 '나는 이 일에 대해 별 감흥이 없다'며 줄곧 심드렁한 태도를 취해 주변 사람들을 뜨악하게 했는데 이것이 감흥의 문제가 아님을 그가 이해하는 데에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가까스로 자정 전에 하루닫기가 끝났다. 여행을 온 뒤로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러고보니 일정이 계획대로 풀린 것도 오늘이 처음이구나 싶다. 모처럼 일찍 샤워를 하고 누워서 '여행이 주는 불확실성을 사랑하지만, 가끔은, 그러니까 3일에 한 번쯤은 계획한 대로 흘러가는 것도 좋구나' 생각하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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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일기 by 규진]

유가족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의 설명을 들으니 더 와닿았고 할머니가 별로 안 슬프게 설명 하셔서 좀 다행이다 생각 했는데 중간에 슬픈 눈을 보았는데 괜찮은게 아니구나 싶어서 슬펐다. 어제도 너무 피곤했는데 오늘도 너무 힘들었다.. 걷는게 그저께와 어제랑 같이 누적되어서 너무 몸이 피로해서 걷는게 힘들었다. 그렇게 설명을 듣고 다시 버스에 탄 후 가이드분을 만났다. 4.3당시 대피했던 동굴을 갔다. 동굴이 낮다고 하셔서 나는 아 그냥 낮아봐야 얼마나 낮겠어 싶은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너무 낮아서 놀랐다. 실제로 그 사람들은 50일동안 그렇게 있었다고 하니 상상이 안 간다.

그렇게 또 여러가지 설명을 들은 후 무명천 할머니 생가에 방문 하였다. 나는 무명천할머니가 살아계신분이고 그 할머니에게 설명을 듣는식으로 진행할줄알았는데 이미 돌아가신 분이여서 놀랐다. 그렇게 밖에서 기다리고있는데 너무 안 나와서 별 생각 없이 들어갔는데 tv에서 무명천할머니가 나오는데 갑자기 확 와닿아서 좀 집중하게 되었다. 그렇게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제주의 오늘, 제2공항과 볍씨학교를 공부했다. 볍씨학교 자료를 다 찾고 제2공항책을 보았는데 제2공항을 만들면 좋을거같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굳이 이렇게까지 리스크를 감수하며 만들필요는 없지 않나 싶어서 별로 좋은 생각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하루닫기를 하고 나니 11시45분이였고 괜히 빨리 끝난거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그러면서도 45분 늦게끝났는데 좋아하는 내 모습이 한심했다.
그렇게 바로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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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일기 by 루]

딱 중간인 수요일이 너무나도 빨리 다가왔다. 오늘은 아침에 큰사슴오름에 올랐다. 어제와는 달리 다른 방향으로 갔는데 올라갈때는 괜찮았지만 내려갈때는 좀 많이 가파라서 풍경은 1도 못보고 바닥만 보면서 내려갔다. 생각보다 오름에 시간을 많이 써서 준비할 시간이 없어 아침을 못먹었다. 심지어 카드키를 가지고 있는 빈이가 안와서 쑥갓이 비번을 뚫어주셨는데 참 쑥갓은 이런 일 해도 잘하실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급하게 준비를 하고 버스에 올라탔는데 어떤 남성분께서 맞아주셨다. 마스크를 보니 조그만하게 ‘4.3특별법을 개정하라!’라는 문구가 새겨져있었고, 오늘 하루를 같이 해주시 분이라는걸 알게 되었다. 앉아서 잘려고 폼을 잡았는데 갑자기 마이크를 잡으시면서 설명을 해주셨다. 너무 피곤했지만 대표님은 서서 열심히 설명하셔서 열심히 들었다. 설명이 끝나고 잘려고 하는데 대표님께서 쑥갓한테 가서 막 얘기하시는걸 들으면서 속으로만 ‘쑥갓 힘내요…’라고 하며 잠에 들었다. 일어나보니 알뜨르 비행장에 도착했고 잠깐 벤치에 앉아서 설명을 듣는데 여기부터 대표님께 죄송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설명을 듣는데 한명은 옆에서 서서 졸더니 갑자기 벤치에 가서 앉아 애들 어깨에 기대서 자고, 몇명은 핸드폰하고. 이때부터 대표님 눈치를 보게 된 것 같다.

백조일손지도 보고, 섯알오름을 지나 송악산 일제강점기 진지동굴로 걸어갔다. 점심은 김밥을 먹었는데 톳김밥은 복불복적인 맛이라서 그냥 먹지 않았다. 오후에는 할머님을 뵈러갔다. 그냥 할머님이 아니시고 4.3당시에 11살이시며 큰넓궤 에서 약 50일정도 계셨던 홍춘호 할머님을 뵈러갔다. 할머님을 뵙기 전에는 거동이 불편하신 할머님 집에 동그랗게 앉아서 얘기를 듣는거였는데 상상과는 다르게 할머님께서 직접 다 안내해주시며 애기를 하셨다. 올해 나이가 84세이신데도 불구하고 엄청 정정하셨다. 나는 조금 할머님 곁에서 많이 들었는데 할머님이 본인 집이 이곳에 있었다라는 말을 하실 때 느꼈다. 할머님은 지금 담담히 설명하시는게 아니라 우리같은 사람들에게 조금 더 알리기 위해 담담한 척 하는거라고.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지만 할머님 눈동자는 너무나도 솔직했다. 그때 당시를 회상하시며 일일히 설명하셨고 눈에서 눈물이 흐르지는 않았지만 빛이 비춰질때는 눈동자가 촉촉하셨다. 나는 그 눈을 아마 잊지 못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때쯤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이 있는지 모르지만 뒤에서 핸드폰하고, 앉아서 졸는지 뭐하는지 눈을 감고 있고 하는 아이들이 내 눈에 띄는데 최대한 할머님이 안보셨으면 하는 마음에 좀 더 할머님께 붙어있었다.

마지막 일정으로는 고 진아영 할머님 삶터에 갔다. 진아영 할머님께서는 4.3당시 턱에 총을 맞고 턱을 가위로 잘라낸 다음 평생을 후유 장애인으로 사신 분이신데 말조차 제대로 안통하시는 모습을 보고는 찡한 마음이 들었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는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4.3에 대해 더 알게되서가 아닌 애들이 태도 때문이다. 물론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걸 다른 애들은 별로 신경 안쓰겠지만 죄송하면서도 계속 생각하면서 간 이유는 이러다가 내가 그 애들이 싫어질까봐 걱정되서 한 것이다. 오고 가며 대표님께서 계속 열심히 설명을 해주시는데 어째서인지 게속해서 나랑, 내 앞에 있는 레오를 주로 쳐다보면서 설명하시는데 눈빛이 뭔가 착잡하시면서도 도와달라는 듯한 눈빛이였다. 뭐지 싶어서 뒤를 몇번 돌아봤는데 그럴 수 밖에 없었구나라고 바로 이해가 되었다. 내 상식속에서는 그렇게 열심히 앞에 서서 설명하시는 분 앞에서 딴짓은 절대 허용되지 않은 행동이였다. 물론 피곤할 수 있지만 그렇다면 깨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고개를 돌리고 자고, 핸드폰을 보는 그 행동을 본 순간 만난지 3달밖에 안된 애들이 처음으로 보기 싫어졌다.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했고, 그저 이것 또한 경험이라며 좋게 생각하려 했다. 대표님께 너무 죄송해서 헤어지기 전까지 설명 감사하다고, 즐거웠다고, 잊지못할거라고 감사하다라는 말만 6번은 하고 내린 것 같았다.

저녁을 먹고 제2제주공항에 대해 공부를 하며 애기를 하고 하루닫기를 했다. 제주도에 와서 처음으로 12시 이전에 하루닫기가 끝나고 방으로 들어가서 잤다.

Photos from 오디세이학교-혁신파크's post 02/06/2021

오름을 오르고 오디세이 민들레 친구들을 만나 교류했던 여행 둘째날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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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5 화요일

[길잡이 일기]

눈을 뜨니 새벽 여섯시다. 새벽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화사한 햇살이 창문에서 쏟아지고 있다. 하루열기까지는 아직 한 시간이 남았기에 잠든 소월과 타이가를 깨우지 않도록 조심스레 일어나 방문을 나섰다. 마당은 온갖 종류의 새소리로 가득하다. 귀를 기울이면 적어도 세 종류, 혹은 그 이상의 새가 줄곧 동시에 지저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소리로 가득한데도, 사방이 고요하다.

방문이 열린 건 아침식사를 마친 일곱시 반쯤이었다. 8시부터 일정이 시작되기에 25분 만에 정신없이 씻고 옷을 갈아입고 필요한 물건을 챙겨야 했다. 오전 일정은 '오름을 오름'. 숙소인 유채꽃프라자의 뒷동산이라고 할 수 있는 큰사슴이오름에서 갑마장길을 따라 걸어가서 따라비오름을 거쳐 가시리사무소까지 걷는 반나절의 트레킹이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오름과 목장이 펼쳐진 중산간의 풍경을 둘러보고 우리가 머무는 공간에 친숙해지고픈 마음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여러모로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일단 바람 한 점 없이 화창한 날씨에 그늘이 드문 오름을 오르려니 볕이 무척 따가웠다. 첫 번째 경유지인 큰사슴이오름을 오르면서부터 모두가 땀에 젖어버렸다. 으으, 이런 꼴로 오후에 민들레 친구들을 만나러 가야 하다니. 선두와 후미의 간격이 벌어지면서 선두로 가던 이들이 길을 잘못들어 한참을 기다리다가 뒤쳐지는 등 다들 조금씩 길을 잃으며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덥고 힘든데 길까지 헤매다 보니 화가 난 이들도 있었고. 어찌어찌 간신히 대열을 수습해서 함께 걸을 때는 잠시 평화로웠다. 방목된 소도 마주치고 사이좋게 말똥도 밟아가며 한숨 돌리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길이 없어져버렸다. 분명 '따라비오름'이라고 씌어 있는 표지판을 따라 들판을 걸어왔는데, 길이 흐릿해지다가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추어버린 것이다. 길은 그 뒤로도 슬며시 나타났다가 제멋대로 사라지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고, 그 와중에 사유지를 지나다가 주인 할아버지로부터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녹산로를 찾았을 때는 11시가 지나 있었기에 버스에 몸을 싣고 오디세이 민들레 친구들을 만나러 대평리로 향했다. 목적지까지 닿지는 못했지만 중산간을 흠뻑 맛본 기분이다. 가슴이 뻥 뚫리는 초지와 오름의 풍경, 가까이서 마주치니 신기했던 방목 중인 소와 말의 멀뚱한 표정, 풀밭 어딘가에서 푸드득 날아오른 꿩의 날갯짓이나 흰 궁둥이만 보인 채 사라진 노루의 뒷모습, 반바지 입은 다리를 마구 쓸어대던 억새밭의 감촉까지.

오후의 오디세이 혁신파크-민들레 교류 일정은 학생들이 기획한 시간이다. 양측에서 3명씩, 모두 6명의 학생들이 기획팀을 꾸려 3주 정도 준비를 했다. 혁신파크 소월과 민들레 정원의 진행으로 교류회가 시작되었다. 영상을 통해 서로를 소개하고, 소그룹으로 나뉘어 대화를 나누었다. 어색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 강풍 때문에 보물찾기를 위해 숨겨둔 종이들이 다 드러나버렸다든지 오전부터 일정이 지체되어 시간에 쫓기는 등 어려움이 있었지만, 기획팀과 진행자들이 유연하게 대처한 덕에 교류회를 잘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 식탁에는 터프한 자태의 생선 통구이가 놓여 있었는데, 여쭈어보니 무려 낚시로 잡은 벵에돔이라고 하셨다. 세상에. 루가 안 먹은 덕에 하다 더 먹을 수 있어 신났다.

저녁식사 후에는 함께 영화 을 봤다. 4.3 사건에 대해 나름의 공부를 하고 왔기 때문일까, 아니면 평소 보던 영화들과는 다른 낯선 영화문법이 신선했기 때문일까. 내일의 평화기행을 위한 사전 준비니까 간단히 감상을 나누고 본격적인 대화는 내일 오갈 줄 알았는데, 여러 친구들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가 쏟아져나왔다. 영화를 흑백으로 만든 의도가 무엇일지를 나름대로 추론하기도 했고, 끔찍한 사건이 많은데도 영화 내에서 뚜렷한 악당이 드러나지 않으니 개운치 않다는 감상도 있었다. 영화가 담아낸 국가 폭력에 대해 개인에게 어디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 거대한 구조 앞에서 개인의 자율성은 얼마나 유효한지에 대한 이야기도 오갔다. 개인적으로는 "보기 힘든 장면들이 있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영화가 관객의 몰입을 일부러 차단하고 있는 것 같다"는 감상이 기억에 남는다. (누가 말했더라?) 그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장면의 생생함이 극대화되었다면 토벌대의 잔학성이 더 극적으로 드러나기는 했겠으나 한편으로는 장면의 생생함이 영화가 다루는 사건의 맥락을 압도해버려 전체적으로는 오히려 초점이 흐려졌을 것 같다. 어떤 경우에는 사실이 진실을 가리기도 하는구나. 사실과 사실적인 것 사이의 간극이라고 해야 할까.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지만, 하루닫기를 마냥 미룰 수 없어 한 시간쯤 이야기를 나누고 자리를 마무리했다.

이날은 하루닫기가 새벽 두 시 무렵까지 이어졌다. 다들 무척이나 피곤했지만 하고 싶은 말도 해야 할 말도 많았던 듯하다. 나는 특히 타이가와 규진의 문제 제기가 반갑고 고마웠다. 그냥 견뎌 넘기려 하지 않고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의 존재는 늘 소중하다. 덕분에 너무 익숙해져서 내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새롭게 살필 수 있었다. 계획대로 되지 않은 것이 많은 하루였지만 계획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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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일기 by 아랑]

두번째 날의 첫 번째 일정은 트래킹, 두 번째 일정은 민들레와의 교류였다. 난 아침에 일어나면서 부터 민들레와의 교류를 생각했지만, 첫 번째 일정이었던 트래킹에서 그 생각이 싸그리 사라졌다. 지난 고개넘기 때 선두주자의 여유로움을 맛봤기에 최대한 빨리 오름을 올라갔고, 남들보다 빨리 올라간 탓에 길을 잃었다. 결국 선두주자였던 친구들은 조금 천천히 오던 친구들보다 훨씬 뒤에서 따라가게 됐고, 어제의 일이 떠오르며 그때 느꼈던 불길한 예감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선두주자로 간 친구들은 화가 났는지 불만을 얘기했지만, 나는 길을 잃은 경험이 많아 그런지 조금 덥다는 걸 빼면 기분은 말짱했다. 그런데 그 사이에서 ‘난 괜찮은데?’ 라고 얘기하기엔 눈치가 보여서 적당히 맞장구를 치다 보니 나까지 없던 불만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길을 잃은 것 외에도 갖가지 불만이 생길만한 일들이 있었지만, 정말 전혀 불만이 없었었기에 불만이 조금씩 생기는 게 정말 신기했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은 사실이 맞았다. 우리 모두는 길을 잃어 사유지에 들어가 민폐를 끼치고, 결국 일정을 제때 끝내지 못해 두 번째 일정이 미뤄지고… 잠깐 동안의 점심시간을 가지고 나 포함 교류회를 준비했던 친구들이 우왕좌왕 하는 사이 교류회는 시작됐다. 교류회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교류팀 친구들 얼굴에 그늘이 생기면서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졌다. 그리고 정말로 교류회는 교류팀이 중요시 했던 혁신파크와 민들레와의 친목이 하나도 진행되지 않고 있었다. 교류팀 친구들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정말 하나도 실망이 되질 않았다. 솔직히 17살 친구들이 거의 처음 해보는 기획인데, 그것도 3시간짜린데 어떻게 착착 진행되겠는가? 그것도 40명에 가까운 많은 인원이 말이다. 그리고 서로 초면인 40명의 사람들에게 3시간만에 친목을 심어준다는 게 가능한가? 이 생각을 항상 머릿속에 품고 교류팀 회의에 참여했지만, 이상하게 교류팀 친구들을 보면 나까지 열심히 하고 싶어져서 정말 열심히 회의에 참가하고, 어떻게 될 지 생각을 많이 했었다. 아마 나도 교류회 바로 전날까지도 내가 어차피 잘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기에 열심히 참여했던 것 같기도 하다.

저녁을 먹고 우린 예정대로 영화 을 봤다. 나에게 있어선 이런 분위기와 장르의 영화는 그날 처음 접해보는 거였기에, 장면 하나하나가 생생했고 그만큼 긴장도 하며 봤던 것 같다. 원래 나는 영화를 웬만해서는 디즈니, 픽사같은 어린이용 애니메이션만 보는데, 이 영화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시각적인 것 보다는 그 의미에 집중한 영화여서 초반부에는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 잘 못 찾기도 했다.(사실 내가 그때 어디에 집중했어야 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또한 영화가 그 상황을 적나라하게 사실적으로 묘사해서 몰입이 돼 엄청난 불안감과 긴장감이 전해지며 보는 내내 힘들었었다. 그러다 중간에 사람이 칼로 베이는 장면에서 그만 눈을 감았는데, 레오가 영화를 보고 나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에 “내가 그 장면에서 눈을 감으면 그것을 외면하는 느낌이 들어 눈을 감지 않았다.”라는 말을 했다. 사실 나도 정말 영화가 보기 힘들었는데 최대한 눈을 감지 않으려 하다 그 장면에서 도저히 볼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눈을 감았었다. 하지만 난 내가 왜 굳이 눈을 감지 않으려 했는지를 알지 못했고, 결국엔 눈을 감았는데 레오가 그 이유에 대해 얘기를 하니 내가 그런 느낌이 들었어서 그랬구나 라는 생각이 들며 창피함과 죄송함이 확 솟아올랐다.

그날 하루닫기 시간, 마침 베델이 오늘 하루 있었던 역설에 대해 얘기하자 했다. 그 얘기를 딱 듣자마자 오늘 있었던 역설 2가지가 떠올랐지만, 두 번째 것을 얘기하려 하니 너무 미안해서 교류회에 관해 아예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 때 쑥갓이 딱 교류회에 관해 물어봤고, 너무 당황했던 나는 그동안 생각한 걸 얘기하면 난 오늘 잠 못잘거다 라는 것을 곱씹으며 말을 얼버무렸고, 그 얼버무린 말이 오히려 잘못 나온것 같아 정말 후회된다. 결국 그날 밤은 편하게 자진 못했던 것 같다.

Photos from 오디세이학교-혁신파크's post 01/06/2021

오디세이 혁신파크는 지난 주 5일간(5/24 - 5/28) '제주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주제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여행 기간의 이야기는 길잡이와 학생의 글을 모아 하루씩 전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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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4 월요일

[길잡이 일기]

부담스럽다. 일곱시 반 이륙이라니, 무사히 출발할 수 있을까? 티켓을 살 때부터 걱정이 됐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방역을 위해 객실 인원을 최소화하느라 치솟은 숙박비가 겁나는 마당에 비행기까지 비싼 시간대를 고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네 시에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지하철 첫차로 김포공항에 갔다. 다행히 약속 시간 5분 전에 모두 모였다.

제주 공항에서 잔잔이 첫 일정을 안내했다. 가시리로 가시리. 네 명씩 모둠을 이루어 경유지에 들러 미션을 해결한 후에 가시리에 있는 숙소까지 찾아오는 것이 골자다. 모둠과 경유지는 즉석에서 제비뽑기로 정했고, 모둠당 하나의 휴대폰만 가져가는 것이 규칙이다. 각자의 짐은 들고 움직여야 한다. 점심식사는 지급된 돈 안에서 해결하되 반드시 유효한 영수증을 챙길 것. 모둠 내에서 각자 길안내, 회계, 방역, 연락 등의 역할을 하나씩 나누어 맡은 다음 조천(연북정과 덕인당), 서귀포(오일장과 제일떡집), 표선(해비치해변과 달무지개), 세화(해녀항일운동기념공원과 세화리마을회관) 네 곳으로 나뉘어 출발했다.

"우리는 여행을 할 거야. 관광 말고." 첫 일정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여행은 본질적으로 변경-다시 말해 비일상적인 그 무엇-을 찾아 떠나는 일이다. 풍경과 맛집과 카페같은 점과 점 사이의 길을 '효율적으로' 삭제해가며 움직이는 관광도 나쁘진 않지만, 길 위의 경험을 오롯이 마주하는 일은 역시 매력적이다. 길 위에서 우리는 세상과 서로를,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를 더 깊이 마주할 수 있으니까. 외딴 곳에 자리잡은 숙소를 찾아오는 길에서 누군가는 자신만의 변경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랐다.

길잡이들이 자동차를 렌트하고 점심을 먹고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하는 사이에 각 팀의 알뤼미들이 속속 소식을 전해왔다. 조천 팀이 순조롭게 척척 풀려가는 반면 서귀포팀은 돈봉투를 잃어버려 혼란에 빠졌다. 전화와 카톡으로 소식을 업데이트해가며 숙소에 도착하니 뜻밖에도 표선 팀이 먼저 와 있다. A가 넘어지면서 발목을 다치는 바람에 택시를 타고 왔단다.(결국 그는 다음날 반깁스를 했다.) 문제는 다음부터였는데, 서로 용기를 얻은 것인지 슬금슬금 택시를 선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두번째로 (물론 택시) 도착한 세화팀의 B는 단톡에 '택시를 타라'고 독려하는 글을 올리기까지 했다.

결국 택시 없이 숙소까지 찾아온 건 조천팀 하나뿐이었는데(그들이 마지막 6km 이상을 걸어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모두가 진심어린 박수로 그들을 맞이했다), 길잡이로서는 이 결과가 조금 아쉬웠다. 대부분의 팀들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는 대신에 손쉽게 건너뛰는 쪽을 택했다는 생각에서다. 길잡이들은 상황을 열어 놓았을 뿐, 그 시간과 길 위에서 무엇을 보고 무슨 이야기를 나누며 어떤 경험을 만들어갈지는 각 팀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여기서 더는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구조요청(?)이 오면 마중나갈 준비도 단단히 해둔 참이었다. '걷느냐 택시를 타느냐'가 아니라, 문제 상황을 정의하고 방법을 고민하고 해결을 시도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택시가 아니라 헬기를 탔더라도 그것이 그들이 찾은 문제 해결과정의 일부였다면 무엇이 아쉬우랴.

숙소 뒤편의 오름으로 해가 넘어가고 하늘이 보라빛으로 물들 무렵 마당에서 바비큐 파티를 시작했다. 세 개의 커다란 화구에 불을 지피고 고기를 구웠다. 거리를 두고 식사를 하느라 마음껏 왁자지껄 할 수는 없었지만 충분히 즐거웠다. 식사를 마치고 한숨 돌린 후에 하루닫기를 위해 둘러 앉은 것은 밤 열한시가 가까워서다. 처음에는 낭만을 만끽하겠다며 야외에서 모였는데 중산간의 밤바람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우리는 나약한 도시인답게 재빨리 철수를 결정하고 로비 바닥에 둥그렇게 둘러 앉아 오늘을 도란도란 이야기했다. 힘들거나 즐거웠던 일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서운하고 속상했던 이야기까지도 비교적 담담하게 오갔다. 이야기는 길었고 또한 깊어서, 자리를 파했을 때는 새벽 한 시가 넘어 있었다.

카드키를 넣어둔 채 문을 잠가버린 나는, 한참을 배회하다가 (창문으로 들어갈 순 없을까? 세미나실에서 자면 어떨까? 로비 소파에서 자면 너무 춥겠지?) 결국 타이가와 소월의 방문을 두들겼다.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였는데도, 냉장고 앞에 누워 몸을 웅크리자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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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일기 by 난이]

'여행1일차 - 기대 한가득'
제주도를 가는 첫 날 6시 반까지 모이기로 해 아침 일찍 일어났다. 다행이도 엄마가 차로 데려다 준다하여 나는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여유로운 아침을 보냈다. 카톡을 보니 첫차를 기다리는 친구들, 이제 지하철 들어온 친구들, 나와 같이 부모님이 데려다 주신다는 친구들이 막 톡을 하고 있었다. 보면서 기대에 찬 마음으로 김포공항으로 출발을 하였다. 김포공항 근처쯤 도착하니 6시였고 내가 일빠로 도착하는거 아닌가하는 설레발을 하면서 들어가니 몇몇 친구들이 먼저 와 있었다. 일빠가 아니라 큰 실망을 하였지만 내가 먼저 도착했으면 길을 잃었을 것같아 어느 한편으로는 안심을 하였다. 친구들이 하나 둘씩 들어오고 친구들 가방을 보니 생각보다 친구들 가방이 너무 작았다. 그 작은 가방에 일주일동안 지낼 물건이 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태월이가 들어오는데 빨간머리.. 와.. 너무 빨간머리 라서 놀랐다. 일주일동안 머리색이 빠지는 걸 세세하게 볼수있겠다는 생각에 앞으로 일주일이 너무 기대가 되었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길에는 잠에 들었다. 옆자리가 준붕이랑 타이가였는데 잔다던 준붕이는 잤고 안 잔다고 했던 타이가 또한 잤다.

자고 일어나니보니 제주도에 도착했고 도착한 나는 가방은 너무 무거워 기분이 안 좋고 그래도 제주도에 와서 기분은 너무 좋고 여러가지 기분이 들었다. 도착하니 구경하기도 전에 팀을 나누고 미션비, 점심비, 미션종이를 받고 핸드폰을 거두어가고 정신을 차리니 길잡이분들은 사라졌다. 우리조(소월, 레오, 노벨)를 보니 일빠로 도착할 수 있을 것같아서 너무 좋았다. 미션종이에는 달무지개를 가서 엽서를 사고 바다에 가서 자유를 표현한 사진을 찍을라고 써있었다. 우린 달 무지개를 가기 위해 버스를 찾아보니 ‘경로 없음’이라 떴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살면서 한번도 본 적 없는 ‘경로 없음’이었다. 서울은 어떻게라도 이어서 갈수있는 길을 알려주는데 경로 없음이라니.. 당황했지만 나는 소월이랑 레오를 믿었기 때문에 걱정스럽지는 않았다. 역시 소월이와 레오는 안내원님에게 가서 물어보자라고 했고 안내원님은 버스 노선표? 비슷한 걸 보여주셨다. 하지만 우리가 타야하는 버스는 10시 10분 도착이었다. 그냥 택시를 타자라는 말도 나왔는데 택시비가 4만원이라 그냥 버스를 기다리고 버스를 타기로 했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화장실로 다녀오고 물도 담아오면서 공항도 구경를 하고 오니 다른 조 친구들은 모두 출발하였다. 버스가 왔고 우리가 가장 늦게 출발하였다. 버스를 타고 거의 한시간정도를 갔다. 가는 동안 자고 싶었는데 레오가 옆에서 말을 걸어서 대답하면서 살짝살짝 자면서 갈아타야할 곳에 도착을 하였다. 내렸는데 어디서 버스를 갈아타야할지 몰라서 거기서 밥을 먹고 한시간정도를 걸어가기로 했다.

밥으로 곤드레밥 전문점에서 짜글이를 먹고 있는데 A조 친구들이 미션 두개 모두 다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A가 적힌 종이를 고르지 못한 내 자신에게 너무 실망하였다. 밥을 다 먹고 마음의 준비를 한 다음에 걸어갈 준비를 하였다. 그때 날씨는 덥고 가방은 엄청 무겁고 그 상태에서 걸어갈 생각을 하니 막막하였다. 그런데 정말 운 좋게 그 가게 근처에 우리가 가는 곳 근처에서 멈추는 버스가 오는 버스 정류장이 있고 버스도 곧 도착이었다. 그 버스를 타고 근처에 도착해 내리니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가 보였다. 차 눈치를 보고 횡단보도를 지나가는데 뒤에서 노벨이가 “실사판 길 건너 친구들이네” 라는 말에 너무 웃겨 뒤를 돌아보는데 레오가 횡단보도에 있는 무언가에 걸려서 넘어지고 구르는 걸 직접보고 말았다. 레오 무릎 쪽 옷이 찢어졌고 레오는 너무 속상해 하며 엄청 웃었다. 그 상태로 달 무지개를 가기 위해 골목 골목을 가면서 달 무지개를 길잡이분들 중에서 누가 찾아내신건지 궁금해하며 달 무지개를 도착했는데 멀리서도 아주 잘 보이는 연 핑크색 지붕이 너무 이뻤다. 달 무지개 안에 있는 물건들은 더 이쁘고 아기자기하였다. 하지만 그냥 빠르게 엽서를 사고 바다로 향했다. 다행스럽게도 바다 근처로 가는 버스가 있었고 가는 길은 비교적 편하게 갔다. 하지만 버스를 14분이나 기다려야했고 그 버스정류장은 의자도 없고 그늘도 없었다. 이미 무거운 가방을 들고 햇빛아래서 걷고 다니느라 지친 나는 그냥 가만히 앉아서 버스를 기다렸다. 바다로 도착해 사진을 찍고 구경을 하였다. 바다 색은 역시 너무 이뻤다. 바다 구경을 끝내고 소월이가 유채꽃프라자가는 길을 찾아보니 숙소로 가는 길은 버스를 한시간정도 타고 가서 두시간정도 걸어야했다. 근데 아까 넘어진 것 때문에 레오가 발목이 아팠고 시간안으로 못 갈 것같아서 겸사겸사 택시를 타고 숙소로 갔다. 예상시간 세시간이던 길은 택시타고 20분만에 갔고 우리가 길잡이분들 보다도 빨리 일빠로 도착했다.

숙소는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이뻤다. 사실 쑥갓말을 듣고 되게 산속에 있는 뷰가 산만 보이는 그런 곳인줄 알았는데 풍력발전기도 보이고 하늘이 너무 이뻐서 더 이뻐보였다. 도착해서 좀 구경을 하고 있으니 길잡이분들이 차를 타고 오셨고 좀 이따 B,D조가 거의 동시에 택시를 타고 들어왔다. 제일 먼저 미션이 끝난 A조만 걸어와 그 조가 가장 늦게 도착한 것이다. 양심에 찔린 소월, 레오, 나는 A조 배웅을 나갔다. 한 15분정도 걸어나가니 지쳐서 걸어오는 A조 친구들이 보였다. 너무 반가웠다. A조 친구들과 같이 숙소로 돌아가 방 구경도 좀 하고 짐을 정리하고 고기를 먹었다. 보통은 마지막 날 저녁에 고기 파티를 하는데 첫날에 고기파티는 많이 의아하였다. 하지만 너무 신이 났다. 저녁식사 후에 제주도 OT를 하는데 너무 설렜다. 앞으로 일주일 설명을 듣는데 상상이 안 가서 더 설렜던 것같다. 저녁 시간 하루닫기가 난 그렇게 늦게 끝날지 몰랐다.

거의 1시쯤 끝나서 너무 피곤하였다. 방에 들어가니 내 볼은 빨간색 이었다. 생각을 하니 얼굴이 탄 것 같다. 그날은 하루닫기 하기 전에 씻어서 들어가자마자 거의 30분 잘 준비를 하고 쓰러지듯 잠을 잤다.

Photos from 오디세이학교-혁신파크's post 21/05/2021

연휴와 교육활동 일정 등으로 인해 한동안 길잡이 일기를 전하지 못했습니다. 그간의 소식을 간추려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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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6 월요일
나침반 시간에 에 관한 책대화를 했다. 책의 1부 를 각자 밑줄을 그으며 읽어와서 인상적인 문장을 중심으로 대화를 나누고 질문을 주고받았다. 책을 읽으면서 각자가 공부와 관련하여 학교와 가정에서 느꼈던 회의라든지 괴로움을 나름대로 해석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통의 텍스트를 바탕에 두고 지적인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즐거웠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공부 안 해도 된다'는 말에서 이들이 받았던 느낌을 이야기한 대목이다. 부모님이 평소에 대놓고 공부를 강요하시는 일은 별로 없지만, '안 해도 된다'는 말이 곧이곧대로 들리지는 않는다고 다들 입을 모아 말했다. '원래는 공부를 해야 하지만'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음이 느껴진단다. 그래서 공부 안 해도 된다는 말이 실제로는 '억지로 강요 안 하니까 스스로 알아서 공부해라'라든지 '하는 게 맞는 건데 네가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라는 식으로 들려서 마음이 편치 않다고 했다. 살아남으려면 공부해야 한다는 압력이 사방에서 느껴지다보니 부모님이 그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는 어려운 시대구나 싶었다.
자치회의 시간에는 여행 도중에 민들레와의 교류 시간을 공동 기획할 기획팀을 선발(?)했다. 양쪽에서 세 명씩 두 기관의 여섯 명이 모여 준비를 하기로 했는데, 지원자가 여덟 명이나 되었다. 어떻게 정해야 할지 난감했는데, 출마자들의 변을 듣고나서 1인 3표로 기획을 맡기고픈 친구에게 투표를 하자는 제안이 나와 그렇게 정했다. 겨울이 12표로 최다 득표를 기록했고 아랑과 타이가가 각각 9표로 선발되었다. 이들이 오디세이 민들레 친구들과 어떤 기획을 만들어낼지 기대된다.

4/27 화요일
화제의 ‘난차쿠차’. 두 번째 시간은 코로나 1년의 회고였다. 일 년 동안의 기억이 확진자 수 그래프로 회상된다는 것이 우습기도 슬프기도 했다. 작년의 이맘 때쯤 작년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마니또로부터 진짜 연양갱을 받았다. 어제 책상 위에 연양갱이 놓여있는 것을 보고 늙은이 취급인가 싶었는데, 실제로 양갱을 좋아한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었다. 근데 막상 열어봤더니 새콤달콤이라서 더욱 충격! 두번째로 진짜 양갱을 받으니 적응했는지 더이상 자존심이 상하지 않고 그냥 좋았다.

5/6 목요일
하루 열기 주제로 발표자가 '사북 사태'를 가져왔다. 개요부터 디테일, 영향과 의미에 이르기까지 공들여 준비한 티가 났다. 반면 듣는 이들의 적극성은 아쉬웠다. 대다수에게는 생소한 사건인데다 낯선 단어들이 많았는데도 별다른 질문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발표자가 잘 준비하기는 했지만 한 번 듣고 휘리릭 머릿속에 정리가 되진 않았을 텐데. 칭찬이나 비판도 의미가 있지만 가장 반가운 건 역시 질문이다. 질문이야말로 들어주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듣고 있다는 신호니까.

5/10 월요일
오전에는 엄기호 선생님의 특강이, 오후에는 퍼머컬처의 두 번째 시간인 식재 수업이 있는 날이다. 특강 준비를 한다고 했지만, 재량휴업일 때문에 벌써 2주 전의 일이 되었기 때문에 어떨지 모르겠다. 사전준비와 특강 사이의 간격이 길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내용을 기억하기보다는 강사에 대한 인상을 심는 데 초점을 맞추어서 꾸리기는 했다. 죄수의 손목을 잘라 만든 촛대라는 '영광의 손'이라는 끔찍한 아이템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주술과 과학, 문학을 타고 넘으며 술술 풀려나갔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을 더듬어 보면 다음과 같다.

“타인과 '나 - 나'의 관계로 만날 때는 필연적으로 싸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나'의 본질적 속성은 대체불가능성이기에 서로에게 자신을 대체불가능한 존재로 대해주기를 바라면서 정작 자신은 상대를 대체가능한 존재로 여기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인과의 관계는 '남 - 남'의 관계로 시작되어야 한다. '남'의 본질적 속성은 모른다(혹은 알 수 없다)는 것이기에 함부로 아는 척을 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당신을 모른다'는 태도야 말로 타자성을 존중하는 길이다.
그래서 타자성의 윤리의 제일 덕목은 '함부로 만지지 말라'가 된다. 여기서 만진다는 것은 물리적인 접촉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를 장악-말 그대로 손에 넣음-할 수 없음을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의미다. 이 윤리는 두 갈래로 나뉘어지는데, 공공의 영역에서는 '시민적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함부로 사생활이나 공간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런 것이다.
타자를 남으로 대하는 관계 속에서 서로의 타자성에 대한 존중을 주고 받을 때, 우리는 자신을 드러내고픈(계시) 욕망을 느낀다.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자신을 드러내어도 물어뜯기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자신을 드러내고 상대가 그것을 그의 고유한 이야기로 들어줄 때, 즉 존엄이 존중받는 경험을 통해 둘의 관계는 '남-남'을 넘어 '너 - 너'의 관계가 된다. 이것은 서로를 소비하는 관계가 아니라 돌보는 관계다. 왜 서로를 돌보는가. 이 관계를 지속하고 싶기 때문이다.“

강의 후기를 나누어보니 평소 자신의 고민과 맞닿아 있는 주제라서 열심히 들었다는 말들이 많았다. 관계라는 키워드가 10대들에게는 각별하게 다가간 듯하다. A는 지난밤에 거의 잠을 자지 못해 졸까봐 걱정을 했는데 흥미로운 강의여서 끝까지 집중해서 들었다고 했다. 사실 교사인 내게도 약이 되는 강의였다. 교사로서의 경력이 쌓일수록 학생들의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듯한 기분에 취하기 쉽고, 이런 기분은 금방 상대를 '교육적으로' 장악할 수 있다는 착각으로 이어진다. 교사의 경력이 인간을 납작하게 보는 태도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타자성에 대한 존중'을 간직해야 한다.
오후에는 소란과 함께 밭을 고르고 배양토를 뿌리고 작물을 심었다. 오디세이학교가 있는 참여동 건물 앞에는 허브를, 조금 떨어진 상상청 뒷마당에는 토마토를 심었다. 능숙하게 손수레를 몰던 B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5/11 화요일
C의 페차쿠차 주제는 본인이었다. 두 가지가 흥미로웠다. 하나는 발표가 C월에 대한 정보보다 C가 보는 자신(엉뚱한, 남다른)을 말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 또 하나는 그의 '자기 이야기'가 가져오는 반향이 예전만 못하다는 점. 벌써 7기도 두 달이 지나가는 시기니까 당연한 일이긴 하다. C가 주머니에서 '나' 다음에 꺼내들 것은 무엇일지, 그건 언제쯤일지 궁금하다.
D 본인, 그리고 부모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그가 '버티고 있는 중'임을 다시 확인했다. 싫은 일을 회피하는 습성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고치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나는 요청하고 기다릴 뿐이다. 지치지도, 초조해하지도 않고.

5/17 월요일
나침반 시간에 기권 팀에서는 4.3사건 관련 세미나를 했다. 여행을 위한 사전학습을 했다. 제주4.3평화재단에서 펴낸 를 각자 읽고 정리해 온 후에 대화를 나누었다. 각자 소책자를 읽고 4.3 사건에 대해 '정의, 원인, 영향, 의미'를 정리해 왔다. 같은 자료를 바탕으로 준비했지만 각자의 시각과 참고 자료가 달라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4.3 사건에 대한 정의를 내려보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을 취하기 위해' 특별법의 정의를 인용한 이들이 가장 많았지만, 몇몇은 자신의 해석과 가치판단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정의를 내렸다. 특히 제주에 뿌리가 있는 E는 단호하게 '제주민들에 대한 공권력의 무자비한 학살'이라고 4.3을 정의했다.
4.3의 원인에 대해서는 사전에 '미시적인 촉발원인'과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원인'으로 나누어 정리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전자로는 3.1절 발포 사건과 그에 이은 총파업, 해방 직후 제주도민들이 겪은 생활고, 5.10 단독선거 등이 거론되었다. 후자로는 식민지 잔재의 청산이 이루어지지 못한 점, 미군정에 대한 불신과 좌우익의 대립, 미국과 소련의 대립 등 국제 정치 상황으로 인한 분단 위기 등을 원인으로 꼽은 이들이 많았다. 나는 제주가 끊임없이 육지로부터의 타자화에 저항해 온 곳이며 제주라는 명칭 자체가 외부인의 시점에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4.3이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한국 사회의 정치적인 선택지가 좁아지게 된 것 같다고 한 E의 대답이 놀라웠다. 논의가 '제주도민들의 직간접적인 피해'의 차원을 넘지 못하는 듯해서 시야를 어떻게 넓혀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던 차에 나온 대답이었다. 그 말을 기점으로 논의가 '분단이라는 현재형의 구조'에 대해서까지 확장될 수 있었다.
4.3을 규정하고 역사적으로 평가하는 일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에 대해서는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가 되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와 같은 역사의 쓸모를 이야기하는 대답이 많았다. 여전히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위해라는 대답도 있었고, 역사적 진실을 아는 것 자체가 내 삶에 힘을 준다는 이도 있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여행 후에 다시 이야기를 나누어 보기로 했다. 그 시간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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