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6/2021
두 팀으로 나뉘어 수산리와 볍씨학교 제주학사를 찾아간 여행 넷째날의 이야기입니다. 두팀으로 나뉘어 활동한 날이기도 하고 학생들의 기록을 충분히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워 오늘은 타이가, 소월, 레오 세 분의 일기를 함께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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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7일 목요일
[길잡이 일기]
이곳의 아침이 소리로 가득 차 있는데도 고요하다고 한 말을 취소해야겠다. 어느새 몸이 적응했는지 오늘 아침에는 요란한 새소리에 알람보다 먼저 잠이 깼다. 전날 내린 비로 땅이 젖어 있어 있는데다 아침 일정이 바쁘기도 해서 오늘은 오름 산책을 생략하기로 했다. 일곱시에 마당에 모여 간단한 스트레칭을 한 뒤에 각자 아침식사를 하고 나서 볍씨학교 팀과 수산리 팀이 각각 모였다.
볍씨학교는 경기도 광명에 있는 대안학교로 초등과 중등이 통합된 과정인데, 마지막 9학년 한 해를 가족들과 떨어져 제주 학사에서 생활한다고 한다. 볍씨학교 팀은 오늘 하루를 함께 지내며 그들의 생활과 배움을 접해보는 시간을 가질 계획이다. 수산리는 제주 제2공항 예정지이다. 수산리팀은 마을 주민이자 제2공항 성산읍 반대 대책위 사무국장인 오창현님을 만나 주민들의 목소리를 들어볼 것이다.
레오, 규진, 타이가, 루, 우주, 노벨, 민들레, 준붕 그리고 길잡이 쑥갓이 조천읍 선흘리 마을에 있는 볍씨학교 제주학사에 도착한 것은 약속시간인 오전 10시가 되기 조금 전이었다. 마을의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다 보니 교문이 아닌 나무 대문 옆에 볍씨학교 제주학사라는 작은 글씨가 보였다. 학교 건물이라기보다는 마당이 있는 ㅁ자의 시골집 같아보여 아늑했다. 마당에서 어색어색하게 첫인사를 나누고 난 후에 볍씨학교 학생들이 학교 공간을 소개해주었다.
공간 소개를 들으며 자연스레 그들의 생활이 그려졌다.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왼편에 있는 가마솥이 걸린 아궁이가 있는데, 밥지기를 맡은 학생이 아침마다 거기에 불을 때서 밥을 짓는다고 했다. 처음에는 밥 짓는 일이 서툴어서 새벽 네 시에 일어나기도 했는데 요즘에는 한 시간이면 거뜬하다고. 열여섯살 학생들이 밥물 넘치는 것을 보아가며 불을 조절해가며 한 시간만에 15인분이 넘는 밥상을 차려내다니 놀라웠다. 하지만 가장 낯선 것은 역시 화장실이었는데, 인분으로 퇴비를 만들기 위해 볼일을 보고 난 후에는 볏짚과 섞어 따로 모아둔다고 했다. 수세식 화장실에 익숙한 내게는 다소 충격적일만큼 생소한 광경이었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한 생겨날 수 밖에 없는 똥오줌을 그저 눈에 안보이는 곳으로 치워버리는 도시의 방식보다 자연의 순환을 활용하는 이곳의 방식이 한결 우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에는 다함께 큰 방에 둘러앉아 서로의 학교와 배움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침마다 왕복 2km 거리의 동백동산을 달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데, 각자의 속도로 달리되 '첫째반드시 최선을 다해야 하고, 둘째 한 걸음도 걷지 않는 것'이 규칙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각자 자신의 숨길이를 가늠해가며 저마다의 한계에 직면하되, 조금씩 그 선을 넓혀가면서 성취를 맛보는 방식이 멋져보였다. 아침운동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다루는 법'을 익히는 과정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처음에는 40분 가까이 걸렸는데 지금은 15분까지 시간을 단축했다고 말하는 학생의 표정에서 자기 자신을 이겨내본 이의 자부가 엿보였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함께 동백 동산을 산책하고(다행히 뛰지는 않았다. 아침마다 교사도 같이 뛴다는 말에 헉, 했는데..), 볍씨학교 학생들이 직접 지었다는 커뮤니티홀 건물을 둘러보았다. 방문 전에 언론 기사를 통해 소강당을 학생들이 직접 돌을 쌓아올려 지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는데, 실제로 건물을 보니 깜짝 놀랄만큼 크고 번듯한 건물이어서 혀를 내둘렀다. 프로젝트 수업을 기획할 때마다 "어떻게 하면 그저 우리끼리 한 번 해보는 데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스스로와 세상에 이로움을 주는 성취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고민하는 나로서는 돌벽보다도 그 성취가 더 단단하게 느껴졌다.
오후에는 밭일을 했다. 볍씨학교 학생들이 경작하는 땅은 3000평이나 되어서, 자신들이 먹을 것을 거둘 뿐 아니라 시장에 내다 팔아서 소득을 얻기도 한단다. 이날의 작업은 콩, 감자, 옥수수 밭에서 잡초를 뽑는 일이었는데, 특별한 힘이나 기술이 필요한 건 아니었지만 햇볕을 등지고 쪼그려앉아 일을 하려니 쉽지 않았다.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면 좋으련만, 서로에게 말을 거는 것이 아무래도 쑥스러운 듯했다. 나만 간간이 볍씨학교 친구들에 말을 붙였다. 그나마도 한 시간이 넘어가면서부터는 익숙지 않은 농사일에 체력이 바닥난 오디세이들의 입은 한층 더 무거워졌다. 길잡이로서는 힘들고 덥고 지쳤을 때 각자의 반응을 살피는 일이 흥미로웠는데, 랩을 하듯 타령을 쏟아내는 사람도 있었고, 입을 꾹 다물고 일에 달려드는 사람도 있었다. 물을 마신다는 둥 화장실을 간다는 둥 하면서 5분마다 자리를 떴다가 한참만에야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이도 있었다. 밭일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한 후에 작별인사를 나누고 숙소로 돌아왔다. 낯선 사람과 문화에 흠뻑 젖어본 하루였다. 돌아오는 길에는 모두가 말을 잃은 듯 갈때와는 달리 차 안이 고요했다.
저녁식사 후에는 각 팀의 만남을 서로에게 소개하는 공유회가 있었는데, 나는 한 달마다 하는 온라인 북클럽을 진행하느라 참여하지 못해 너무너무 아쉬웠다. 말미에 살짝 보았는데 볍씨학교 팀이 자신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신나게 자랑(?)하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수산리 팀의 이야기는 하루닫기 시간에 들을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우리보다 훨씬 안락한 시간을 보내고 온 듯하다. 오회장님(학생들이 이렇게 부르더라)이 퍽 유쾌한 분이었나보다. 우리가 이틀 전에 을 봤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 자리에서 오멸 감독님에게 전화를 거시는가 하면(무려 '지금 올 수 있냐'고 물으셨다던데, 마침 감독님이 먼 곳에 가 있으셔서 안타깝게도 만남은 무산되고 전화통화로 대신했다고), 여행 전에 소월이 읽은 의 허은실 작가님을 즉석에서 불러주시기도 했단다.
수산리 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여행 중에 우리에게 쏟아진 제주분들의 엄청난 호의에 대해 생각했다. 숙소인 유채꽃프라자의 식구들은 우리가 머무는 동안 아예 카페 영업을 접고 세심하게 우리를 살펴주셨고 평화기행 안내를 맡은 양대표님은 우리가 마지막날 4.3 기념관에 방문할 예정이라는 말을 듣고는 해설을 자처하셨다. 볍씨학교 식구들은 하루 일과를 비워 우리와의 만남을 준비해주셨고, 수산리의 오창현 사무국장님 역시 기꺼이 우리에게 시간과 기회를 내어주셨다. 4.3 평화기행 중에 만난 분이 우리에게 오히려 '고맙다'고 말씀하셨을 때는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다. 이 과분한 호의는 어디에서 온 걸까? 아마도 열일곱 청소년들이기에 받을 수 있었던 축복일 것이다. 배움에는 때가 없다지만, 이런 축복을 언제까지나 누릴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즐기러가 아니라 배우러 제주로 향한 우리의 마음이 그분들께 조금이라도 전해졌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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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일기 by 타이가]
볍씨학교 팀은 8시반에 모두 집합하여 버스 팀, 차 팀으로 나뉘어 출발하였다. 버스팀도 정거장까지는 차로 가야 했는데, 쑥갓은 운전도 깔끔하게 잘하실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스스로 잘 못한다고 하셔서 조금 놀랐다. 어쨌든 버스에서 내려 몇분 걸어 도착한 볍씨학교는.... 적어도 외관상은 학교가 아니었다. 이것도 선입견일 수 있지만, 학교보단 집, 그것도 옛날 집에 더 가까운 건물들이 서있었다. 그곳에는 라봉이라는 개가 함께 살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엄청 짖어대더니 쓰다듬어주면 좋아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오전 시간은 볍씨학교 건물들의 대한 설명을 듣고 돌집 내에서 미리 선정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일정이었다. 주로 볍씨학교에 대한 소개와 질의응답이 이루어지고 오디세이 학교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 나왔는데. 볍씨학교 학생들은 부모님의 도움보다는 알바를 나가 번 돈으로 많은 것들을 해결한다는 점이 인상깊었다. 게다가 빨래, 밥, 건축 소위 의식주를 학생들이 모두 관리한다니.... 그래서인지 앳된 얼굴임에도 벌써 성숙한 모습이 보였다. 물론 나는 자식을 키우기 싫지만, 만약 키우게 된다면 8살에 경기도 볍씨학교부터 보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하는 공부는 흔한 학교 공부가 아니었다. 살기 위해 익혀야 할 것들을 배우는, 공부의 대상이 시험이 아니라 삶 그 자체가 되는 진짜 공부였다. 목요일 하루닫기 때는 ‘나는 가기 싫지만 자식은 보내고 싶다’ 라는 농담 반 진담 반 섞인 소리를 했지만, 사실 진심으로 내가 볍씨학교의 존재를 안 상태로 중2나 그 이전으로 돌아간다면, 힘듦을 무릅쓰고, 아니 오히려 힘듦을 경험하러 진학하고 싶을 정도로 좋은 학교였다.
볍씨학교 학생들이 주신 소중한 밥을 먹고, 오후 농사 시간이 왔다. 밭으로 오고 가는 동안 트럭에 탔는데, 내가 예전부터 타보고 싶었던 자리여서 타는 동안 기분이 좋았다. 우리가 밭에서 한 일은 한마디로 잡초 뽑기였다. 드넓은 밭에 자리를 옮겨다니며 잡초를 열심히 뽑았다. 힘들어서 갈수록 집중력이 떨어졌지만 나중에 감자, 옥수수, 콩 등의 작물만 남아있는 밭을 보니 뿌듯했다. 우리는 오늘 한 번 도와주고 가는 것이기에, 적어도 해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기뻤다. 중간 쉬는시간에 먹었던 인절미와 주스가 그렇게 맛날 수 없었다.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쑥갓의 차를 기다리는 동안 규진이와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었는데, 그것도 개꿀맛이었다.
저녁을 먹고 제2공항 건설 예정지를 다녀온 팀과의 공유회를 가졌는데, 그 이전 준비하는 시간의 분위기가 살벌했다. 친구들이 여행동안 쌓인 피로로 조금 예민한 상태에서 어떻게 준비할지에 대한 논의가 꼬이다 보니 종종 언성이 높아졌다. 친구들이 그렇게 민감보스인 적은 처음이어서 조금 쫄았다. 그래도 베델이 중간에서 잘 중재해주셔서 원활히 진행되었고, 그때 분위기 전환용으로 구슬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내 기억으론 그것을 평생 처음 먹어보는 것이어서 그 사실에 스스로 놀랐다. 그렇게 시작된 공유회는 준비 시간이 부족했다 보니 모두 발표가 조금 부실하다는 느낌을 개인적으로 받았다. 나도 발표할 때 몇마디 잘 나가다가 중간에 머리가 하얘져 말문이 막혀서 너무 아쉬웠다.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말이다.
하루닫기 시간에는 산이와 우주가 약속된 시간이 지난 후에 방문 밖으로 나왔던 사건에 대해 다뤘는데, 나도 자정 넘어 10초간 방에서 나가 있었던, 엄밀히 규칙을 어긴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수를 하였다. 많은 친구들이 산이와 우주의 행동에 걱정이 되었고 화가 나기도 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리고 나같으면 이상한 의리(?) 때문에 괜히 말 못할 것 같은데, 이 이야기를 용기있게 처음 한 난이가 새삼 멋져보였다. 일반 학교 같은 경우는 괜히 일을 크게 벌리면 안되기 때문에 혼내더라도 개인적으로 혼내거나 눈감아주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이런 것을 모두가 함께 자유롭게, 진지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고 느꼈고 은근히 오디세이 뽕(?)이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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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일기 by 소월]
원래 우리 조가 가려고 했던 강정마을 옆마을에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고 그래서 우리 조는 반으로 갈라져서 볍씨학교, 수산리로 나뉘게 되었다. 또 다시 버스를 타야한다는 생각이 너무 싫었지만 깼다 잤다 하면서 수산리 1동으로 도착하였다.
처음 입구에서 부터 제2공항 반대라는 깃발이 꽂혀있었고 그때 부터 아 여기는 진심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는 수산리 학교를 갔었고 우리는 청년회장님 보다 어떤 떠돌이 강아지가 먼저 우리를 환영해줬었다. 사실 환영해줬다는 생각에 베델과 난이는 공감하지 못한듯 싶다. 두분다 돌담 위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고 우리는 아랑곳 하지않고 황구와 놀았다. 그렇게 이장님이 오시고 마을 한바퀴를 돌려고 먼저 마을 회관으로 가고 있었다(황구는 가지 않았다). 마을 회관 옆에는 최융양이라는 사람의 공덕비가 있었고 그 사람이 누구냐면 4.3 사건때 이곳에 주둔했던 장교였는데 마을 주민들은 그 사람에게 제발 해치지 말아달라고 하면서 고기나 떡을 가져다 주기도 하고 그러다가 공덕비까지 세우게 된 어떻게 보면 이런 4.3이 결국 폭도들이 일으킨 것이 아닌것은 그 군인들도 알고 있었다는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싶다. 그 이야기를 듣고 (황구는 자기 갈길 갔다.) 부부석을 들렀는데 무슨 엄청난 폭우(?)가 있었어서 아내 돌이 멀리 떠내려 갔는데 그 뒤로 마을에서는 안좋은 일만 생기다가 지나가던 스님이 저 돌은 아내가 있어야 한다고 해서 결국에는 같이 붙여놓았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그 뒤에는 현대식 빌라가 있었는데 이명박 정부때 시골의 분교들을 통합하려는 움직임이 보여서 학생 수를 모으고자 수산리 학교에 추억이 있던 마을 사람들이 돈을 모아 무려 7억이라는 돈으로 빌라(기숙사?)를 짓게 되었다고 하셨다. 하지만 이렇게 지켜냈던 학교가 공항으로 부터 겨우 800m 정도의 거리만 있어서 소음과 커다란 비행기들이 지나가며 학생수가 줄고 결국에서 사라질 거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 학교가 사라지면 안되는 이유를 하나 더 들어주셨는데 옛날에는 현무암으로 성곽을 만든게 있었는데(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그게 거의 다 사라졌지만 유일하게 이곳에 남아있었고 그 이유가 해방 후 즉시 (수산리)학교가 생기고 그 학교의 담장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을 수 있었다고 설명 해주셨다.
다시금 느끼는 거지만 정말 말을 못하셨다. 어쩌면 어제 말씀을 들었던 할머님보다 정리가 어려웠구나 싶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그런 투박한 말투가 정겹게 느껴졌고 우리를 이상하게 유혹하려고 하는게 아닌 그 말투속에서는 자신의 소중한 추억과 마을 사람들의 삶의 원동력이 담긴 마을을 공항으로 부터 지키고자하는 순수한 의도가 느껴졌기에 더욱 와닿았던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카페에 도착해서 제2공항의 음모(?)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1. 안개일수가 조작이 되었다(다른곳의 기준은 10년 성산은 7년). 2. 새들이 나는 높이는 100m 밖에 되지않아 버드 스트라이크 위협이 없다? (사실은 1km 이상 올라가는 새들도 있고 100m는 택도 없음) 솔직히 이것으로만으로도 짜증이 나는데 천연기념물 1급인 매의 서식지가 항로에 바로 들어가 있고 심지어 그 서식지를 한라산으로 옮겨주겠다는(?)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나 하고 있는 국토부가 미웠다. 왜 하필 성산일까? 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지만 일반인은 알길이 전혀 없었다.
카페에서 정말 맛있는 한라봉라떼를 먹고 국숫집으로 들어가 진짜 감격의 흑돼지 비빔면을 먹었다. 그렇게 제일 편안한 일정을 보내고 숙소로 도착해서 다른 볍씨마을로 간 친구들을 기다리며 놀고 있었고 그 친구들이 정말 죽을것 같은 몰골을 하고 돌아왔어서 뭔가 미안했지만 나도 처음에는 볍씨 학교 가려고 했던것을 생각 해보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그날은 편안하게 발표준비를 하고 그 다음날 집갈것을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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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일기 by 레오]
넷째 날에는 팀을 나누어 볍씨 학교와 수산리 마을에 갔다. 원래는 강정마을도 선택지에 있었지만 갑자기 그 옆마을에 코로나 확진자 나오며 취소 되었다. 나는 렌터카를 타고 볍씨학교로 갔는데, 쑥갓이 운전을 하며 자꾸 우리에게 “오는 데에는 순서 있지만 가는 데에는 순서 없다”, “우리가 한날 한시에 죽을 수는 있다”는 경고의 말들을 하셔서 너무 웃겼다. 볍씨 학교는 생각보다 허름하고 생각보다 친근한 집같은 곳이었다. 딱 차에서 내리자마자 풍긴 흙냄새와 곳곳에 만연한 벌레들은 낯설고 조금은 싫었지만 그래도 그들의 삶의 방식을 잘 이해할 수 있게했다. 학교 소개를 받고 우리 모두는 볍씨학교 학생들이 직접 지은 돌집에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볍씨학교에 대해서도 알게 됐고, 전날 저녁부터 준비한 오디세이학교에 대한 소개도 했다. 누군가에게 우리를 소개한다는 것은 늘 새롭고, 어색한 일인 것 같다. 볍씨학교의 시스템은 여러모로 충격적이었는데, 그 중 화장실이 제일이었다…
그 후에는 볍씨학교 친구들이 직접 만든 점심을 먹었다. 남기면 안 된다는 말에 평소에 먹는 것에 한 3배는 먹은 것 같다. 식사 중간에 나물에 파리가 앉았는데, 개의치 않고 그냥 먹는 모습에 내가 너무 예민떠는 건가, 나의 위생관념이 너무 유난스러운가 하는 생각이 들어 약간 그렇긴 했지만 맛있었다. 밥을 먹고 동네를 한 바퀴 돌며 볍씨학교의 다른 공간들과 밭에 대한 소개를 듣고, 트럭 뒷자리에 타고 밭일을 하러 나갔다. 볍씨학교 친구들은 모두 중무장을 한 상태였는데 우리는 그냥 옷을 입고 가서 약간 걱정이 됐고, 그 걱정은 현실이 됐다. 일이 끝날 즈음에는 모두 화끈거리는 팔과 탄 피부를 얻을 수 있었다. 우리가 할 일은 밭에있는 잡초를 뽑는 일이었다. 사실 나는 그 다리를 하고 밭일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너무 자연스럽게 호미(골괭이)를 인원수대로 주길래 그냥 받아서 했다. 뭘 뽑아야 하는 지 몰라서 그냥 막 뽑았다. 지금 와서 솔직히 말하자면 뽑지 말아야 할 것을 좀 뽑은 것 같다. 밭을 갈아엎는 동안 벌레도 많이 봤다. 벌레, 지렁이, 달팽이… 처음에는 약간 놀라기라도 했는데 나중에는 익숙해져서 그냥 걔네를 다시 묻어줬다. 규진이는 애완 달팽이도 발견했다. 볕도 강했고, 밭이 너무 넓어(높은 확률로 우리에게만) 일을 하며 친구들이 많이 힘들어 했다.
그 힘든 상태에서 친구들이 나눈 대화가 나에게 좀 충격적이었다. 뭐 너무 힘들다, 하기 싫다는 말도 있었고, 수산리에 간 팀이 숙소에 도착했다는 카톡을 봤을 때는 불만의 말도 많이 들렸다. 그 와중에 한 친구가 나는 농사와 맞지 않는 것 같으니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말을 했을때는 진짜로 헉 했다. 그 앞에는 매일같이 이 일을 하는 친구들이 있었고, 그 말 속에 숨은 의미는 단순히 나와 농사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었기에 더 민망했다. 우리 친구들은 나쁜 의도가 없었겠지만 그냥 우리의 말이 어떻게 들렸을지 상상하니 너무 쪽팔렸다. 그래서 말없이 좀 더 열심히 했던 것도 있는 것 같다. 밭일을 한 3시간 하고 나니 깁스 안으로 흙이 다 스며들어 시커먼 색이 됐고, 나는 너덜너덜한 만신창이가 됐다. 거의 기절한 상태에서 숙소로 와 씻고 밥을 먹고 공유회 준비를 했다. 다 예민한 상태여서 거의 싸움이 날 뻔 했지만 구슬아이스크림의 힘으로 어떻게 잘 끝났다. 수산리 팀의 공유도 듣고, 우리도 설명을 한 다음 질문을 받았는데, 친구들이 볍씨학교에 대해 궁금한게 굉장히 많았어서 놀라웠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우리가 그곳에서 느꼈던 좀 그랬던 것들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나만 그런 감정을 느낀게 아니었다는 안도감이 들면서 동시에 내가 서울촌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하루닫기에서는 불편함에 대한 대화가 오갔다. 볍씨학교 친구들은 어떤 가치를 위해 그 어마어마한 불편함들을 감수하며 사는 걸까 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또 우리가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견뎌내야만 할 일이 뭐가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규칙에 대한 얘기도 나왔다. 우주와 산이가 통금시간 후에 복도에 나왔던 일로 시작된 대화였는데, 어쩌다보니 전반적인 우리의 태도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나도 그 전부터 품었던 불만이 있었기에 한마디 덧붙였다. 계속 그런 행동을 한다면 다른 친구들은 몰라도 나의 실망은 확실히 얻게 될 것이라는 투의 말이었는데, 이미 그 행동을 하는 친구에게는 레오의 실망이 의미없을 거라는 베델의 말이 충격적이었다. 또 어떤 규칙을 어기고 합의를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그 신뢰를 바탕으로 한 많은 일들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는 쑥갓의 말이 인상깊었다. 무거운 분위기에서 제주도에서의 마지막 밤이 지나갔다. 우주가 같이 하자고 가져온 슈렉 팩은 붙이고 누워 있다가는 7시에 피부가 초록색인 채로 눈을 뜨게 될 것 같아서 끝내 하지 못했다. 그건 좀 아쉽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