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4/2026
[임향자의 큐슈 유학생활기]
45년의 세월을 넘어 전하는 보은(報恩)의 마음
45년의 세월을 넘어서
임향자
한국사진예술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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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 전, 낯선 타국에서 모든 것이 서툴고 어려웠던 유학생 시절, 나를 따뜻한 마음으로 맞아준 오가와 슈지(小河修次) 교수님과 가족들. 그동안 치카에(ちか江) 부인이 돌아가시고, 얼마 전 교수님께서 치매 초기로 요양원으로 들어가 지내신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기억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때 만나 뵙고 싶어 서둘러서 후쿠오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나를 알아보실까? 가는 내내 마음을 졸이며 걱정했는데, 요양원에서 만난 교수님은 내 이름을 기억하고 두 손을 꼬옥 잡으며 반가워하시는 모습에 안도하는 마음과 함께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옛날 유학 시절 얘기며, 온가족이 함께 드라이브를 하고 외식을 즐기던 때의 추억, 카라츠(唐津) 바닷가로 촬영 나갔던 일, 내가 후쿠오카시립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을 때 온 가족이 함께 달려와서 축하해주었던 일 등, 끝없이 이어지는 옛날얘기로 꽃을 피웠다.
가장 잊지 못할 에피소드는 오가와 교수님의 부친이 별세하셨을 때의 일. 객지에서 고생하는 나를 유독 아껴주셨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나는 임종을 지켜드리지 못했다. 야외 촬영 수업을 마치고 뒤늦게 가족과 친척들이 모여 기다리는 빈소에 도착한 내가 신발을 벗고 들어서서 작별인사를 마치자마자, 오가와 교수님께서 기다렸다는 듯이 나에게 편지봉투 하나를 조심스럽게 내미는 것이었다. 할아버지가 임종하시면서 오직 나에게만 남긴 유서라고 했다. 내가 봉투를 받아드는 순간, 그곳에 모여있던 모든 가족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집중되고, 빈소가 팽팽한 공기에 휩싸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놀란 나는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열었다. 봉투 안에는 “타지에 와서 고생이 많구나. 건강 잘 챙기고 공부 열심히 해서 한국에 돌아가서는 사진계의 큰 인물이 되어라.”라는 당부가, 정식 편지지도 아닌 마트 전단지 흰 뒷면에 붓글씨로 쓰여 있는 것이었다. 내가 더듬거리며 그 ‘유언장’의 낭독을 마치자마자, 잔뜩 긴장해 있던 온 가족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비로소 얼굴에 미소를 떠올리던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도쿄의 일본대학 사진학과를 졸업한 나는 당시 일본에서 유일하게 사진학 전공 대학원 과정을 둔 후쿠오카의 큐슈산업대학 대학원으로 진학했고, 그곳에서 만난 오가와 교수님과 또 한 분 카타야마 세츠조(片山摂三) 교수님은 나의 예술 세계를 넓혀주신 스승이자, 객지에서 외로움을 이겨내게 한 든든한 가족이었다. 그리고 전위적인 연출사진의 선구자인 우에다 쇼지(植田正治), 전후 일본을 대표하는 사진가 토마츠 쇼메이(東松照明)와 나라하라 잇코(奈良原 一高) 선생님 같은 거장들과 가까이에서 가르침을 받는 행운을 누린 것도 그 시절이었다.
세월은 참으로 빠르고 덧없이 흘러갔다. 당시 서너 살짜리 아이였던 오가와 교수님댁 막내딸 치와키(千和己) 짱은 어느덧 중년의 커리어 우먼이 되었고, 초등학생이던 히데타로(秀太郎) 군은 이제 두 자녀를 둔 어엿한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히데타로의 초등학교 운동회 날, 온 가족이 운동장 나무 그늘 아래에 자리를 깔고 둘러앉아 내가 준비해간 한국식 김밥을 맛있게 나누어 먹던 정경이 마치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다.
가난한 유학생의 눈에는 경제적 호황을 누리던 1970년대의 일본의 일상은 경이로움이었다. 동네 여기저기에 아직 멀쩡한 가전제품들이 버려져 있었고, 교수님 댁 식구들과 마을을 산책하다가 주워온 ‘알라딘’ 석유스토브로 한겨울 다다미방 추위를 견디기도 했고, 주워온 자전거로는 치와키 짱에게 타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반세기 남짓한 시간이 흐르는 동안, 당시 부러움으로 바라보아야 했던 그 물질의 풍요로움을 지금은 우리 한국이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눈을 감으면, 그곳에서 보낸 유학 시절의 갖가지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설날 연휴 때도 귀국하지 않은 나를 위해 ‘오세치’ 요리를 만들어주고, 감기로 누워있을 때 뜨거운 생강차를 끓여주신 치카에 부인…. 그동안 부끄럽지 않은 삶을 위해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 유학 생활 중 교수님과 가족이 베풀어주신 가르침과 할아버지께서 남겨주신 말씀에 보답하기에는 한참 모자라지만, 그나마 작은 성취들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오가와 교수님과 그 가족이 보여준 온정이 큰 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할아버지와 치카에 부인이 잠들어 있는 가족 묘소를 찾아 성묘하고, 그동안 못다 한 마음을 달래고, 다음날 귀국길에 올랐다. 요양원을 나서면서는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깊이 머리를 숙였다. 까마득한 옛날의 실오라기 같은 기억의 흔적들이 아직 남아있는 동안,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오가와 교수님과의 해후의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교수님께서 남은 시간을 부디 행복하게 보내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