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2/2024
지친 목소리의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오빠 안방 문이 잠겼어.” 둘째가 장난치다가 방문이 잠긴 모양이다. 비상 열쇠는 안방에 있었다. 아내는 며칠 동안 몸이 좋지 않다고 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둘째는 해맑게 웃고 있고, 평소 보름달 같던 아내는 지칠 때로 지쳐 초승달같이 희미해져 보였다. 방문 옆으로 수많은 시도의 흔적이 보였다. 안 쓰는 플라스틱 카드, 드라이버, 철사, 등의 도구들이 구깃구깃 꼬불꼬불 명을 다해가고 있었다.
사람을 부르기도 겁이 났다. 얼마 전 둘째의 치과 검진비가 180달러, 우리 돈으로 18만 원 가까이 나왔다.엑스레이 한 장 찍지도 못하고 20만 원 가까이 냈던 경험은 섣불리 전문가를 부를 수 없게 했을 것이다. 18.. 만원..
나는 악수를 청하듯 손을 내밀어 괜스레 구릿빛 방문을 돌려보았다. 아내가 했을 수많은 시도를 다시 해보기 시작했다. 유튜브에 ‘방문 열쇠 열기’라고 검색을 했다. ‘이래저래 하시면 됩니다. 30초도 안 걸리지요?’ 라며 화면을 뚫고나오는 기세의 전문가를 보며 희망에 부풀었다가, 포기하게 되는 과정을 3~4번 거치게 되었다.
멋진남편이고 싶었다.
이 잠긴 문을 열어, 익숙한 그곳을 보여주며 별거 아니라는 듯 가볍게 미소 짓고 싶었다. 10분, 30분… 1시간이 넘어가며 희망은 방문만큼 단단히 닫혀가고 있었다. 아이들은 주변을 떠나지 않고 일을 더 힘들게 만들었다. “아빠 내가 해볼게”라며 도구를 가로채고, “우리 이제 영원히 못 들어가는 거야?” “사람 부르면 안 돼?” 등의 질문을 했다. 그러던 아이들도 지쳐서 자러 가고 나는 방문 앞에 홀로 남았다.
외로웠다. 잘 안되니 속에서 열이 올라왔다. 영상 속 전문가들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영상 아래에는 감사 댓글이 많았다. “절 받으세요. 덕분에 똥을 쌌습니다.” 댓글에 담긴 일상의 회복이 부러웠다. ‘저렇게 많은 사람이 해냈는데, 나는 이거를 하나 못한다고?’ 희망의 윤활류였던 댓글들은 이제 절망의 기름이 되어 내 가슴을 태웠다. 드러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악몽이라면 깨어나면 되지만, 문을 열지 못하면 현실이 악몽이 된다. 일어나세요. 용사여. 나를 다시 일으킨다.
그러다 이 영상을 보았다. 클립 두 개로 문을 여는 영상이었는데 이미 보았던 클립활용 영상들과 매우 다른 부분이 있었다. 대부분은 ‘이렇게 하세요.’라며 보여주는 것에 그쳤다. 하지만 영상은 달랐다. 투명한 아크릴 재질로 만들어져 속이 훤히 보이는 자물쇠를 열며 열쇠의 원리를 보여주며 설명했다.
그리고, 방문 앞 민호는 사라지고 매트릭스의 네오만 있었다. 둥글고 도도한 방문 손잡이의 내부가 눈앞에 그려지니, 오히려 눈을 감았다. 마침 아이들을 재우고 나오던 아내에게 조금은 튼튼한 머리핀을 달라고 부탁했다. 그 원리를 제대로 수행해내려면 좀 더 튼튼한 재질의 클립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하…, 열렸다.
마라톤 결승선을 지나듯 슬로우 모션처럼 안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결승선 너머의 포근한 이불과 배게, 천장 생김새와 바닥의 감촉까지. 당연하지 않았다. 아내와 늦은 저녁으로 군만두에 맥주 한잔을 마시며 나는 벅차올랐다가 민망하기를 반복했다. 범죄 영화에서 클립으로 문을 따는 사람들을 보며 한번 해보고 싶다고 생각만 했는데, 이걸 해내다니. 아오. 아니 이게 뭐라고 이렇게 뿌듯한 거지. 아오.
그리고 지금 나는 잠긴 손잡이를 마주하듯,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 사람들에게 말하기와 글쓰기를 알려주는 일을 하면서도 정작 나 스스로 정기적으로 글을 쓰는 것에서 손을 놓았었다. 2년 전 출판사와 다음 에세이 계약까지 해두었었지만,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계약금도 받아놓고, 닫힌 문을 열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둘째가 선물을 준 거 같다. 아빠.. 글 안 써진다고 도망가지 말고 앉아서 열라고. 배우고, 희망하고, 절망하고. 다시 일어나고, 계속 해보라고. 그래야 잠긴 게 열린다고. 열쇠가 없는 거지, 열 수가 없는 게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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