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8/2026
일본군 폭격기가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피란길, 세 살배기 딸 제시는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 호떡을 사 먹자며 조릅니다. 아이는 내일 꼭 사주겠다는 부모의 약속을 받아내고서야 겨우 잠이 듭니다. 도시의 3분의 2가 폭격으로 무너졌다는 참담한 소식을 접한 날에도, 일기는 “오늘 제시가 밥을 꽤 잘 먹는다”는 담담한 문장으로 끝을 맺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 양우조와 최선화 부부가 중일전쟁의 포화 속에서 8년간 함께 써 내려간 육아일기 『제시의 일기』에 담긴 풍경입니다.
1938년 중국에서 첫째 딸이 태어난 순간부터 해방을 맞아 1946년 귀국할 때까지, 부부는 공습과 질병의 위협 속에서 위태로운 망명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던 날 임정 지도자들이 나라를 구할 아들을 기대하다 실망했을 때도, 아버지는 조국 독립을 위해 아들만을 바라야 하는 비참한 현실이 가련할 뿐이라며 딸아이의 탄생을 애틋하게 보듬었습니다. 전쟁의 공포 속에서도 부부는 아이의 첫걸음마와 첫니를 기록하며 묵묵히 내일의 삶을 지켜냈습니다.
2025년 『Korea Journal』 겨울호에 실린 Hannah Y. Park의 논문 「Home and Hope for a Family in Exile: Jessie’s Diary as a Source of Wartime Refuge and Resilience (1938–1946)」는 『제시의 일기』를 단순한 역사 사료를 넘어, 극한의 위기 속에서 가족을 지탱한 문학적 안식처로 새롭게 조명합니다. 저자는 이 기록을 조선 후기 유배 일기 및 홀로코스트 일기와 나란히 놓으며, 부부가 함께 아이의 성장을 기록하는 행위 자체가 절망을 버텨내는 희망의 원천이었음을 밝힙니다.
광복절을 기념해 거대한 독립 투쟁의 기록 뒤편에 자리했던, 아이를 키우며 삶의 온기를 지켜낸 한 가족의 이야기를 만나보고 싶은 분들께 이 논문을 권합니다.
🔖 논문 다운로드 https://accesson.kr/kj/v.65/4/347/58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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