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2026
요 며칠 사이 농업계에서 큰 역할을 하시는 분들이 각각 시골살이궁리소를 다녀가셨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걱정은 묘하게 한곳으로 모였습니다.
“농업의 경쟁력이 예전 같지 않다.”
“국민들이 농업과 농촌에 갖는 관심이 확연히 줄었다.”
저 역시 공감합니다.
그런데 저는 요즘 우리 농업의 가장 큰 문제가 단순히 농업인의 숫자가 줄어드는 데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농사를 지을 사람이 너무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는 것.
어쩌면 이것이 더 무서운 문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예전처럼 많은 사람의 노동을 투입해 농업을 유지하는 방식으로는 버티기 어렵습니다.
적은 사람이 더 안전하게,
더 정확하게,
더 적은 노동으로,
더 높은 생산성을 낼 수 있도록
농업의 체질 자체가 달라져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요즘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농업은 사람이 줄어드는 속도보다 더 빨리 진화해야 하는 산업이다.”
스마트팜도 필요하고, 로봇도 필요하고, AI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농업의 미래를 생산성만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농업을 이야기할 때 세 가지를 함께 보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농업이라는 산업,
농촌이라는 공간,
그리고 그곳을 지탱하는 농민이라는 사람.
산업으로서 농업은 기상이변을 비롯 어떤 상황에서,
필요한만큼 그것을 잘 생산할 수 있는 경쟁력이 있어야 합니다.
농촌이라는 공간은 사람의 가슴을 채우는 쉼과 평안의 공간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농민은 그 산업과 공간을 지켜내면서 자신의 삶도 지속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이것을 조금 단순하게 이야기하곤 합니다.
“농업은 배를 채우고, 농촌은 가슴을 채우며, 농민은 그 둘을 지켜내는 사람이다.”
이 셋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무너지면 우리가 알고 있는 농업과 농촌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의 농업 위기를 단순히 농산물이 줄어드는 문제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배를 채울 산업과
가슴을 채울 공간,
그리고 그 둘을 지켜낼 사람이
함께 사라지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이렇게 큰 변화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우리 사회가 농업과 농촌의 문제를 이토록 남의 이야기처럼 바라본 적이 단군 이래 또 있었을까요.
제가 1960년 대 이전에는 살아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누가 속 시원하게 대답이라도 해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저도 이쯤에서 손을 놓고 20평 남짓한 작은 아파트로 들어가 살까 싶기도 합니다.
남의 손으로 잘 가꾸어진 정원을 천천히 산책하고, 눈 내리는 날에는 따뜻한 창가에 앉아 커피 한 잔 마시면서 말입니다.
아마 지금보다 몸도 덜 고단하고, 시간도 훨씬 넉넉할 것입니다.
가끔 강연이나 다니며 혀를 조금씩 움직여 주면 입안에 거미줄이 생길 일도 없겠지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마음 한구석이 편하지 않습니다.
농업을 모르는 사람에게 농업을 이야기하고,
농촌에서 살아보지 않은 사람에게 농촌의 가치를 전하고,
농민이 아닌 사람에게도 농민의 문제가 결국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을 설명하는 일.
어쩌면 지금 농업에는 농산물을 생산하는 사람 못지않게
농업과 농촌의 가치를
세상의 언어로 번역해 주는 사람과 그것을 보여주는 공간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돌이켜 보면 시골살이궁리소에서 해온 일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흙을 만지고,
작은 밭을 만들고,
꽃과 채소를 심고,
수확한 것을 함께 먹고,
정원을 거닐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텃밭 교육이었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잠시 쉬어가는 정원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정말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채소 몇 포기 잘 기르는 방법만은 아니었습니다.
농촌은 농민만의 삶터가 아니라
도시의 사람들에게도 쉼과 회복을 건네는 공간이라는 것.
농업은 먹거리를 생산하는 산업을 넘어,
사람의 삶과 관계와 공동체를 이어주는 일이라는 것.
그리고 농민의 삶이 우리 사회와 동떨어진 누군가의 특별한 삶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시골살이궁리소’라는 이름도 그랬습니다.
정답을 알려주는 곳이 아니라
함께 궁리해 보는 곳.
어떻게 농업을 이어갈 것인지,
어떻게 농촌을 사람들이 찾고, 머물고,
때로는 살아가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 것인지,
어떻게 농민의 삶을 조금 더 지속가능하게 만들 것인지.
저 역시 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저 흙 가까이에 서서 사람들과 만나고,
묻고, 이야기하며 그 답을 함께 궁리해 볼 뿐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참 묘합니다.
시골 한켠에 자리 잡은 작은 궁리소인데도
세상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계속 생깁니다.
오늘 오전에도 치유농업 전문가로 오랫동안 일하시다, 농촌진흥청에서 퇴직하신 박사님이 궁리소를 찾아오십니다.
오후에는 SBS 스브스뉴스와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시골 구석에 앉아 있는데 사람들이 찾아오고,
SNS나 방송을 통해 세상 사람들과 농업과 농촌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깁니다.
어쩌면 세상과 조금 떨어져 살기에,
오히려 세상에 들려줄 이야기가 생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전 같으면 이런 것을 그저 일 이거나 서비스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시골에 살면서도 세상 사람들과 농업과 농촌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계속 주어진다면,
그것도 어쩌면 제게 주어진 혜택인 동시에 역할인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을 시골로 불러 흙을 만지게 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곳에서 보고 느끼고 궁리한 것을 다시 세상 밖으로 전하는 일.
그것 역시 궁리소가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일 테니까요.
그래서 요즘 제 질문도 조금 달라졌습니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해야 할까’가 아니라,
‘지금 같은 시대에 이런 일을
누군가는 계속해야 하지 않을까.’
그 ‘누군가’가 꼭 대단한 사람일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시골 한켠에서 흙을 만지고,
사람들과 밥을 나누고,
세상의 변화를 바라보며
농업과 농촌의 이야기를 꾸준히 전할 수 있는 사람이면 될 것입니다.
가족들과의 시골살이 5년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한지가 1년을 넘었는데도,
아마 당분간 저는
그 질문인지 역할인지 답을 찾느라
시골살이궁리소에서
조금 더 궁리하며 살아갈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