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도스신학원

호도스신학원 일본무목교회는 한국의 소명받은 헌신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말씀을 믿지 않는 자는, 말씀을 관리하고 통제하려 든다.예레미야 20장은 결국 입을 닫고 싶은 예언자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마다 돌아온 것은 박수보다 조롱이었고, 위로보다 매질이었습니다. 심...
07/09/2026

말씀을 믿지 않는 자는, 말씀을 관리하고 통제하려 든다.
예레미야 20장은 결국 입을 닫고 싶은 예언자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마다 돌아온 것은 박수보다 조롱이었고, 위로보다 매질이었습니다. 심지어 가까운 사람들까지 그가 넘어지기를 기다렸습니다(10절). 그래서 그는 마음먹습니다. “다시는 그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9절). 말씀을 내려놓으면 조금은 편해질 줄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입은 다물 수 있어도, 뼛속의 불은 끌 수가 없었습니다.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9절). 예레미야는 그제야 알았을 것입니다. 자신이 말씀을 붙들고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 말씀이 자신을 붙들고 여기까지 데려왔다는 것을. 말씀은 필요할 때 꺼내 드는 등불만이 아니라, 때로는 내려놓고 싶어도 내려놓을 수 없는 불이 됩니다.
그러나 이 장의 가장 깊은 곳은 그 다음입니다. 예레미야는 “여호와께 노래하라”(13절)고 외친 바로 뒤에서 다시 깊은 탄식 속으로 떨어집니다(14절 이하). 방금 전까지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하신다고 고백했는데, 곧이어 자신의 삶 전체가 너무 무겁다고 토로합니다. 이것은 믿음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의 고백이 상처의 깊이를 단숨에 지워 주지는 못한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우리 마음에 그런 때가 있습니다. 입술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데,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 풀리지 않은 서러움이 남아 있습니다. 눈물로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마친 뒤에도 가슴이 다시 무너지는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방금 드린 찬송이 거짓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예레미야는 믿었고, 동시에 아팠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면서도 하나님께 자신의 고통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성숙한 믿음은 슬픔을 없애는 능력이 아니라, 슬픔까지 하나님 앞에 데려가는 용기인지 모릅니다. 예레미야는 무너졌지만 하나님과의 대화를 끊지 않았습니다. 원망도, 두려움도, 믿음도 모두 하나님께 가져갔습니다.
주님! 말씀을 놓아 버리고 싶은 날에도 이미 내 안에 심어 두신 말씀으로 나를 붙들어 주소서. 찬송 뒤에 다시 눈물이 찾아와도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울면서도 끝내 주님께 말하기를 멈추지 않게 하소서.

예레미야 20장 묵상: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않는 자는, 말씀을 관리하고 통제하려 든다. 예레미야 20장은 결국 입을 닫고 싶은 예언자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마다 돌아온 것은 박수보다 조롱이었고, 위로보...

人々は言う。「盲人の目を開けたあの方なら、ラザロを死なせずに済んだのではないか」と。しかし、主がその栄光を現される道は、人の思いをはるかに越えている。主は、すでに死の静寂に呑まれたその深淵へと、あえて歩み寄られるお方である。冷たい墓の闇に閉...
05/09/2026

人々は言う。「盲人の目を開けたあの方なら、ラザロを死なせずに済んだのではないか」と。しかし、主がその栄光を現される道は、人の思いをはるかに越えている。主は、すでに死の静寂に呑まれたその深淵へと、あえて歩み寄られるお方である。冷たい墓の闇に閉ざされ、命を奪い去られた者のもとへ降り立ち、その名を呼び、ふたたび息吹を吹き込まれる。絶望という名の暗闇のただ中でなお、魂を命へと呼び起こすことによって、神の真の栄光を余すところなく証しされるのです。

9月6日、お会いしましょう! 人々は言う。「盲人の目を開けたあの方なら、ラザロを死なせずに済んだのではないか」と。しかし、主がその栄光を現される道は、人の思いをはるかに越えている。主は、すでに死の静寂に呑...

예레미야 19장 묵상: 하나님께 낯선 삶이 되어버린 사람들예레미야 19장은 옹기 하나를 들고 힌놈의 골짜기로 내려가는 이야기에서 시작됩니다. 사람들이 제사를 드렸던 이곳을 향하여 하나님은 오히려 말씀하십니다. “그들...
03/09/2026

예레미야 19장 묵상: 하나님께 낯선 삶이 되어버린 사람들
예레미야 19장은 옹기 하나를 들고 힌놈의 골짜기로 내려가는 이야기에서 시작됩니다. 사람들이 제사를 드렸던 이곳을 향하여 하나님은 오히려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이곳을 불결하게 하여… 무죄한 자의 피로 이곳에 채웠음이라”(4절). 예배는 계속되고 있었지만, 그 예배가 사람을 살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잘못 섬기기 시작하자 제단만 비뚤어진 것이 아니라, 이웃을 대하는 손까지 잔인해졌습니다. 예배가 무너지면 삶도 함께 무너집니다.
본문에는 더 서늘한 말이 나옵니다. 그들이 이곳을 하나님께 “낯선 곳”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4절). 우리는 때로 하나님이 멀어지셔서 내 삶이 낯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 없는 삶을 너무 오래 되풀이하다 보면, 내가 살아가는 자리 자체가 하나님께 낯선 곳이 되어 버릴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타협이었는데, 어느새 마음의 지붕 위까지 다른 것들이 올라와 똬리를 틀고 앉습니다(13절).
예레미야는 마침내 옹기를 깨뜨리며 선포합니다. “토기장이의 그릇을 한 번 깨뜨리면 다시 완전하게 할 수 없다”(11절)고. 18장의 망가진 진흙은 다시 빚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9장의 그릇은 너무 오래 굳어 있었습니다. 깨지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더 이상 토기장이의 손길을 받아들일 수 없도록 굳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마음도 그러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오늘 지나치고, 내일도 못 들은 척하다 보면 어느 날 아무 말씀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마음의 굳어짐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듣지 않은 말씀들이 조금씩 쌓여 만들어지는지도 모릅니다(15절).
주님! 주님의 말씀이 아직 내 마음을 아프게 할 때 듣게 하소서. 삶의 자리가 주님께 낯선 곳이 되기 전에, 굳은 마음을 다시 부드럽게 하시고 주님의 손길 안에 머물게 하소서.

예레미야 19장 묵상: 하나님께 낯선 삶이 되어버린 사람들 예레미야 19장은 옹기 하나를 들고 힌놈의 골짜기로 내려가는 이야기에서 시작됩니다. 사람들이 제사를 드렸던 이곳을 향하여 하나님은 오히려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한현욱 목사님은 호도스신학원 재학생입니다.일본 선교에 소명을 받은 한 목사님은 현지 교단에 가입하여, 그 나라의 교회와 함께 걸어가는 선교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일방적으로 돕는 선교가 아니라, 현지 교회의 ...
02/09/2026

한현욱 목사님은 호도스신학원 재학생입니다.
일본 선교에 소명을 받은 한 목사님은 현지 교단에 가입하여, 그 나라의 교회와 함께 걸어가는 선교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일방적으로 돕는 선교가 아니라, 현지 교회의 한 지체가 되어 함께 섬기고 책임을 나누는 선교입니다. 이것이 호도스신학원이 추구하는 일본 선교의 방향이기도 합니다.

지난 여름방학 동안 한 목사님은 호도스신학원의 하기 선교실습으로 약 두 달간 일본의 한 무목교회를 섬겼습니다. 매주 주일예배에서 말씀을 전하고 기도회를 인도하며, 교우들과 함께 생활하고 교제하는 가운데 실제적인 목회와 선교의 훈련을 쌓았습니다.
두 달이라는 시간은 단순한 실습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무목교회의 현실을 가까이에서 마주하고, 그 교회와 함께 예배하며 살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호도스신학원이 추구하는 일본 선교의 방향이 한 사람의 삶과 섬김 속에서 어떻게 구체화되는지, 한현욱 목사님의 보고와 간증을 통해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한현욱 목사님은 호도스신학원 재학생입니다.일본 선교에 소명을 받은 한 목사님은 현지 교단에 가입하여, 그 나라의 교회와 함께 걸어가는 선교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일방적으로 돕는 선교가 아니라, 현지 교회의 .....

예레미야 18장 묵상: 재앙을 빚고 계신 하나님예레미야가 토기장이의 집에 내려갔을 때, 물레 위의 그릇 하나가 토기장이의 손에서 망가졌습니다. 그러나 토기장이는 진흙을 내던지지 않았습니다. 손을 다시 대어 “자기 의...
02/09/2026

예레미야 18장 묵상: 재앙을 빚고 계신 하나님
예레미야가 토기장이의 집에 내려갔을 때, 물레 위의 그릇 하나가 토기장이의 손에서 망가졌습니다. 그러나 토기장이는 진흙을 내던지지 않았습니다. 손을 다시 대어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었습니다”(4절). 망가졌지만 아직 진흙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빚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곧 섬뜩한 말씀을 하십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며 책략을 세워 너희를 치려 하노니”(11절). 히브리어로 읽으면 더욱 놀랍습니다. 토기장이가 그릇을 ‘빚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재앙을 ‘빚고’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자신들의 선택이 아무런 결과도 가져오지 않을 것처럼 살아가는 백성 앞에서, 하나님은 그 죄가 불러올 심판을 빚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은 아직 그릇을 깨뜨리는 손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이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제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라”(11절). 재앙을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 한가운데에는 여전히 ‘돌아오라’는 부르심이 있었습니다. 심판을 예고하신 것은 그들을 넘어뜨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아직 넘어지지 않을 길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백성은 말합니다. “이는 헛된 말이라 우리는 우리의 계획대로 행하리라”(12절). 하나님은 아직 다시 빚을 수 있다고 하시는데, 사람은 스스로 “소용없다”며 마음을 굳혀 갑니다. 어쩌면 가장 무서운 것은 망가지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길조차 들어갈 수 없도록 굳어 버리는 일인지 모릅니다.
오늘 내 삶에 아픈 말씀이 들려온다면, 그것은 아직 물레가 돌고 있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주님! 재앙을 두려워하기 전에 굳어 버린 마음을 두려워하게 하소서. 주님의 손길 앞에서 다시 부드러워져, 아직 빚으실 수 있는 진흙으로 남게 하소서.

예레미야 18장 묵상: 재앙을 빚고 계신 하나님 예레미야가 토기장이의 집에 내려갔을 때, 물레 위의 그릇 하나가 토기장이의 손에서 망가졌습니다. 그러나 토기장이는 진흙을 내던지지 않았습니다. 손을 다시 대어 “자기 의견.....

마음에 무엇을 새기며 살고 있습니까?예레미야 17장은 사람의 마음을 한 장의 돌판처럼 바라봅니다. 그런데 그 위에 기록된 것은 아름다운 말씀이 아니라 죄였습니다. “유다의 죄는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되 그들의 마음...
01/09/2026

마음에 무엇을 새기며 살고 있습니까?
예레미야 17장은 사람의 마음을 한 장의 돌판처럼 바라봅니다. 그런데 그 위에 기록된 것은 아름다운 말씀이 아니라 죄였습니다. “유다의 죄는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되 그들의 마음판에 새겨졌거늘”(1절). 죄는 지나가 버리는 한순간의 실수로만 머물지 않습니다. 같은 욕망을 되풀이하고, 같은 거짓을 변명하며, 같은 미움을 오래 품다 보면 어느새 마음에 깊은 글씨가 됩니다. 처음에는 내가 죄를 선택하지만, 나중에는 마음에 새겨진 죄가 나의 선택을 끌고 갈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기대어 있는지를 물으십니다. 사람과 자기 힘을 의지하는 자는 광야의 떨기나무와 같지만(5–6절), 여호와를 의지하는 사람은 “물가에 심어진 나무”와 같습니다(7–8절). 두 나무에게 똑같이 더위가 오고 가뭄도 찾아옵니다. 차이는 날씨가 아니라 뿌리입니다. 잎은 세상에 보이지만 뿌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뭄이 오면 그 사람이 어디에 깊이 기대어 살아왔는지가 드러납니다.
문제는 우리의 마음조차 언제나 믿을 만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9절)고 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사는 일이 아니라, 그 마음까지 하나님 앞에 내어놓는 일입니다. “여호와여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14절).
우리의 마음은 매일 무엇인가를 새기며 살아갑니다. 욕망도 새겨지고, 상처도 새겨지고, 반복해서 들은 말씀도 새겨집니다. 무엇을 오래 바라보고 무엇을 깊이 의지하느냐가 결국 마음의 글씨가 됩니다.
주님! 죄가 마음 깊이 자리를 잡기 전에 주님의 말씀을 더 깊이 새기게 하소서. 주님! 세상의 날씨에 흔들리는 잎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주님께 뿌리내리며,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예레미야 17장 묵상: 마음에 무엇을 새기며 살고 있습니까? 예레미야 17장은 사람의 마음을 한 장의 돌판처럼 바라봅니다. 그런데 그 위에 기록된 것은 아름다운 말씀이 아니라 죄였습니다. “유다의 죄는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

빈집보다 더 큰 미래예레미야 16장에서 하나님은 예언자에게 결혼하지 말고 자녀도 두지 말라고 하십니다(2절). 장례집에도 가지 말고(5절), 잔칫집에도 들어가지 말라고 하십니다(8절). 사람들이 살아가며 가장 자연스...
31/08/2026

빈집보다 더 큰 미래
예레미야 16장에서 하나님은 예언자에게 결혼하지 말고 자녀도 두지 말라고 하십니다(2절). 장례집에도 가지 말고(5절), 잔칫집에도 들어가지 말라고 하십니다(8절). 사람들이 살아가며 가장 자연스럽게 웃고 울고 서로의 손을 잡는 자리에서 예레미야는 비켜서야 했습니다. 그의 집에는 아이들의 발소리가 없었고, 식탁에는 잔치의 웃음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았는데, 그의 삶은 점점 넓어지기보다 오히려 좁아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우리도 때때로 그런 시간을 지납니다. 믿음으로 선택했는데 잃는 것이 더 많아 보이고, 순종했는데 삶의 자리가 오히려 비어 가는 듯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빈자리를 바라보며 묻습니다. 주님을 따랐는데 왜 내 손에는 없는 것들이 늘어나는가.
그러나 예레미야 16장은 예언자의 빈집만 보여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갑자기 전혀 다른 미래를 열어 보이십니다. 흩어진 백성을 다시 그들의 땅으로 데려오시겠다고 하시고(14–15절), 마침내 “민족들이 땅끝에서 주께 이르러”(19절) 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의 방에는 아이들의 발소리가 없었지만, 하나님이 보여 주신 미래에는 땅끝에서 하나님을 찾아오는 수많은 발소리가 들리고 있었습니다.
내 삶의 자리가 좁아졌다고 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까지 좁아진 것은 아닙니다. 지금 내게 사라지는 것만 바라보면 이야기가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그 빈자리 너머에 아직 내가 보지 못한 새로운 장면을 준비하고 계실 수 있습니다.
주님! 비어 가는 자리만 바라보며 낙심하지 않게 하소서. 주님! 오늘의 빈집 너머에 펼쳐질 주님의 더 큰 미래를 믿으며, 보이지 않아도 끝까지 말씀의 자리를 지키게 하소서.

예레미야 16장 묵상: 빈집보다 더 큰 미래 예레미야 16장에서 하나님은 예언자에게 결혼하지 말고 자녀도 두지 말라고 하십니다(2절). 장례집에도 가지 말고(5절), 잔칫집에도 들어가지 말라고 하십니다(8절). 사람들이 살아가며 .....

예레미야 15장 묵상: 오래 아프다 보면예레미야 15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15:1). 분명 기도가 힘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백성이...
27/08/2026

예레미야 15장 묵상: 오래 아프다 보면
예레미야 15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15:1). 분명 기도가 힘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백성이 너무 오래동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밀어내면서 살아왔던 것입니다. 죄는 어느 날 갑자기 사람을 무너뜨리지 않습니다. 돌아오라는 음성을 오늘도 지나치고, 내일도 못 들은 척하면서 조금씩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곳에서 무너집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나를 버렸고 내게서 물러갔으므로… 내가 뜻을 돌이키기에 지쳤음이로다”(15:6).
그로말임아 예루살렘에 닥친 가장 깊은 슬픔은 성벽이 무너지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누가 너를 불쌍히 여기며 누가 너를 위해 곡하며 누가 돌이켜 네 평안을 묻겠느냐”(15:5). 아무도 안부를 묻지 않는 도시. 아무도 아픔을 자기 일처럼 품어 주지 않는 사람. 죄가 남기는 마지막 풍경은 이러한 씁슬한 고독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장의 시선은 갑자기 예레미야에게로 향합니다. 그가 먹었던 하나님의 말씀은 한때 “기쁨과 마음의 즐거움”이었습니다(15:16). 그러나 그 말씀 때문에 홀로 앉아야 했고(15:17), 목말라 시냇가를 찾은 자가 마른 돌바닥만을 만난 것처럼, 하나님마저 침묵하시는 듯했습니다(15:18).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 내 앞에 세울 것이며”(15:19). 평생 백성에게 “돌아오라”고 외치던 예레미야가 이제 그 말씀을 자기 이름으로 듣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도 말씀 밖에 서 있지 않습니다. 오래 아프다 보면 상처가 진실처럼 말하기 시작합니다. 내 억울함이 하나님의 뜻처럼 들리고, 내 분노가 의로움의 목소리를 입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천한 것에서 귀한 것을 취하라”고 하십니다(15:19). 상처를 버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상처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내 마음의 말을 가려내라는 것입니다.
주님! 남에게 돌아오라 말하기 전에 제가 먼저 주께 돌아가게 하소서. 제 상처가 주님의 음성을 대신하지 않게 하시고, 오늘도 귀한 말씀을 가려내어 주님의 입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예레미야 15장 묵상: 오래 아프다 보면 예레미야 15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15:1). 분명 기도가 힘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백성이 너무 오래동안 .....

HODOS聖書通読黙想(8/27)예레미야 14장 묵상: 가뭄 이야기
27/08/2026

HODOS聖書通読黙想(8/27)
예레미야 14장 묵상: 가뭄 이야기

예레미야 14장 묵상: 가뭄 이야기 예레미야 14장은 가뭄이 들자 사람들이 물을 찾아 웅덩이로 달려갔지만, “물을 얻지 못하여 빈 그릇으로 돌아오는”(3절)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손에 든 빈 그릇보다 더 메마른 것은 그들의 마.....

김동우 목사님 선교편지
26/08/2026

김동우 목사님 선교편지

住所

栃木
Tochigi-shi, Tochigi
3280033

営業時間

月曜日 09:00 - 17:00
火曜日 09:00 - 17:00
水曜日 09:00 - 17:00
木曜日 09:00 - 17:00
金曜日 09:00 - 17:00

電話番号

+821067225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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