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이 망가져도 정말 험하게 망가진다.
달리 불평할 데도 없어, 가까운 친구를 만나 이야기할 때 농담으로 한심함을 전한다.
"너, 국제라는 말을 쓰면 잡혀가. 조심해!"
"???"
"글로벌인지 글로발인지 하라구. 글로벌경제, 글로벌흐름, 이렇게 말하는 거야. 국제경제, 국제동향이라고 말하면 잡혀간다."
글로벌이 짧기나 하나, 발음이 쉽기나 하나. 왜 억지로 써야할까?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흉 보일까봐, 촌스럽다고 할까봐?
도대체 뭐야?
실성한 사람들 같지 않은가?
아니지. 요즈음은 멘붕이라고 해야지, 실성했다고 하면 잡혀 갈라!
우리역사연구원
바른 역사 고전을 존중하고 언어(書契)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올바른 역사의 재정립을 시도한다.
학문은 하면 할수록 어렵다. 尋章摘句老彫蟲 “문장만 뒤적거려 문구를 따 저속하게 문장을 다듬다”로 보이는 문구가 납득이 안 되어 어떻게 해석할까 하고 서적을 찾아 보아도 잘 모르겠으나 창조성이 전혀 없이 모방해 따서 꾸며낸 글로 유식한체하는 행위를 비꼬는 글로 짐작이 간다. 老는 진부한 彫蟲은 글 짓다의 뜻으로 결론을 내렸는데 이것저것 찾던 중에 보던 글귀를 올려본다.
彫琢刻鏤 조탁각루 荀子 富國에 나오는 말로 조탁은 옥을 갈고 다듬거나 꾸며내는 것 또는 연마하는 뜻으로 쓰이는 낱말이고 각루는 조각하거나 새긴다는 말인데 刻은 나무에 鏤는 쇠붙이에 아로새기는 것이다. 문학에서는 문장을 묘사하고 수식해내는 성어로 쓰인다. 참고로 彫琢切磋 切磋琢磨학문이나 기예를 닦는 성어로 刻鏤心骨이나 刻骨銘心도 마음속 깊이 새겨 잊지 않는 사자성어도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
공자나이 70되서야....
공자가 채나라 국경을 지나다
뽕따는 두 여인을 보았는데
동쪽에서 뽕 따는 여인은 얼굴이 구슬처럼 예뻤고,서쪽에서 뽕 따는 여인은 곰보처럼 얽었다.
공자가 농담을 하기를
“동지박 서지박"
(東枝璞 西枝縛) 이로고,
동쪽 가지는 구슬 박이고
서쪽 가지는 얽을 박이라...
서쪽 곰보 여인이 공자를 힐끗 보더니 이렇게 대꾸한다.
'건순노치 칠일절양지상
이백어면 천하명문지상'
(乾脣露齒 七日絶糧之相
耳白於面 天下名文之相)
'입술이 바짝 마르고
이빨이 톡 튀어나온게
7일간 굶은 상인데, 귀가 얼굴 색보다 흰걸 보니 문장만은 천하에 알려질 만 하겠군..."
무안을 당한 공자가 서둘러 길을 떠나 채나라 국경에서 포졸에게 잡힌다
천하의 석학 공자를 몰라보는
포졸이 묘한 숙제를 던지는데...
'당신이 노나라 성현 공자라면 보통 사람과 다른 비범함이 있을터, 구멍이 9개 뚫린 구슬들을 명주실로 한번에 꿰어 보라'
공자가 명주실을 잡고 구슬을 꿰는데 연나흘을 끙끙 댔지만 실패라,
할 수 없이 자신을
乾脣露齒 七日絶糧之相
耳白於面 天下名文之相
'건순노치 칠일절양지상
이백어면 천하명문지상'
이라 했던 여인에게 제자를 보낸다.
제자가 가보니 여인은 간데없고 짚신만 거꾸로 뽕나무에 걸려있었던 바,
소식을 접한 공자가
무릎을 탁치며 제자에게 이르되
“계혜촌(繫鞋)을 찾아가 보아라"
제자가 우여곡절 끝에 계혜촌에서
그 여인을 찾아 구슬 꿰는 가르침을 청하자
여인은 말없이
양피지에 글자를 적어 준다. 《밀의사(蜜蟻絲)》
글귀를 받은 공자가 탄복하며
꿀과 실과 개미 한 마리를 잡아오게 하여,개미 뒷다라에 명주실을 묶어 놓고 구슬구멍에 꿀을 발라 뒀더니 하룻밤 사이 개미가 구슬을 다 꿰어 놓았는지라!
그 날은 공자가 밥 한끼 못 먹고 굶은 지 바로 칠 일째 되는 날 이었다.
옥문을 나서는 공자가 혼자 말을 중얼 거린다.
“격물치지(格物致知)"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참 지식에 통달 되도다.
자신의 오만 방자함과 어리석음을 깊이 뉘우친 공자는 또 다른 의문을 가진다.
왜? 구멍이 다섯도 일곱도 아닌, 아홉개 뚫린 구슬을 나에게 주었을까?
공자는 70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 이치를 깨달았 다는데,
인생이란 아홉개의 구멍을 가지고 태어나서
두 눈으로 바로 보고,
두 귀로 바로 듣고,
두 코로 향내를 감지하고,
입으로는 정갈하게 먹고 진실되게 말하며,
두 구멍으로는 배설 하는데 막힘이 없다면 그것은 바로 사람이 무리없이
삶을 이어가는 기본이요,
하늘의 도리(道理)가 아닐까 하는,
즉, 나 자신을 제대로 아는 것이 천하를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깨달음 이었다.
나이 70에
그 이치를 비로소 통달하니,
공자는 마음 내키는대로 행동을 해도 규범에 어긋나는 일이 없었다 하여
종심소욕 불유구
(從心所欲 不踰矩)
나이 70은
종심소욕불유구
(從心所慾不踰矩)라 부른다.
나이를 말할 때 공자의 논어, 위정(爲政) 4장을 보면
15세는 학문에 뜻을 둔다하여
"지학(志學)"
20세는 비교적 젊은 나이라하여
"약관(弱冠)"
30세는 뜻을 세우는 나이라하여
"이립(而立)"
40세는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고
세상 일에 흔들리지 않을 나이라하여
"불혹(不惑)"
50세는 하늘의 뜻을 안다하여
"지천명(知天命)"
60세는 천지만물의 이치에 통달하고
듣는대로 모두 이해한다하여
"이순(耳順)"
그러면 70은 무엇이라고 부르는가?
70은 "고희(古稀)"라고 부르는데,
이는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곡강시(曲江詩) 에서 유래된 말이다.
조정에서 돌아와 하루하루
춘의를 잡혀
(朝回日日典春衣)
매일 강두에서
취하여 돌아오네
(每日江頭盡醉歸)
술 빚이야 가는 곳마다
흔히 있지만
(酒債尋常行處有)
인생 칠십은
고래로 드물도다
(人生七十古來稀)
그러나 논어에서는 70은
"마음이 하고자 하는대로
하더라도 절대 법도를 넘지 않았다"
종심소욕불유구
(從心所慾不踰矩)라고 한다.
12.5. 자신을 알고
무엇을 추구 하드라도
법도를 지키며 이루시길요
24/11/2019
스티브잡스가 병상에서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마지막으로 남겼던 메세지♡
I reached the pinnacle of success in the business world.
나는 사업에서 성공의 최정점에 도달했었다.
In other's eyes, my life is an epitome of success.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내 삶이 성공의 전형으로 보일 것이다.
However, aside from work, I have little joy. In the end, wealth is only a fact of life that I am accustomed to.
그러나 나는 일을 떠나서는 기쁨이라고 거의 느끼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부라는 것이 내게는 그저 익숙한 삶의 일부일 뿐이다.
At this moment, lying on the sick bed and recalling my whole life, I realize all the recognition and wealth that I took so much pride in, have paled and become meaningless in the face of impending death.
지금 이 순간에, 병석에 누워 나의 지난 삶을 회상해보면, 내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겼던 주위의 갈채와 막대한 부는 임박한 죽음 앞에서 그 빛을 잃었고 그 의미도 다 상실했다.
In the darkness, I look at the green lights from the life supporting machines and hear the humming mechanical sounds, I feel the breath of god of death drawing closer...
어두운 방안에서 생명보조장치에서 나오는 푸른 빛을 물끄럼이 바라보며 낮게 웅웅거리는 그 기계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죽음의 사자의 숨길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Now I know, when we have accumulated sufficient weath to last our lifetime, we should pursue other matters that are unrelated to wealth...
이제야 깨닫는 것은 평생 배굶지 않을 정도의 부만 축적되면 더이상 돈버는 일과 상관 없는 다른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Should be something that is more important.
그건 돈버는 일보다는 더 중요한 뭔가가 되어야 한다.
Perhaps relationships, perhaps art, perhaps a dream from younger days...
그건 인간관계가 될 수 있고, 예술일 수도 있으며 어린시절부터 가졌던 꿈일 수도 있다.
Non-stop pursuing of wealth will only turn a person into a twisted being, just like me.
쉬지 않고 돈버는 일에만 몰두하다 보면 결과적으로 비뚤어진 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 바로 나같이 말이다.
God gave us the senses to let us feel the love in everyone's heart, not the illusions brought about by wealth.
부에 의해 조성된 환상과는 달리,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감성이란 것을 모두의 마음 속에 넣어 주셨다.
The wealth that I have won in my life I cannot bring with me.
평생에 내가 벌어들인 재산은 가져갈 도리가 없다.
What I can bring is only the memories precipitated by love.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오직 사랑으로 점철된 추억 뿐이다.
That's the true riches which will follow you, accompany you, giving you strength and light to go on.
그것이 진정한 부이며 그것은 우리를 따라오고, 동행하며, 우리가 나아갈 힘과 빛을 가져다 줄 것이다.
Love can travel a thousand miles. Life has no limits. Go where you want to go. Reach the height you want to reach. It is all in your heart and in your hands.
사랑은 수천 마일 떨어져 있더라도 전할 수 있다. 삶에는 한계가 없다.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가라. 오르고 싶은 높은 곳이 있으면 올라가보라. 모든 것은 우리가 마음먹기에 달렸고, 우리의 결단 속에 있다.
12월 7일 (토)우리역사 교육원총신대(이수)역 근처 하 은 주 진 본기 원문과 주석을 완독하는 대장정을 시작합니다. 역사 국어 한학자들의 많은 참가를 바랍니다. 특히 고문해석에 관심이 있는 분들을 환영합니다.
우리 역사 연구원 원장
13/11/2019
한자는 중국에서 만들어진 문자가 아니다.
고문인 사기 秦本紀를 읽다가 葉자가 正義에서 섭(書涉反)이라 하여 운서를 찾아보았다. 東國正韻이나 訓蒙字會에 ·엽으로 표기하였고 우리는 지금도 엽으로 읽고 있다. 중국학자가 펴낸 漢字古今音表를 보니 入聲음으로 상고에 ɕǐap, ⵃǐap 중고시대 ɕǐɛp, jǐɛp 근대에 iɛ, ie 현대는 sɤ라 하였다. 지금 20여명의 언어학자들이 편찬한 故訓滙纂에는 yè로 발음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與자는 音이 예(預)라 하였는데 東國正韻과 新增類合이 다 여로 적시하였고 우리나라는 변함없이 여로 발음한다. 그런데 중국은 상고 때 ⵃǐa 중고는 jǐo 근대에 iu 현시대 와서 y 지금은 평성 상성을 yú 거성은 yù라고 발성라고 적혀있다. 하나 더 예를 들자면 瑞자는 東國正韻 ᄊᆔ 新增類合 슈 속음은 셔 일제 영향을 받은 현재의 옥편은 수와 서로 기록되어 있다. Sweden나라를 한문으로 瑞典으로 표기하고 있다. 상 중고시대는 교류가 없어 먼 나라를 소개하지 않았을 터이고 근대에 들어와 나라 이름을 瑞典이라거 정했을 것이다. 그 당시 음 값이 瑞典을 ʂuitiɛn(중국 고음표에 따름)일 것이고 동국정음발음은 ·ᄉᆔ:뎐이나 ·ᄉᆔ;뗜으로 추측이 된다. 그런데 중국은 瑞자를 상고 때에 ʑǐwai로 시작 ʑǐwe ʂui ʑuei로 변해 오다 현재는 rui라 기록하고 있고 典자는 tiən tiɛn diǎn 또는 tiǎn이라 하였으니 현재 발음으로 Sweden을 표시한다면 ruidiǎn, ruitiǎn이 될 것으로 추측된다, 정음으로 표기하면 스웨덴이 뤼뎬이 된다는 이야기인데 문자의 음 값이 정착되지 못했다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바로 자기의 글ㅅ자가 아니라는 의미가 아닌가? 음가만 그런 것이 아니고 뜻도 혼란을 일으킨다. 본문에 왕이 임진 밖에서 회맹 하였다.로 보이는 글 즉 王會臨晉外를 고문을 주석한 定義 글에 일부는 水로 썼다고 하니 외와 수는 의미가 전혀 통하지 않는 글자다. 夷狄과 夷翟도 나라가 다른지는 몰라도 혼용하고 있었고 蜀나라 승상 壯을 서광이 이르길 또 狀으로 쓰였다고 소개했다. 의미가 다른 장할壯과 문서狀자는 뜻이 전혀 다른 글ㅅ자다. 뿐만 아니라 차릴裝 단장할 粧 씩씩할莊 꾸밀妝은 금방 설명한 壯, 狀과 함께 중국 문헌에 서로 섞어 쓰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자기네 문자라면 그렇게 할 수가 있다는 것인가? 전국시대 지명에 다섯 나라와 같이 秦을 공격하고 염씨까지 이르렀다 돌아왔다는 문구인 五國共攻秦 至鹽氏而還의 集解주석에도 서광이 혹은(때로는)監자로 썼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소금 鹽과 볼監자는 의미가 완전히 다른데도 불구하고 정의에서 주석을 붙여 놓았다. 자세히 살펴보면 어려운 고문을 해석한다는 후대 대학자들의 소리 값이 다르고 시대마다 바뀌었다.
물론 지금도 정확하게 자리 잡지 못하고 있으며 뜻도 정확하지 않다는 것은 다른 민족의 문자를 빌려 쓰고 있다는 근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나는 우리선조들이 쓰던 문자를 빌려가 중국글ㅅ자가 되었다고 여러 차례 주장한바가 있다. 앞으로도 사례를 더 모아 편집하여 후학들에게 확신을 시키려는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古文 語法
형용사 역시 사동용법(使動用法)이 있다. 富國强兵은 부유한 나라 강한 군대라는 뜻이 아니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군대를 강하게 만든다는 의미다. 다시 말하면 형용사가 명사 앞에 두어 꾸며주는 글ㅅ자가 아니고 사동 용법의 동사역할을 하고 있으며 튼튼하고 강하게 한다는 목적어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미 그들이 왔으면 평안하게 해야 한다 - 旣來之則安之. 편안한 안정된 이라는 安자는 형용사 이지만 동사로 전환하여 문장이 사동작용의 역할을 맡고 있다. 讓이나 使를 명사 앞에 써 ~을 하게하다는 뜻으로 실례를 들면 그들에게 도끼를 걸머지고 제후들의 군대에 순시하도록 했다 - 負之斧鉞 使巡於諸侯의 글이 보여주듯이 諸侯를 감시하려는 목적어를 수반하고 있다. 보충해 설명하자면 자동사는 목적어를 동반하지 않으나 사동으로 쓰이면 목적어가 따라붙는다.
명사의 사동용법의 예문을 든다면 이는 우리를 노예로 삼고 우리를 유예같이 만들려고 한다 - 是欲臣妾我也 是欲劉豫我也(臣妾:노예를 지칭-臣남자 妾여자. 劉豫: 송(宋)나라 사람. 제남부(濟南府)의 장. 금(金)이 공격하자 항복하고 황제로 등용됨. 금나라 꼭두각시가 된 사람)의 문장을 보면 欲이 臣妾과 劉豫의 명사 앞에 놓여 ~하려한다 ~하고자 한다라는 사동용법을 쓰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형용사 명사의 의동용법(意動用法)
의동과 사동의 구별은 사동은 실질적으로 목적어로 하여금 어떠한 성질을 갖추거나 어떤 사물로 확정하는 글이고 의동은 목적어가 어떠한 성질이나 사물을 객관적이 아니라 주관적으로 목적어가 어떻게 하도록 시키는 역할로 동사에는 쓰질 않고 형용사와 명사에만 활용한다. 태산에 오르니 천하가 작게 보였다 - 登泰山而小天下에서 작게 보였다(여긴 것)에 小天下:認爲天下小 는 의동용법이다. 비교되는 문장 장인이 (나무를)깎아서 작게 만들다 - 匠人 斲而小之에 작게 만들다小之:使他變小는 사동용법이다.
명사의 의동용법을 예시하면 흙과 나무 모양(자태)처럼 스스로 꾸미지(치장) 않는다 - 土木形骸 不自藻飾의 土木이 명사인데 자연과 같은 성질을 마음속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표현이다. 음식을 달게 여기고 의복을 아름답게 생각하며 지내는 거처를 편하게 느끼고 풍속을 즐겁게 여긴다 - 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 유명한 老子 道德經 80章에 있는 글도 의동용법의 명구이다.
품사 활용
서두에 언급한 바와 같이 고문과 근대의 문장은 기본적으로 명사 동사 형용사의 쓰임새는 같지만 품사의 활용에 있어 고문의 글은 근래에 비교하여 아래와 같은 몇 가지 독특한 형태를 소개해 본다면
명사를 동사로 쓰는 방법으로 에 이튿날 병사들이 도처에서 수근 거리며 다들 진승을 여러 사람이 주시하고 있었다 - 旦日 卒中往往語 皆指目陳勝 (中:속마음, 마음속에 품은 감정. 往往:곳곳, 처처. 指目:여러 사람이 손가락을 가르키면서 눈을 떼지 못하고 보다의 뜻)에서 명사인 目은 동사로 활용하였다.
맹상군이 그렇게 빠른 것을 이상히 여기며 의관을 차려입고 만나러 갔다 - 孟嘗君怪其疾也 衣冠而見之에 衣는 穿着衣:옷을 입고, 옷을 차려 입고, 冠은 戴着冠:모자를 쓰고, 모자를 챙겨 쓰고 로 명사 옷과 모자衣冠은 동사로 변한 예시이다.
동사 형용사 명사의 동사 활용
우선 동사의 使動用法을 알면 고문을 읽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동사가 목적어와 결합하여 시켜서 ~을 하게 하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사동이라는 말을 알아볼 것이다.
동사 뒤에 목적어가 따라오는 명사나 형용사 등이 모두 動賓詞組:Verb-Object Phrases(the causative usage)로 전환되어 목적어가 항상 동작의 대상이 되지만 고문에서는 목적하는 사람 또는 사물로 하여금 동작을 표출하게 만드는 구조다. 오광이 고의로 도망가고 싶다고 자주 말을 하여서 위를 노하게 만들었다 - 廣故数言欲亡 忿恚尉(벼슬아치). 이를 요즈음 말로 쓰면 (吳)廣故意屢次言欲亡 使尉忿恚라고 했더라면 使 때문에 이해가 빠를 것으로 본다. 또 목적어를 쓰지 않을 때도 있는 경우를 소개한다면 먹고 살아가는 것이 완비되고 때에 맞게 움직이면 하늘도 병들게 하지 못한다. - 養備而動時 則天不能病의 글은 바로 사동용법이 있기 때문에 고문을 볼 때 두 가지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같은 책에 근본을 굳게 하고 절약해 쓰면 하늘도 가난하게 하지 못한다. - 强本而節用 則天不能貧에서 강과 빈이 사동용법으로 활용되어 ‘굳게 하고 가난하게 만든다’로 쓰여진 것이다.
또 물건을 언급하지 않는 동사가 목적어를 이끌고 있는 예문을 들어 보면 간섭이 항우에게 투항하지 않았다 - 間涉不投降. 또 (선우가) 이때를 타서 소무를 항복시키고자 (單于)欲因此時降武의 문장이 바로 사동 용법의 글이다. 여기에서 (선우가) 소무에게 투항하려고 로 풀면 틀리게 해석한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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